[태백여행] 태백산 단군성전

1. 여행 일자 : 2019년 1월 22일 화요일


2. 여행지    : 유일사 + 태백산 산행 + 단군성전 + 태백산눈꽃축제 + 태백석탄박물관 


3. 소재지  


유일사(강원도 태백시 태백산로 4246-167), 태백산(강원도 태백시), 단군성전(강원도 태백시 천제단길 221), 태백산눈축제(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태백산국립공원 당골광장), 태백석탄박물관(강원도 태백시 천제단길 195)


4. 태백산 단군성전 소개


  

단기 4308년(서기 1975년) 국조단군봉사회가 구성되어 단기 4315년(서기 1982년) 회장 김대년을 비롯한 이 지역 뜻있는 분들의 성금으로 성전을 창건하였다. 단기 4325년(서기 1933년) 태백산도립공원 개발계획에 의거 성전을 개축하여 국조단군봉사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 단군 제례를 지내고 있다. 성전의 규모는 전체 대지면적 2,370㎡ 에 성전이 62.4㎡ 기타 부대시설로 이루어졌으며 단군성전의 현판 글씨는 신덕선이 쓴 것이다. 


5. 여행 사진


▲ 태백산 산행 하산길에 단군성전을 잠시 들렸습니다. 


▲ 단군성전



▲ 단군성전(檀君聖殿)


▲ 2019년 1월 1일부터 4월 10일까지 단군성전 천고각(북집) 불사 100일 기도를 하네요.


▲ 기도손님에 대한 숙식 및 식사 가능이라 되어 있고 축원용 초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 국조 단군상




댓글(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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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민족
    2020.10.04 10:32

    단군신화' 조작, 그 처참한 현실 고조선 건국절이 '개천절'... 한국 고대사 제대로 알자
    단군이 세운 조선은 『세종실록지리지』와 역사서, 중국의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데도 이를 부정하려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첫 시도는 경술국치 전부터 시작되었다.
    '檀君神話' 登場' 단군신화'라는 말이 우리나라 잡지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개벽』 창간호(1920.6.25)에 필명(筆名) '일태(一態)'라는 자가 쓴 논설 「단군신화」이다.
    그 내용은 '단군의 전설'이 곧 '단군신화'라는 의미를 갖게 하고, 민속과 관련된 것으로써 주술성이 가득한 것이어서 배달겨레가 국조(國祖)라고 인식해 오던 단군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이었다.
    그 후 신문이나 잡지 등에 논설 또는 논문 형태로 '檀君神話'가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최남선은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면서 1928년 1월 1일부터 10일까지 『중외일보』에 「단군신전(壇君神典)에 들어있는 역사소(歷史素)」라는 제목으로 5차례 연재를 했다.
    悽慘한 現實 조선 세종 때는 『단군고기』라는 사서가 있어서 그 일부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왔기에 당시 일부 유학자들은 단군을 국조로 보았다.
    “世宗大王은 檀君祠堂을 세웠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만든 성군으로 유명하지만, 平壤에 檀君祠堂을 세웠다. 이어 세조는 歷代 임금 最初로 檀君殿에 參拜했다. 1425년 정척(鄭陟)은 단군이 기자묘에 배향된 데 문제를 제기했다.
    단군사당을 별도로 세우고 신위를 남향으로 해서 제사를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논의 끝에 1429년(세종 11) 평양의 기자묘 남쪽에 단군묘가 건립됐다.]
    세조는 단군전 참배에 나섰다. 1460년 10월 4일 한양을 떠나 파주를 지나 개성을 거쳐 15일 평양에 도착했다. 17일 단군사당에서 친히 제사를 거행했다.
    신주를 ‘조선시조단군’이라고 썼다. 김성환 박사(경기도박물관)는 “단군이 국조임을 공인한 것”이라며 “(친제는) 자신의 왕위계승이 고조선 단군과 이를 이은 고구려 동명왕을 계승했음을 승인받고자 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7년, 평양에 단군사당 건립 세종실록에 단군세기와 관련된 기록은‘세종 7년(1425년) 9월 25일에 평양에 건립한 단군사당’의 기사이다. 세종 즉위 당시보다 3,751년 전 조선을 개국한 단군왕검을 국조(國祖)로 인식하고, 단군의 제사를 받드는 사당이 왕명에 의해 공식적으로 건립된 것은 고구려와 발해의 몰락이후 최초의 일이다.
    세종대왕은 이암의‘단군세기’를 통해서‘고조선을 우리 민족의 역사’로, 그리고 ‘단군을 국조’로 확신했던 것이다.
    소리글자‘가림토 정음’과 훈민정음 창제 세종 즉위년 보다 3,600년 전에 고조선 3세 가륵단군의 어명으로 만들어진 '소리글자' 가림토 정음 38자를 단군세기에서 발견한 세종대왕은‘백성들 누구나 쉽게 익히고 쓸 수 있는 소리글자’를 창제할 결심을 했으리라.
    단군세기에 기록된 가림토 38글자와 대조하면 훈민정음 28글자 중에 24자는 똑같고, ‘ㅎ’과 ‘꼭지 있는 ㅇ’이 같은 글자가 없으며‘ㄷ’과‘ㅌ’두 글자는

  • 배달의 혼불
    2020.10.04 10:44

    [우리의 조상이시며 신선도의 완성자이신 단군왕검 할아버지 ]사진으로
    단군영정을 통일하자,
    우리나라에 세계에서 최고 높은 단군상이 있다,
    출처: https://100mountain.tistory.com/536 [한국 100대 명산 산행기]

  • 배달 혼불
    2020.10.04 13:19

    홍익인간의 날 개천절
    국가경축일 개천절에 왜 대통령이 참석을 안 할까
    개천절은 '하늘이 열린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개천이란 본디 환웅이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백두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홍익인간·이화세계의 뜻을 펼치기 시작한 사건을 가리킨다.보통 개천은 BC 2333년 10월 3일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날은 실제로는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이었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 어천절 행사에 초대 이승만 대통령 참석 하였다
    선도문화 학술지 10권, 2011년)‘ 독립신문 1921년 4월 20일 자

    찬송사
    "우리 황조는 거룩 하시사 크시면 임금 이시며 스승 이셨다
    하물며 그 핏줄을 이으며 그 가르침을 받아온 우리 배달민족이리요 오늘을 맞아
    기쁘고 고마운 가운데 두렵고 죄 많음을 더욱 느끼도다,
    나아가라신 본뜻이며 고로 어라신 깊은 사랑을 어찌 잊을손가
    불초한 승만은 이를 본받아 큰 짐을 메이고 연약 하나마 모으며 나아가 한배의 끼치심을
    빛내고 즐기고자 하나이다."

