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한산도 제승당

    1. 여행 일자 : 2022년 2월 22일 화요일

     

    2. 여행지 : 통영 한산도 제승당(制勝堂)

     

    3. 소재지 :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한산일주로 70(두억리 산 39)

     

    4. 통영 한산도 제승당(制勝堂) 소개

     

     

    제승당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조선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세계해전사상 길이 빛나는 한산대첩을 이룬 후, 제승당을 짓고, 선조 26년(1593)부터 선조 30년(1597)까지 삼도수군의 본영으로 삼아 제해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유서깊은 사적지이다.

     

    선조 30년(1597)에 일단 폐진되었던 제승당은 142년 후인 영조 15년(1739) 통제사 조경이 중건하고, 유허비를 세운 이래 1959년 정부가 사적으로 지정하고 여러차례 보수하여 왔다. 1975년 정부는 경역을 확장하고 보수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정화하였다. 이곳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공의 영정을 모신 영당과 유허비, 그리고 많은 송덕비, 사정, 수루 등 부속시설이 말끔히 단장되어 있어 수려한 주변경관과 더불어 당시 조선 수군본영의 면모를 되찾아 볼 수 있다.

    공은 가셨어도 나라 사랑하시던 그 마음은 출렁이는 푸른바다와 함께 언제까지나 살아 남아 조국 수호의 영원한 횃불이 되고 있다.

     

    5. 통영 한산도 제승당 다음지도 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1) 통영 한산도 제승당 다음지도

     

     

     2) 교통편 : 배편에 대한 정보는 가보고싶은 섬에서 '한산도'로 검색해서 도착지를 한산(제승당)으로 선택해서 예매하시면 되고, 길찾기는 다음지도 통영 제승당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6. 여행 사진

     

    ▲ 오늘은 블랙야크 섬&산 100에 선정된 한산도 망산 산행을 제승당여객선터미널에서 마치고, 이충무공 유적지인 제승당을 다녀왔습니다. 

     

    ▲ 제승당으로 가는 길

     

     

    ▲ 공중화장실

     

     

    ▲ 사적 제113호인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지 표지석이 매표소 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 매표소입니다. 제승당의 관람료는 무료이고, 관람시간은 하절기(3월~9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10월~2월)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중앙의 문은 한산문(閑山門)인데요. 매표소를 지나면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제승당의 초입관문입니다. 

     

    ▲ 적송(赤松, Red Pine Tree)

     

    겉껍질이 붉은빛이 돌아 적송이라 부르는 육송인데, 적송은 황장목, 춘양목이라고 부르며, 곧게 자라는 데다가 껍질이 얇고 결이 곱고 부드럽다. 또한 켠 뒤에도 크게 굽거나 트지 않으며, 켜면 붉은빛 또는 보랏빛을 띤다. 

     

     

    ▲ 휴게소와 제승당 관리사무소(제승당 400m →)

     

     

     

    ▲ 한산대첩기념비, 상조도, 한산항등표, 천개산, 벽방산, 고동산

     

    한산대첩기념비(閑山大捷紀念碑)

    한산대첩기념비는 이순신의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979년에 세운 비석이다. 비석의 높이는 20미터로 거북선을 본뜬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다. 한산대첩기념비라고 쓴 정면의 제목은 박정희 대통령이 썼고, 비문은 노산 이은상 선생이 짓고 글씨는 우석 김봉근 선생이 썼다. 한산대첩기념비의 내용은 1592년 7월 8일과 10일에 있었던 한산대첩을 서사시 풍으로 표현한 것이다. 7월 8일에 왜적의 배 73척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하여 학인진*을 펴고 포와 화살을 쏘아 47척을 격침시키고 12척을 포획했으며, 7월 10일 새벽에는 안골포**에 머물고 있던 왜적선 42척을 불태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학익진(鶴翼陣) : 학이 날개를 펼친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원의 형태이기 때문에 적을 포위하면서 공격하기에 적합한 진법이다.

    ** 안골포(安骨浦)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동동에 있었던 포구

     

    ▲ 한산도가와 한산도야음

     

    한산도가(閑山島歌)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胡茄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산도야음(閑山島夜吟)

    한 바다에 가을 빛 저물었는데 찬 바람에 놀란 기럭 높이 떳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 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 수호사

     

    수호사는 제승당을 지키고 보호하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화사업이전에는 제승당 경내에 있었으며, 제승당의 관리책을 맡고 있던 당장이 거처하던 집이었으나 현위치로 옮겨 신축하였다. 

