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삼천사 정보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1) 원효(元曉)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2년(조선 성종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여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입상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三千寺)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평산 성운 화상의 발원과 삼천사 불자들의 염원을 함께하여 조성된 세존진신사리불탑은 한국 석탑의 대표로 뽑는 국보 제48호 오대산 월정사 9층 석탑과 인도 석탑의 대표인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아쇼까 (석주 4두(四頭) 사자..
북한산 국녕사 정보 북한산성 안에 자리했던 주요 사찰들은 대부분 1712년 성능(聖能) 스님이 북한산성 도총섭이 된 이후에 승병이 머무르는 군영(軍營)으로서 창건되거나 중창이 되었다. 북한산성 가사당 암문 아래에 자리한 국녕사도 1713년 승병(僧兵)의 군영이라는 목적으로 창건된 사찰이다. 당시 승군들은 북한산성 수비와 관리를 책임지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승군이 머무를 수 있는 도량은 필수적이었다. 창건 이후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군(義僧軍)이 폐지 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그러나 이후 노역에 지친 많은 스님들이 떠나게 되어 한국전쟁 이후까지 폐허로 남게 되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국녕사가 편안하면 나라가 편안하다”고 한다. 이는 도성의 외곽에서 수비를 책임지는 막중한..
북한산 노적사 정보 1711년(숙종 37)에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 성내의 군사요충지에 사찰 13곳을 건립하여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맡겼다. 이런 사찰을 승영사찰(僧營寺刹)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병영의 역할을 겸하게 하였다. 노적사도 승영사찰이었는데 당시에는 진국사(鎭國寺)라고 했다. 위치로 미루어 중성의 수축과 방어를 맡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산성 축성 과정과 현황을 정리한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에는 "진국사는 노적봉(露積峯) 아래에 있으며, 85칸으로, 승려 성능(聖能)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현재 경내에 있는 대웅전, 나한전, 삼성각, 종각,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석불입상은 모두 최근에 지은 것으로, 옛 진국사의 모습은 남..
북한산 태고사 정보 고려 말기에 대표적인 선승이자 왕사·국사를 지낸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가 창건한 사찰이다. 보우는 중흥사를 중창하고 그 동편에 암자를 지어 5년간 머물렀는데, 이 암자가 바로 지금의 태고사(太古寺)이다. 고려 멸망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으나, 북한산성 축조와 함께 승병이 주둔하는 승영사찰로 1713년에 중창되었다. 이 절을 중창한 성능대사가 지은 북한지(北漢誌, 1745년 간행)에는 태고사의 규모는 131칸에 이르면, 경내에는 서적 출판용 목판 5700여 매와 활자 11두(斗), 화약용 흑탄 1,600여 석을 비축하였다"라고 전한다. 현재 태고사에는 지정문화재로 보우의 행적을 기록한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와 그의 사리탑인 원증국사탑(보물 제749호)이 있으..
연화도 연화사 정보 연화도의 연화봉 아래에 위치한 연화사는 대지면적 1300여 평 건평 120평의 사찰로 대웅전, 미륵불, 3각 9층석탑, 요사채 2동, 진신사리비, 연화사 창건비 등이 있다. 1998년 8월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고산 스님이 도사가 머물며 수도했다는 산자락에 절집 ‘연화사’를 창건하였다. 400여 년 전 연화도사, 사명대사, 자운선사 등이 이곳에서 수행하였다고 한다. 연화대사와 사명대사의 수도성지로 알려진 연화사는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불교성지로서 향후 불교성지의 석가탄생 테마관광 순례지로 계발할 계획이다. 연화도는 연화사와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는 보덕암이 있어 불자들이 많이 찾고 있다. 연화도 불교역사는 500여년전 연산군(1496~1506)의 억불정책으로 연화도로 피신하여 ..
연화도 보덕암 정보 보덕암(菩德庵)은 연화도의 대표적인 사찰인 연화사와 더불어 관음성지로 유명한 사찰인데요. 가파른 절벽 경사면에 지어져서 바다 쪽에서 보면 5층이지만 섬 안에서 보면 맨 위층의 법당이 단층 건물로 보입니다. 보덕암 주위의 5층 석탑과 해수관음상으로 내려가는 동백꽃 터널이 아름다운 사찰입니다. 연화도 보덕암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5년 2월 23일 일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연화도 + 보덕암 + 연화사 + 반하도 + 우도 + 욕지도 3. 소재지 : 경남 통영시 욕지면 십리골길 315(욕지면 연화리 44) 4. 사찰 관람 코스 : 5층 석탑 → 보덕암 입구 → 보덕암 → 해수관음상 → 보덕암 입구 연화도 보덕암 다음지도 및 대중교통편 1. 연화도 ..