    대통령이 개천절을 주관하고 경축사를 하는 전통문화가 언제쯤 세워지려나
    청와대 홈페이지에 "개천절 경축 대통령 참석 건의"글이 올라가 있다.

  • 배달 혼불
    2020.10.04 22:42

    세종 10년 무신(1428) 6월 14일(을미) 유관柳寬이 단군이 도읍한 곳을 찾아내어 의혹을 없애주기를 상서하여 청하다
    “황해도 문화현文化縣은 신의 본향本鄕입니다.
    스스로 벼슬을 그만두고 본향에 내려온 지가 여러 해 되었는데 여러 부로父老들의 말을 듣고 비로소 〈이 고을이〉 사적事迹이 오래인 것을 알았습니다.
    ​구월산九月山은 이 현의 주산主山입니다. 단군 조선 때에 있어서는 이름을 아사달산阿斯達山이라고 하였고, 신라 때에 이르러 궐산闕山이라고 고쳐 불렀습니다.
    그때에 문화현을 처음으로 궐구현闕口縣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전조前朝(고려)에 이르러서는 유주儒州 감무監務로 승격시켰으며, 고종 때에 이르러 또 문화文化 현령縣令으로 승격하였고, 산의 이름의 「궐」자를 느린 소리로 발음하여 구월산九月山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 산의 동쪽 재[嶺]는 높고 크고 길어서 일식 정도 가야 안악군安岳郡에 이르러 끝납니다.
    재의 중허리에 신당神堂이 있는데 어느 시대에 처음 세웠는지 알지 못합니다.
    북쪽 벽에는 단웅檀雄 천왕天王, 동쪽 벽에는 단인檀因 천왕天王, 서쪽 벽에는 단군檀君 천왕天王을 문화현 사람들은 삼성당三聖堂이라고 항상 부르며, 그 산 아래에 있는 동리를 또한 성당리聖堂里라고 일컫습니다.
    신당神堂의 안팎에는 까마귀와 참새들이 깃들이지 아니하며, 고라니와 사슴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날씨가 가물 때를 당하여 비를 빌면 다소 응보를 얻는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단군은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으니, 아마도 단군의 도읍이 이 산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고 합니다.
    ​삼성당은 지금도 아직 있어서 그 자취를 볼 수가 있으나, ​지금은 땅 모양을 살펴보건대, 문화현의 동쪽에 이름을 장장藏壯이라고 하는 땅이 있는데, 부로들이 전하는 말에 단군의 도읍터라고 합니다.
    지금은 증험證驗이 될 만한 것은 다만 동서난산東西卵山이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단군이 왕검성王儉城에 도읍하였으니, 지금 기자묘箕子廟로 합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라고 합니다.
    신이 살펴본 바로는, 단군은 요堯임금과 같은 때에 임금이 되었으니, 그 때부터 기자에 이르기까지는 천여 년이 넘습니다.
    어찌 아래로 내려와 기자묘와 합치하여야 한단 말입니까?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단군은 단목檀木 곁에 내려와서 태어났다 하니, 지금의 삼성三聖설은 진실로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이 또 살펴보건대, 태고太古의 맨처음에 혼돈混沌이 개벽開闢하게 되어, 먼저 하늘이 생기고 뒤에 땅이 생겼으며,​ 먼저 하늘이 생기고 뒤에 땅이 생겼으며, 이미 천지天地가 있게 된 뒤에는 기氣가 화化하여 사람이 생기었습니다.
    그 뒤로 사람이 생겨나서 모두 형상을 서로 잇게 되었으니, 어찌 〈사람이 생긴 지〉 수십만 년 뒤의 요임금 때에 다시 기氣가 화化하여 사람이 생겨나는 이치가 있었겠습니까.
    그 나무 곁에서 생겼다는 설은 진실로 황당무계한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감聖鑑으로 헤아려 결정하시고, 유사攸司에 명하여 도읍한 곳을 찾아내어 그 의혹을 없애게 하소서.” 하니, 세종대왕이 보류保留하여 두라고 명하였다.




  • 배달의 혼불
    2020.10.05 20:12

    "단군의 건국사화, 일제가 '신화'로 왜곡"​
    "단군신화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만든 이름"
    이태룡 박사 <이것이 진실이다> 펴내, 개천절(10월 3일)을 앞두고 나온 이 책에서 이 박사는 "'기자조선'은 조선 유학자들이 조작한 것이고, '단군신화'는 일제 식민사학자와 그들 앞잡이들이 만든 이름"이라고 밝혀 놓았다.​
    저자는 "단군신화라는 해괴한 용어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삼국사절요> <동국통감> 등 관찬사서, 그리고 수많은 유학자들의 문집에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삼국유사> 중간본(1512)의 내용은 매우 왜곡·축소된 것이라 했다. 저자는 <세종실록 지리지>(1454)에 나오는 단군의 건국사화(建國史話) 내용을 소개해 놓았다.
    "단군고기(檀君古記)에 이르기를, 상제(上帝) 환인(桓因)이 서자(庶子)가 있으니, 이름이 웅(雄)인데, 세상에 내려가서 사람이 되고자 하여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아 가지고 태백산(太白山)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였으니, 이가 곧 단웅천왕(檀雄天王)이 되었다.
    (환인의) 손녀(孫女)로 하여금 약(藥)을 마시고 인신(人身)이 되게 하여, 단수(檀樹)의 신(神)과 더불어 혼인해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단군(檀君)이다.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니, 조선, 시라(尸羅), 고례(高禮), 남·북 옥저(南北沃沮), 동·북 부여(東北扶餘), 예(濊)와 맥(貊)이 모두 단군의 다스린 (지역이) 되었다.
    저자는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단군의 건국사화가 <단군고기>라고 기록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단군신화'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둔갑시켰고, 그 이름으로 300여 논저가 나왔다"고 했다.
    이태룡 박사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한국사 왜곡에 이어 1916년 1월에는 조선총독부 산하 중추원에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가 발족되었다"며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 개인 차원이 아닌, 일제가 정부 차원에서 일본 민족의 우위성을 고취하고 역사교육을 통해 한국민으로 하여금 민족의식을 배제하고, 열등의식을 심기 위하여 설립하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제는 미우라 히로유키(三浦周行),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 일본인 식민사학자들과 어윤적·유맹·이능화·정만조 등 부왜인(附倭人)들을 참여시켜 우리 역사를 왜곡·말살시키는 기초작업에 들어갔다.
    1922년에는 이를 '조선사편찬위원회'로 확대 개편하였고, 1925년에는 '조선사편수회'를 조직하여 권중현·박영효·이완용·이진호 등 매국노들을 참여시켰다.
    2년 뒤에는 일제 식민사학자들과 신석호·이병도·최남선 등 많은 부왜인들을 동원하여 식민사관에 입각한 본격적인 조선사 편찬 작업을 하였다"고 했다.​
    이태룡 박사는 "이 같은 과정에서 이마니시 류는 1921년 <단군고(檀君考)>라는 논문에서 단군의 건국사화를 신화로 다시 조작하였는데, 이는 20여 년 전에 나카 미치요가 만든 '단군신화'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것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는 밑바탕이 되었고, 1937년에는 35권 2만 4000쪽에 이르는 방대한 <조선사>를 편찬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였다.​
    저자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실린 <단군고기>에는 천제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에 강림하여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개국의 터전을 닦고, 그 후손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고 하였다"며
    "배달겨레는 <단군고기>의 내용을 국조신앙(國祖信仰)처럼 여겨 천손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자긍심으로 수천 년 동안 살아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단군고기>를 <세종실록 지리지>에 실었다는 것은 당시 실록 편찬자들로부터 역사서로 인정받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룡 박사는 이 책을 저술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서를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의 사서 수십 권을 참고했고, 원문을 포함해 600여 개의 주석을 달아 놓았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역사학도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흥밋거리가 될만한 책으로 보인다.​

  • 배달의 혼불
    2020.10.05 21:24

    홍익인간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  '인간은 홍익해야 한다'
    홍(弘)은 절대 개념: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가 상대하는 모든것을 정성을 다해 대하는 것. 파도가 요동치면 떠있는 배는 흔들리기 마련, 흔들리지 않는 기준은 이치(理致)=이화세계,
    이치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수만 년을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자연의 이치를 말하므로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는 세상. 이제는 탈관념(脫觀念)의 시대, 탈관념 시대의 기준은 우주적인 이치-자연의 이치-가 그 자리에 앉게 되어요.익인간 이화세계의 가르침은 우리 후손들이 바르게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 배달의 혼불
    2020.10.09 09:22


    한글날 기념 태극기 게양
    한글,한자(漢字)’는 中國 글자가 아니다.
    한글을 세종대왕世宗大王() 혼자서 만들었다면 이또한 고조선 고구려 3국시대가 없다,
    아무런 고증 없이 동이족(東夷族)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학설 자체를 극력 부정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중국이 한자를 BC 2300년경부터 사용했다고 한다
    이시기가 바로 고조선시대이다,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소 대만학자 서량지(徐亮之)박사가 한박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한(韓)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을 대표하여 사죄하는 뜻으로 절을 하겠습니다. 받아주십시오." 하고는
    한국식으로 넙죽 큰 절을 올렸다 한다. 대만 문자학자 이경재(李敬齋)도 동이족이 한자(漢字)를 창조했다면서, 순임금과 함께
    한자를 만들었다는 창힐(蒼頡)도 東夷族이며
    孔子도 東夷族인 殷나라 後裔라는 主張 등 상당수 中國學者들은 은(殷)대의 甲骨文이 당시 황하 이북의 북방민족인 동이족이
    만들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다.
    일본학자 가지마 노보로는 “한족(漢族)은 한(韓)을 흉내 내어 이름붙인 것이며,
    특히 양자강 유역은 전통적으로 동이족의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심지어 중국도 자신들의 최고신화인 반고개천(盤古開天)와 한족(漢族)의 기원을 규명한 학술연구지에서
    “한족은 동이족을 주류로 묘족(苗族)을 지류로 구성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민족 문명학 토기·청동기·암벽 등서 유사한 문자 발견…
    삼국유사·용비어천가 등 고문헌에도 실재 흔적 세종실록엔 ‘훈민정음이 옛 전자 모방했다’고 기록…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 사학자였던 권덕규(權悳奎)는 단군 고조선 시기부터 고려 시대까지 신지문자를 비롯하여
    고유 문자가 존재 고조선 황화 유역에서 이주민 밝족이 商(상=殷·은)을 건국한 후 고중국어를 표기하는 ‘한문자(漢文字)’를
    발명하여 오늘날의 한문이 되었다.
    15세기 전반기에 들어와서 드디어 조선에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새로운 알파벳이 발명되어 모든 우랄·알타이어족
    언어와 세계 모든 언어를 쉽고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세계 문자가 창조되었다.  
    고중국에서는 고조선의 신지문자를 ‘창힐(蒼힐)문자’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고려시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에는 ‘신지비사(神誌秘詞)’라는 서책이 암자에 남아 있었음을 기록했다.
    세종 때 편찬된 ‘용비어천가’에서는 ‘구변지국(九變之局)’의 ‘局’을 주석하면서 ‘구변도국(九變圖局)’을 신지(神誌)가 편찬한
    도참서(예언 서적)의 이름으로 설명했다.
    ‘세조실록’에서는 신지비사를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라고 기록 해동역대명가필보(海東歷代名家筆譜)’와 ‘영변지(寧邊誌)’에는
    신지문자 16자가 채록되어 있다.

  • 배달의 혼불
    2020.10.09 09:41

    단군할아버지 2011.03.15
    우리의 조상이시며 신선도의 완성자이신 단군 왕검 할아버지~~ 영정사진으로
    바꿔 모셔야 하는 이유는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단군환웅 한배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현재 나와있는 초상화 사진은 고조선시조 환검할아버지 모습이다,

    한웅족은 태양을 섬기는 하늘자손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보았다.
    태백산(太白山1566m) 단군한배검 계시는 천제단
    성스런 민족의 태백산!.  
    태백산(太白山1566m)정상에 환웅천왕 단군한배검을 모신 천제단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태백산을 제일 큰 산이라 했을까?
    태백산보다 높은 산이 부지기수인데 왜 태백산신을 가장 높은 산신으로 믿었을까?
    천제단에 올라보면 어느 정도 그 답이 수긍이 간다.
    사방팔방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발치아래 있지 않는가!
    백두대간의 분기점이다. 옛날에는 “한밝뫼” 큰 광명이 깃든 우리나라의 어버이 산
    영산, 민족의 명산으로 지금도 사시사철 많은 참배객들과 탐방인으로 각광을 받는 산이다.
    10월 3일 개천절 행사 때는 단군 할아버지께 성대한 제를 올리고 국태민안의 축원을 하며 국경행사를 할시에는
    이곳 태백 천제 단에서 청결한 의식과 더불어 성화를 채화하고 있다.
    영험한 옛 신앙의 발원지이며 수행자들의 발길이 끊기는 날이 없단다.
    밝고 크고 성스런 환웅천왕을 모시는 성소의 천제단! 민족풍상을 다보고 격은 살아천년 죽어천년(生千死千)의
    태백의 주목! 1만 문수보살이 머무는 태백산은 환란, 기근, 물난리가 침범하지 못하니 참으로 복되도다.