추월산 보리암 정보 보리암(菩提庵, Boriam)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후 40년(1607) 승려 신찬(信贊)이 고쳐지었다. 이후 효종 1년(1650) 다시 스님들이 힘을 모아 재건하였다고 한다. 현재 보리암은 백양사에 딸린 암자로서 1983년 주지 성묵(聖墨) 스님에 의해 지금 법당을 복원하였다. 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한편 이곳 보리암은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의 부인 흥양 이씨가 순절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흥양 이씨 부인은 왜적에게 쫓기자 이곳 절벽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추월산 보리암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5년 2월 15일 토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추월산 +..
무등산 증심사 정보 증심사는 9세기 중엽 철감선사가 세운 고찰입니다. 고려 선종 11년(1094년) 혜조국사가 중창하였고, 조선 세종 25년(1443) 김방이 삼창하였으나,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렸습니다. 이후 광해군 원년(1609) 석경, 수장, 도광 3대 선사가 4창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근대에 이르러,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1년 4월 22일, 오백전과 노전(사성전)을 제외한 대웅전, 명부전, 극락전, 회승당, 취백루 등 조선 중기의 건축물들이 모두 소실되었고, 귀중한 문화재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후 1970년대부터 복원 불사가 진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984년 2월 17일, 증심사 일원은 그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인정받아 광주시 문화재자료 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무등산 증심사 ..
무등산 원효사 정보 무등산 원효사는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의 지증왕이나 법흥왕 때 세원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국통일을 전후한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이곳에 머물면서 암자를 개축한 뒤부터 원효사·원효당·원효암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당시의 이름 있는 화엄종승이 창건한 뒤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전하며, 문정왕후의 섭정 때 사세가 다시 일어난 뒤 선조 때의 승병장이었던 영규(靈圭)가 수도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정유재란 때 전소된 뒤 증심사를 중창했던 석경(釋經)이 직접 기와를 구워 중창하였다. 무등산 원효사 여행 일자 및 여행코스 1. 여행 일자 : 2025년 2월 2일 일요일 2. 산행 및 여행 장소 : 원효사 + 무등산 인왕봉 + ..
함양 용추사 정보 용추사(龍湫寺)는 신라 소지왕 9년(487년)에 각연대사가 창건한 옛 장수사와 4대 부속 암자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6·25 때 소실되어 1953년 안의면 당본리에 있는 봉황대에 별원을 차려 놓았다가 옛터의 복원을 추진하여 1959년 재건하였다. 주변경관이 수려한 자연 속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장수사의 흔적을 간직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호 덕유산장수사일주문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장수사 시절 설파상언대사가 전국의 승려들을 모아놓고 화엄경을 강의했던 유명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추사 뒤편 용추계곡 상류에는 기백산 군립공원과 용추자연휴양림이 있고, 서북쪽 산 정상에는 정유재란 때 왜구와의 혈전이 벌어졌던 황..
양양 휴휴암 정보 휴휴암(休休庵)은 강원도 양양군 현남면 광진리 해변가에 자리한 작은 암자이다. 휴휴암은 일상의 번뇌를 내려놓고 쉬고 또 쉬라는 의미에서 지어졌다. 1997년 홍법스님이 창건한 이곳은 묘적전이라는 법당 하나로 시작되었으나 1999년, 바닷가에 누운 관세음보살 형상의 바위가 발견되면서 기도처로 유명해졌다. 묘적전 아래 바닷가에는 활짝 핀 연꽃을 닮아 연화대라고 이름 지어진 너른 바위가 있다. 연화대에서 관세음보살 바위와 거북이 형상의 바위를 찾아볼 수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밖에 발가락 바위, 발바닥 바위, 주먹바위 등 기이한 모습의 기암괴석이 신비감을 더한다. 때로는 해변으로 먹이를 찾아오는 황어 떼도 만날 수 있다. 휴휴암에는 묘적전, 다라니 굴법당, 관음범종,..
인천 만월산 약사사 정보 만월산(滿月山) 약사사(藥師寺)는 대한불교화엄종의 본산으로 고려가 건국될 때 왕명으로 만월산 아래 개국사(開國寺)로 창건하여 항상 10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정진 한다 하여 절이름이 백인사(白人寺)로 바뀌었다. 그 후 조선시대 배불정책으로 제9대 성종 임금 때 폐쇄되었던 것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시던 보월스님께서(1900년) 중생들의 괴로움의 근본인 무명업식을 깨우쳐 주어야겠다는 큰 서원으로 동방만월세계 약사유리광여래 부처님을 모시고 약사암(藥師庵)이라 명칭하고 보월스님의 뒤를 이어 인천 혜광사에서 수도 중이시던 월승 한능해스님께서 재중창하여 끝없는 서원과 정진으로 화엄종 대본산 약사사(藥師寺) 대가람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인천 만월산 약사사 여행 일자 및 관람 코스 1.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