  • 배달의 혼불
    2020.10.09 21:27


    단군은 가르침을 내려 말했다.


    하늘의 법칙은 하나일 뿐이니 그 문은 둘이 아니니라. 너희들은 순수하게 참마음을 다할 것이니 이로써 너희 마음이 곧 한님을 보게 되리라.
    하늘의 뜻은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이고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한가지라. 이런 까닭에 스스로를 살펴보아 자기의 마음을 알면 이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도 살필 수 있으리라. 다른 이의 마음을 교화하여 하늘 뜻에 잘 맞출 수 있다면 이로써 세상 어느 곳에서도 잘 쓰일 수가 있는 것이리라.


    너희가 태어남은 오로지 부모에 연유하였고 부모는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으니 다만 너희 부모를 옳게 받들어 모시는 것이 바로 하늘을 받들어 모시는 것이고, 또 나라에 까지도 그 힘이 미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충성되고 효도함이니라. 너희가 이 도를 잘 따라 몸에 지닌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화를 먼저 벗어날 수 있으리라.


    짐승에게도 짝이 있고 다 해진 신발도 짝이 있나니, 너희 사내와 계집은 서로 화목하여 원망함이 없고 질투함도 없고 음란함도 삼갈 것이다.
    너희들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면 크건 작건 가림없이 모두 아프지 않던가? 서로 사랑할지언정 서로 헐뜯지 말고 서로 도울지언정 서로 다투는 일이 없다면 집안도 나라도 다 크게 일어나리라. 너희들, 소나 말이나 살펴보아도 서로 먹이를 나누어 먹지 않더냐?



    너희가 서로 양보하여 서로 어쩌지 않고 함께 일하여 서로 빼앗지 않는다면 나라가 다 융성하리라. 너희들, 호랑이 무리를 보아라, 힘만 세고 난폭하여 신령스럽지 못하더니 비천하게 되어 버렸도다. 너희가 사람다운 성품을 잃고 난폭하게 날뛰지 않는다면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니라. 항상 하늘의 뜻을 받들어 모든 것을 사랑할 지니라. 너희는 위태로운 것을 만나면 도울지언정 모욕을 주지는 말지니라. 너희가 만일 이런 뜻을 어긴다면 영원히 하늘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어 내 한 몸은 물론 집안까지도 다 사라지리라.


    너희가 만일 논에 불을 일으켜 벼들이 다 타버리게 된다면 하늘이 이를 벌할 것이니라. 너희가 아무리 두껍게 싸서 감춘다 해도 그 냄새는 반드시 새어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니라. 너희는 항상 바른 성품을 공경스럽게 지녀서 사악한 마음을 품지 말 것이며, 나쁜 것을 숨기지 말 것이며, 재앙을 감추지 말 것이다. 마음을 다스려 하늘을 공경하고 모든 백성을 가까이 하라. 너희는 이로써 끝없는 행복을 누릴 것이나니, 너희 오가의 무리들이여, 이 뜻을 잘 따를 지어다.



    詔曰天範惟一弗二厥門爾惟純誠一爾心乃朝天
    소왈천범유일불이궐문이유순성일이심내조천
    天範恒一人心惟同推己秉心以及人心人心惟化亦合天範乃用御于萬邦
    천범항일인심유동추기병심이급인심인심유화역합천범내용어우만방
    爾生惟親親降自天惟敬爾親乃克敬天以及于邦國是乃忠孝爾克體是道
    이생유친친항자천유경이친내극경천이급우방국시내충효이극체시도
    天有崩必先脫免
    천유붕필선탈면
    禽獸有雙弊履有對爾男女以和無怨無妬無淫
    금수유쌍폐이유대이남여이화무원무투무음
    爾嚼十指痛無大小爾相愛無胥讒互佑無相殘家國以興爾觀牛馬猶分厥
    이작십지통무대소이상애무서참호우무상잔가국이흥이관우마유분궐
    ?爾互讓無胥奪共作無相盜國家以殷
    추이호양무서탈공작무상도국가이은
    爾觀于虎彊暴不靈乃作?爾無桀?以장性無傷人恒遵天範克愛物爾扶
    이관우호강폭불영내작얼이무걸무이장성무상인항준천범극애물이부
    傾無陵弱濟恤無侮卑爾有越厥則永不得神佑身家爾殞
    경무능약제휼무모비이유월궐칙영부득신우신가이운
    爾如有衝火于禾田禾稼將殄滅神人以怒爾雖厚包厥香必漏爾敬持弊性
    이여유충화우화전화가장진멸신인이노이수후포궐향필누이경지폐성
    無懷慝無隱惡無藏禍心克敬于天親于民爾乃福祿無窮爾五加衆其欽哉
    무회특무은악무장화심극경우천친우민이내복록무궁이오기중기흠재

    출처 : 고담준론

  • 배달의 혼불
    2020.10.10 08:45

    단군할아버지 2011.03.15
    "우리의 조상이시며 신선도의 완성자이신 단군 왕검 할아버지" 사진을 여러 인터넷에 올리어
    많은 사람들이 단군할아버지가 이렇게 훌륭하게 생기셨구나!
    그동안 팔짱끼고 의자에 앉아있는 초라한 모습이 참모습(천진)이 아니였구나 하면서 새로운 인식을 갖도록 건의 드립니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 러시아에서 발견된 단군 초상화 2020.07.24 19:03:44

    러시아에서 국조단군 역사를 연구 발굴하는 시대 입니다.

  • 배달의 혼불
    2020.10.10 11:43

    러시아가 ‘단군조선’을 복원하려 한다. 2019.07.10.
    누가 단군조선을 신화라 말하는가
    밝혀진 진실 중국의 역사책에도 나오는 '단군조선'의 기록을 왜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은 모르는가?

    “학교내 국조 단군상 철거되어 고물상에 버려졌다” 2017.11.15 15:21

    우리의 조상 단군할아버지를 고물상에 버린 학교장을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여인원 : [ 1,364명 ]

    기증단체 홍익문화운동연합, 국민청원과 1인 시위 전개
    최근 초등학교내 교육목적으로 설치된 국조단군상이 철거되어 재활용업자에게 넘어간 것으로밝혀졌다.
    지난11일(2017.11.11,) 청와대홈페이지 국민소통광장 국민청원으로 우리의 조상 단군할아버지를 고물상에 버린 학교장을 처벌해 달라(바로가기)’는 홍익운동문화운동연합(이하 홍문연)정성률회장의 글이 올라왔다. 15일정오 동의서명자는1,200명을 넘었다.
    홍문연은 1995년에 창립, 2000년 5월 16일 행정자치부에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이며, 해당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을 기증한 단체이다.홍문연 강원지부(회장 김기홍)는 춘천봉의초등학교(학교장 채인숙)에
    ▲단군상을 기증단체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임의로 폐기한 것에 대한 사과
    ▲단군상 설치의 본래 취지에 맞는 원상복구
    ▲재발방지 등을 요구했다.
    현재 홍문연은 온라인 국민청원과 함께 회원들이 참여해 학교 앞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통일기원국조단군상 건립 및 기증은 1998년 대한민국이 IMF 정국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총체적 부실국가의 부실국민이라는 자괴감에 빠졌을 때, 시민단체인 홍익문화운동연합이 추진하여 전국적으로 불붙었던 시민운동이다. “민족의 가슴에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고, 우리 민족을 하나로 단합할 수 있는 정신은 홍익정신”이라는 취지문에 뜻을 담아 전국 학교, 공공 공원 등에 369기를 기증, 설치했다.

  • 배달의 혼불
    2020.10.11 08:55

    우리민족 우리나라 꽃은 천지화(天指花) 진달래!
    1. 진달래=천지화(天指花)
    천지화의 뜻은 하늘 북극성을 가르키는 마고(삼신)님 꽃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만주 조선족 들은 진달래를 천지화라고 합니다.
    진달래 꽃 수술을 떼어 말리면 진 보라색으로 북극성 색깔과 동일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우주의 중심 북극성 별 색깔이 보라색이지요.
    2. 진달래=참꽃 : 꽃중에 진짜 꽃이라는 말입니다.
    3. 진달래=두견화 : 두견새가 울 때 피는 꽃이라는 뜻입니다.
    4. ‘천지화랑(天指花郞)’→ 신라 ‘화랑(花郞)’으로 전수
    고려 공민왕때 충신 행촌이암선생이 기록한 단군세기에 보면 13세 단군 흘달(屹達)(BC 1782 ~ BC 1772) 편에 다음 기록이 나옵니다.
    “무술 20년(BC 1763)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天指花)를 심었다.
    거기에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다.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이라 하였다.
    국자랑(國子郞)은 길을 다닐 때 머리에 천지화(天指花)를 꽂고 다녀서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고도 불렀다.“
    이 고조선 흘달단군때
    머리에 진달래 한송이를 꽃고 수련을 하던 청소년 집단을
    천지화랑이라 하였고 이것이 바로 신라 화랑으로 전수 된 것입니다.
    [참고} 서울대 이민재 교수 주장
    1956년 2월 8일 서울대 이민재 교수(서울대 약대교수, 문교부 차관 역임)는
    조선일보 기고를 통하여 우리나라 대표 꽃이 진달래임을 역설하였습니다.
    무궁화는 나라꽃으로 단 한가지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설명합니다.
    우선 국화식물로서의 전제조건은 많겠으나 그 중요한 것을 들어보면
    (1) 국토전역에 분포될 것이 요구되고
    (2) 될 수만 있으면 한국원산지인 것으로 민족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3) 민족과 더불어 역사적 친교(親交)가 있어야 하며
    (4) 이름이 고울것은 물론 꽃이 또 그것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녀야 할 것 등 여러 가지 조건이 구비될 것이 필요하다.
    위에 말한 조건에 비추어볼 때 ‘무궁화’는 그 어느 하나의 조건도 구비하지 못한 식물이다.

    진달래란 일반적인 명칭은 “천지꽃”이니 “두견화” 곳에 따라 각각 다르며

    더는 진달래의 어원적해석이며 유서(由緖)에 대해서는 그쪽 사학가나 언어학자에게 맡기기로 하더라도 우선 식물학적인 면으로만 볼 때 우리의 풍토에 알맞는 식물에 '진달래'가 제일인 것 같다.

    사실 이 꽃과 우리 민족과의 교섭(실생활면에서나 정서면에서)은 아주 깊어서 필자가 아는 한도내만 하더라도 오랜 옛날부터 전하여 오는 3월 3일의 '화전놀이'는 떡에 진달래의 분홍꽃잎을 넣어서 그 빛깔과 향기를 즐겼고 보다 많은 시인들이 노래로서 민족정서에 많은 촉매적 역할을 한 꽃임에 틀림없다.

    또 종류도 대단히 많아서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30여 종이나 되고 전세계에는 3백 종도 넘는다. 이의 분포는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는 전토에 걸쳐 있으며

    그 양이 풍부하여 화계(花季)에 이르러 만산(滿山)의 진달래는 확실히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라는 인상을 깊게 해주는 것이다.


  • 배달의 혼불
    2020.10.11 09:30

    원시반본이니 단군 돌아오신다! 생생유전하는 세상이다,
    生生流轉이란 빈말일수 없다. “生生流轉이오이다. 이것이 대생명의 本然한 자세이지요. 황하가 한번 넘치면 수십 만 명의 인명이 살상되지만 그 물이 원상으로 복구되면 다음해 곡식은 더욱 무성하여 사람은 번창합니다.”
    생생유전이란 낳고 죽고, 죽고 낳는 것을 말한다.
    특히 우리 동이의 학교 역사가 2000년이 넘는데 시초의 학제만도 못한 인성교육의 현실이다. 어떻게 하여 행복해 질 것인가? 라는 문제가 인간의 궁극적인 숙제라면 오늘처럼 살아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양심이 그립다. 바른 양심을 가진 사람이 그립다. 그런 사람이 사는 세상이 그리워진 것이다. 머지않아 양심의 세상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양심세상을 갈망했기에 그렇다 사람이 원했기에 그런 세상이 나타났다.
    다들 양심세상을 바란다. 그런 세상이 이제 곧 닥쳐 올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양심세상을 바리기에 그렇다 앞으로 세상은 양심주의 영력주의가 발생한다. 영력주의(靈力主義)! 인간에는 영이 존재한다. 이 영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우리는 계급을 달아주면 즉각 영향력을 발동한다. 그런데 양심이 어두워서 그 전모를 다들 모르고 그냥 위력에 눌려서 따른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양심주의가 판을 짜면 영력이 현현될 것이다. 가을이 되면 金風이 가을 바람이고 서풍이다. 겨울을 준비하여 부는 바람이다. 쭉정이가 날아가고 알갱이가 남을 바람이다. 헛것 가짜 무늬만 비슷한 것이 빠져나가고 진실한 바코드를 확실하게 찍힌 것 진짜가 남기 위한 바람이다.우리는 원시반본하는 생생유전하는 것을 믿는다. 그런데 경이로운 일은 우리 동이민족의 메시야는 이미 왔다는 증거가 있다. 이게 생생유전을 말하며 문제가 된다.원시반본을 믿는다면 단군왕검께서 정도령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올 것을 믿어야 이치가 합당하다. 그런데 그분이 오셨다. 그분은 글자로 오셨다. ‘檀君王儉’이란 네 글자를 破字를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木으로 돌아 온다. 목은 동방이고 음과 양이 교차하는 탄생을 의미하는 시작이다.
    地上根山이 태백산이면 태백산으로 돌아온다는 글자가 檀이다. 그리고 且의 의미가 중요하다. 이 글자는 闕義란 뜻을 가지고 있다. 언제 어느 때 누가 이런 주석을 달았는지 참으로 고맙다. 且는 闕義이다.
    정의라는 말을 들고 대궐로 들어가는 말이다. 누가 그러냐? 尹口다. 윤구가 정의를 들고 대궐로 들어간다. 윤구란 풀면 벼슬한 사람이다. 작은 벼슬이 아니라 큰 벼슬이다.
    그러니까 별들의 전쟁이다. 이 별들이 싸우다가 정의 기치를 들고 대궐로 들어 갈 때 단군왕검께서 정도령의 이름으로 메시야로 태백산 밑으로 온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정의사회를 구현한다고 떠들 때 단군께서 태어날 것을 예언한 것이다.그런데 그 때를 좀 더 구채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은 삼계에 내려오는데(王:파자하면 그렇게 표현) 그 징조는 儉이다. 검은 좌에 있는 사람이나 위에 있는 사람이 다 하나 될 때 즉 평등할 때 오신다 했다.
    그러니까 口口구구 즉 나라와 나라가 나란히 서고, 평등하고 또 人人사람 사람이 다 나란히 서는 즉 평등한 세상일 때 오신다. 지구촌 시대에 온다. 원시반본에 따라 단군임금께서 태백산아래 고을에 돌아오신다.지금 따져보니 후천개벽 세상, 지축이 바로 서는 일이 남아 있다. 정역의 시간은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닥쳐온다. 생생유전하다가 정음정양의 때가 도래할 것이다.

  • 배달의 혼불
    2020.10.11 18:53

    高句麗始祖 高朱蒙 聖帝의 조칙(詔勅) 칙서
    고주몽 성제 조칙(詔勅)
    하늘의 三神이 만인을 한 모습으로 창조하고, 三眞을 고르게 부여하셨다. 이에 사람은 하늘을 대행하여 능히 이 세상에 서게 되었다.
    슬기로운 자는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며, 계율을 잘 지켜 삿된 기운을 영원히 끊나니, 그 마음 편안하고 태평하며 저절로 세상 사람과 더불어 메사에 올바르게 행동하게 되느니라.
    군사를 쓰는 것은 침략을 막기 위함이며, 형벌의 집행은 죄악을 뿌리 뽑기 위함이니라.
    그런고로 마음을 비움이 지극하면 고요함이 생겨나고, 고요함이 지극하면 지혜가 충만하고, 지혜가 지극하면 덕이 높아지느니라.
    따라서 마음을 비워 가르침을 듣고, 고요한 마음으로 사리를 판단하고, 지혜로 만물을 다스리고, 덕으로 사람을 건지느니라.
    이것이 곧 신시 배달 시대에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인간의 마음을 연 교화의 방도이니, 천신을 위해 본성을 환히 밝히고, 뭇 창생을 위해 법을 세우고, 선왕을 위해 공덕을 완수하고, 천하 만세를 위해 지혜와 생명을 함께 닦아(智生雙修: 지상 쌍수) 교화를 이루느니라.

  • 배달의 혼불
    2020.10.11 21:33

    桓雄께서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백두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어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상원 갑자년(上元甲子年: 서기전 2457년) 음력 10월 3일
    강원도 태백산 단군공원에 있는 단군왕검과 천부경 등이 새겨져 있는 비석. 박동호 선생이 묘향산 단굴굴에 새겨진 경문을 살펴 더 받들어 모셨다는 것이 천부경임을 암시하는 문헌자료도 있다. 한단고기를 합본했다는 계연수의 행적이다. 계연수는 자신이 한단고기 범례에서 묘향산 단굴암에서 썼다고 밝히고 있다. 박동호 선생이 서기1947년 6월 묘향산 단군굴 바위에 새겨진 천부경을 봤다는데  계연수도 보았을 것이다.천부경은 81자로 된 글이다.
    일(1)로 시작하여 일(1)로 끝나는 구조를 하고 있고, 우주삼라만상이 이 일안에서 움직임을 노래하고 있다. 또 하늘과 땅 사람을 중심으로 우주가 돌아간다고 한다. 그 중에서 사람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제까지 수 많은 학자들이 풀이를 하고 있는데 다양하다. 한국전통문화대학 최영성 교수에 따르면 최근에는 성균관대학에서 이 천부경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도 나왔다.천부경의 진서성과 실사성이 점점 밝혀지고 있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천부경의 실체를 알리는 또 다른 증거가 나타난 것이다.서기19세기 말의 단군영정이 소개됐다. 또 천부경 일부가 새겨진 돌비석이 소개됐다. 년대는 서기1905년으로 나타났다. 모두 천부경의 실사성을 알리는 증거들이다.

  • 배달의 혼불
    2020.10.12 11:51

    舊石器,新石器,<古朝鮮 靑銅器,鐵器時代>위의 時代 遺物 遺跡이 엄연히 있다,이 時代에 살았던 사람들이 누구냐고 疑問을 提起하거나 硏究한 學者가 누구며, 우리는 認定을 하는가?
    新石器 靑銅器時代는 桓國에서~ 古朝鮮時代로 秋毫도 疑心의 餘地가 없다.
    桓因時代(BC 7,197~BC 3,897) 7대 / 3,301년간
    1세 安巴堅
    2세 赫胥
    3세 高是利
    4세 朱于襄
    5세 釋提壬
    6세 邱乙利
    7세 智爲利
    桓雄時代
    1대 居發桓, 94, B.C 3897, 120세, 一名 倍達 桓雄
    2대 居佛理, 86, .C.3803, 102세)
    3대 右耶古, 99, B.C.3717, 135세)
    4대 慕士羅, 107, B.C.3618, 129세)
    5대 太虞儀, 93, B.C.3511, 115세)
    6대 多儀發, 98, B.C.3419, 110세)
    7대 居連, 81, B.C.3320, 140세)
    8대 安夫連, 73, B.C.3239, 94세)
    9대 養雲, 96, B.C.3166, 139세)
    10대葛古 또는 瀆盧韓, 96, B.C.3070, 125세)
    11대居耶發, 92, B.C.2970, 149세)
    12대州武愼, 105, B.C.2878, 123세)
    13대斯瓦羅, 67, B.C.2773, 100세)
    14대慈烏支, 109, B.C.2706, 일명 치우천황, 151세)
    15대蚩額特, 89, B.C.2597, 118세)
    16대祝多利, 56, B.C.2453, 99세)
    17대赫多世, 72, B.C.2452, 97세)
    18대居弗檀, 48, B.C.2380, 一名 檀雄, 82세)
    國始祖 檀君 桓儉
    平壤桓氏始祖 桓儉 -扶婁-嘉勒-烏斯丘-丘乙-達門-翰栗-于西翰-阿述-魯乙-道奚-阿漢-屹達-古弗-代音-尉那-余乙-冬奄-牟蘇-固忽-蘇台-索弗婁-阿忽-延那-率那-鄒魯-豆密-奚牟-摩休-奈休-登兀-鄒密-甘物-奧婁門-沙伐-買勒-麻勿-多勿-豆忽-達音-音次-乙于支-勿理-丘勿-余婁-普乙-高列加- 2000년: 286가구 945명(경남412명,부산164명,경기도101명,기타지역268명)
    馬軍將軍 桓宣吉 陰竹(京畿道 地方) 出身 ( 中國의 宣城桓氏 )
    高麗前期 高麗開國翊戴功臣 馬軍大將軍 桓宣吉,
    桓香寔 同生 香寔과 함께 高麗太祖 王建을 섬겨 推戴한 功이 있었으며,
    馬軍將軍으로서 太祖의 心腹이 되어 恒常 精銳軍을 이끌고 宿衛하였다.
    4세檀君(烏斯丘) 196년, 親同生 烏斯達을 蒙古里國汗(칸) 任命(蒙古族始祖)
    36세 檀君(賣勒) 26년 壬寅(BCE 679) 蒙固大父 桓善으로 蒙固諸侯(褥薩)를 삼음 - 桓允(天王의 外戚)- 桓西余(天王의 宗室)- 桓人桂林州刺史 (高句麗 東明王時代)- 桓卑 豊城州刺史-桓福(BC50-) 桂林沛者(高句麗創業功臣)- 桓那(桂婁部) 高句麗創業功臣- 桓柏 主畜大加- 慶州 沙飡 鄭穆 配 桓宣吉 女, 伊昕巖( ? ~918년) 高麗初期 馬軍大將軍이 桓宣吉의 妹夫,
    桓公叔 秘書監 高麗高宗 35(戊申)年
    桓允全 忠肅王14년(1327) 郞將·中郞將·內府令 歷任 武臣官僚. 燕京隨從二等功臣
    桓貞將軍 高麗忠烈王 18년(1292)
    桓頤 造成都監(高麗忠烈王 33 1307년 6월 丙午日)
    桓天祐 前判事 開國從功臣錄券
    桓順 陰竹桓氏 三重大匡 都僉議政丞 雪城君
    桓愉 判事 朝鮮定宗朝
    桓知 (年齡이1百2歲) 京畿 楊州의 孺人, 朝鮮文宗1년(1451 辛未) 各道 監司가 여름철 3個月 間에 惠養을 입은 老人의 數爻를 아뢰다,
    16 환봉규 오산청학배드민턴 창립 대회 참가자 명단
    2019년 7윌1일자 발령 여주시 대산면 8급공무원 환준희

  • 배달의 혼불
    2020.10.13 19:49

    카자흐스탄 정부가 '檀君錢 銅錢' 기념주화 발행한 사연
    원시반본 檀君時代 반드시 돌아온다.
    2016년 카자흐스탄 중앙은행은 ‘단군전 동전’이란 기념주화를 발행했다.
    동전 뒷면에는 단향속 나무 아래 앉아있는 전설의 단군과 곰, 호랑이 이미지, 그리고 한국어로 된 비문이 새겨져 있다.

    근데 대체 왜 카자흐스탄에서 단군전 동전을 만들었을까?

    단군 기념주화 발행한 카자흐스탄이 우리 민족?

    1937년 8월에 스탈린의 결정에 따라 러시아에 살던 카레이스키(한국인, 고려인)는 강제로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 영토로 추방됐다.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 지도자들은 카레이스키들을 스파이로 비난하고 러시아지역에 거주하던 이들 17만여 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던 것이다.

    이 기간부터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인 디아스포라(diaspora, 집단추방)의 역사가 시작됐다.

    카레이스키들은 카자흐스탄 모든 지역에 배치됐으며, 그들에게 가해진 모욕의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새로운 장소에 정착하고 열심히 살았다.

    당시 대규모 기아와 스탈린주의자의 억압으로 같이 고통 받고 있던 카자흐스탄 주민들은
    고려인 피난민들에게 이해와 친절함으로 대해주고 빵과 쉼터를 함께 나누었다.

    그런데 카자흐스탄 정부는 고려인을 포함한 외국인 거주자들에게 자국 언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1938년에는 모든 한국 교육 기관이 폐쇄됐고 한국어로 된 책의 출판이 중단됐다.

    그동안 고려인들은 러시아로부터 6500km 눈물의 길을 걸어와서 풀 한 포기 없는 땅에서 고생을 했다.

    이런 애증의 아픈 역사를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카자흐스탄 정부는 고려인들에게 단군전 동전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유사역사학 중에는 카자흐스탄이 우리와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그 주장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은 우리나라의 단군을 시조로 섬긴다고 한다. 

    15세기께 킵차크한국의 후예인 아불 하이르 칸이 우즈베크 울루스를 이끌었는데 몽골족 일파인 오이라트의 침공으로 패하자 일단의 무리가 이탈했다.

    이들은 '떨어져 나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카자흐라고 불렸다. 16세기 초에 카심 칸의 지휘 아래 강력한 세력으로 군림했다.

    이들은 한때 스텝 지역을 모두 지배한 강력한 국가를 세웠지만 17세기에 오이라트 족의 침공으로 약화되었고

    러시아가 남하하면서 오이라트족을 러시아가 막아주리라 기대하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러시아의 속국이 되고 말았다.

    20세기 초에 들어와 민족주의 발흥과 더불어 카자흐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유혈 폭동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1919~1920년에 걸쳐 소련 적군이 카자흐스탄을 점령해 소련에 속하게 되었다.

    소련 붕괴 후, 1991년에 독립했다. 우리나라와는 1992년에 수교했다. 

    - 카자흐스탄은 단군의 통치영역에 속해 있었다. 이들도 단군의 후예다. 
    - 카자흐스탄 비석에 단군의 기록이 쓰여 있다. 
    - 다른 나라는 없는 역사도 지어내는데 우리는 있는 역사도 축소한다. 
    - 카자흐스탄이 환국 영역에 속했기 때문에 기념주화를 만든 것이다. 
    - 카자흐스탄에서는 단군을 선조로 모시고 주화도 내는데 우리는 뭐하고 있는가. 

    카자흐스탄에는 11만명의 한국계 사람이 살고 있다.

    왜 이 먼 중앙아시아의 나라에 한국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일까? 

    그 유래는 일제강점기 때로 올라간다. 1937년 스탈린은 연해주에 정착해 있던 한국인들을 강제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시켰다.

    당시 연해주에는 20만명에 달하는 한국인이 살고 있었다. 일제의 폭압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을 일궈서 간신히 삶의 터전으로 바꿔놓았는데 난데없는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었다.

    2차 대전을 치르고 있던 스탈린은 결국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과도 싸우게 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인 조선에서 도망쳐온 사람들을 믿을수 없었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등 뒤에서 칼을 맞을 위험을 아예 지워버리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카자흐스탄의 여러 지역들은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몽골 제국을 비롯해 다양한 중앙아시아 제국들의 일부분을 이루었다.

    많은 우즈베크인들이 몽골의 보호하에 지금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는데, 이들이 '방랑자' 또는 '독립자'의 뜻을 가진 카자흐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배달의 혼불
    2020.10.13 21:35

    한웅족은 태양을 섬기는 하늘자손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보았다.

    기도하는 부분의 원문은 ‘상기우신웅常祈于神雄’이다. 통상 ‘늘 신웅에게 기도했다’로 푼다. ‘기우신웅상祈于神雄常’으로 해야 맞는다고 못 박았다. 
    신령한 웅상나무에 기도를 했다고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 <산해경>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이 책에도 웅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 <단군세기>를 근거로 들었다. 웅상은 곧 한웅의 웅상이라고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서 웅상雄常의 웅雄에 주목했다. 웅雄를 보면 왼변에 팔뚝을 나타내는 굉자와 오른변에 새를 나타내는 새추자로 구성되었다.
    카자흐스탄에 가보니 문헌에 팔뚝에 독수리를 앉혀 놓은 그림이 나오더라고 했다.
    그는 한웅의 웅자는 새를 숭배하는 한웅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카자흐스탄에서 웅자에 숨겨진 뜻을 밝혀주고 있는 것을 실마리로 이 지역까지 한웅의 문화권에 속한 것이 아닌가

    단군영정 앞에 청수모시고 독립투쟁나서다.
    일제침략기 독립투사들 민족사 전문가 수준
    대일독립전쟁원천 단군과 철저한 민족사관
    <삼국유사>고조선기는 우리민족의 기원전함
    독립투쟁과 3.1만세독립투쟁에 참여한 그 세대 사람들은 단군역사를 뜨겁게 안고 살았던 분들이다. 단군역사에 무지하고 어쩌다 그냥 총 들고 나가서 독립 투쟁한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신규식 선생님 같은 분은 매일 아침마다 단군할아버지 영정에 청수 올려놓고 기도하고 나가서 독립 투쟁했다. 그냥 우연히 나라를 구해야 되겠다고 해서 총들고 싸운 그런 독립투사가 아니다. 민족사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시영 부통령은 <감시만어>에서 보듯이 고대사에 대해서 아주 전문가 이상 학설을 펴고 있다.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 까지 민족사에 대해서 철저한 무장이 되어 있지 않았으면 독립투쟁 할 수 없었다.”
    일제침략기 독립투쟁을 벌인 투사들이 단순히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철저히 민족사관으로 무장하고 있었다고 참석자들에게 심어주었다.
    신규식 선생이 독립투쟁에 나가기에 앞서 단군영정 앞에 청수를 떠놓고 기도를 했다고 전하는 장면에서는 비장함 마져 읽혔다. 날마다 이렇게 청수기도로 정신무장을 하고 나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역사학을 장악하고 있는 식민사학계는 독립투사, 단재 신채호 등의 민족사학을 사이비 역사로 매장하며 민족사를 부정하고 있다.
    이는 독립투사들을 부정하는 것인데 민족해방전쟁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상해임시정부도 부정하는 꼴이며 해방 후 3.1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 수립된 대한민국도 부정하는 것이 된다.

  • 배달의 혼불
    2020.10.14 12:00

    태백산 등산하시는 여러분
    진달래(眞達來)를 한사람이 한포기씩만 가지고 올라가시어 天祭壇 주변에 꼭 심어주소서,
    태백산을 진달래산으로 만듭시다,
    지금까지 문헌에 나오는 신단수는 어떤 나무인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높은산 꼭대기에서 자랄수있는 나무가 버드나무,느티나무,박달나무를 이야기 하지만 소견으로는
    가문비나무, 주목나무, 등불나무, 모링가.소사나무들이며 꽃은 단연 진달래 입니다,
    신단수라는 나무는 없으므로 신단은 곧 천제단을 의미하며 신단주변에 있는 나무라고 생각됩니다,

  • 배달의 혼불
    2020.10.16 14:05

    국조단군 초상화를 바꾸자고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桓雄께서 처음으로 하늘을 열고 태백산(白頭山) 神檀樹 아래에 내려와"
    경주이씨시조 알평 초상화가 국조단군 초상화라는 사실을 누가 알것인가?

    단군할아버지 2011.03.15
    "우리의 조상이시며 신선도의 완성자이신 단군 왕검 할아버지" 사진을 여러 인터넷에 올리어
    많은 사람들이 단군할아버지가 이렇게 훌륭하게 생기셨구나!
    그동안 팔짱끼고 의자에 앉아있는 초라한 모습이 참모습(천진)이 아니였구나 하면서 새로운 인식을 갖도록 건의 드립니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 러시아에서 발견된 단군 초상화 2020.07.24 19:03:44
    러시아에서 국조단군 역사를 연구 발굴하는 시대 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더 잘알고있는 고조선의 실체 카자흐스탄의 단군역사 카자흐스탄 단군전 동전발행
    원시반본이니 단군 돌아오신다!  생생유전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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