     

    ▲ 우물(Well)

     

    이 우물은 1593년 당시 이순신이 한산도(閑山島) 통제영(統制營) 안에 운주당을 창건하고 1,340일 동안 머물면서 군사들과 함께 사용했던 우물이다. 바다에 가깝지만 짠물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 대첩문(大捷門)

     

    충무사와 제승당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입구에 있다. 1976년 정화사업계획에 따라 현 위치에 신축하였다. 

     

     

    ▲ 왼쪽의 문은 제승당으로 들어가는 충무문이고 정면방향은 비상선착장입니다.

     

    ▲ 충무문(忠武門)

     

    ▲ 충무문 오른쪽의 비상선착장은 출입제한구역이네요. 

     

    ▲ 충무문을 들어서면 제승당 앞에 제승당 안내도( ← 충무사(영당) · 유허비 · 정화기념비 · 홍상문 · 한글비, ↖ 한산정(활터), 제승당(운주당) ↑, 한산대첩도 ↗, 수루 → , 후손공덕비 ↘)가 있는데요. 제승당을 기준으로 왼쪽 끝에 충무사가 있고 오른쪽에 수루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 왼쪽 충무사(영당) 방향이고,

     

    ▲ 오른쪽 수루 방향입니다. 먼저 충무사 방향부터 둘러봅니다.

     

    ▲ 안내소

     

     

    ▲ 한글비(Hangeul Monument)

     

    한글비는 1948년에 팔일오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경상남도 초 · 중등학교의 학생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비석이다. 비문은 위당 정인보가 짓고 글씨는 일중 김충현이 썼다. 비문은 이순신의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이곳에서 그 정신을 이어 받자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 제승당 유허비

     

    ▲ 제승당 유허비(制勝堂 遺墟碑)

     

    제승당 유허비는 제승당을 다시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제승당은 임진왜란 때 당시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였던 이순신(李舜臣)이 작전지휘본부로 사용한 운주당이 있던 곳이다. 운주당은 1597년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졌는데, 제승당은 1739년 통제사 조경(趙儆)이 다시 지은 것이다.

    3개의 비석 중 왼쪽 비석은 1739년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세운 것이다. 오른쪽 비석은 그곳이 전에 있던 비석을 묻은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이 비석은 이순신의 후손이자 제198대 통제사를 지낸 이규석(李奎奭)이 세웠다. 가운데 비석은 오른쪽 비석의 뒷면을 한글로 풀어 새겨 놓은 것이다.

     

    ▲ 제승당 정화기념비(制勝堂 淨化紀念碑)

     

    제승당 정화기념비는 충의와 구국의 정신으로 일생을 바친 이순신이 거처하였던 제승당 일대를 사적으로 정비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비문은 전 문교부장관 이선이 짓고 글씨는 서희환이 썼다. 

    이 기념비를 세운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75년 8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이 제승당을 방문하여 충무사에 참배하고는 경내를 둘러보며 "3년 전보다는 잘 정돈되어 있으나 경역이 좁고 짜임새가 없다. 이 곳은 이 충무공께서 세계해전사상 길이 빛나는 한산대첨을 이루신 후 운주당을 지으시고 3년 8개월 동안 조선수군의 본영으로 삼고 국난을 극복한 유서 깊은 사적지이므로 공의 위업을 기리고, 살신구국의 높은신 뜻을 후손에게 전하기 위하여 현충사 수준으로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펴쳐 국민정신 교육의 도장으로 만들라."라고 말했다. 그 말에 따라 관계기관(청와대,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경상남도 등)이 함께 제승당을 정비하였다. 지금은 경남도청에서 제승당을 관리하고 있다. 

     

    ▲ 충무사(忠武祠, Chungmusa Shrine)

     

    충무사는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영정은 종이품 통제사의 관복 차림으로 그려져 있다. 매년 봄 · 가을에는 통영시민들이 제승당에서 제사를 올린다. 또 한산대첩 기념일인 8월 14일(양력)에는 해군작전사령관과 해군사관생도들이 참배한다. 통영시는 한산대첩제를 성대히 거행하여 이순신의 정신을 기리며 이어가고 있다. 

    사당에는 국보 제76호인 서간첩의 일부와 이순신이 중국 송나라 역사를 읽고 썼던 독후감이 병풍으로 만들어져 보관되어 있다. 현재의 이순신 영정은 1978년에 사적을 정비할 때 정형모 화백이 그린 것이다. 

     

    ▲ 충무사 안의 충무공 이순신 영정

     

    ▲ 충무사 안의 독송사(讀宋史)

    이글은 충무공께서 정유년 일기중 송나라 역사를 읽고 독후감을 쓰신 내용이다.

    ※ 내용중 ~ 무릇 신하가 임금을 섬기에 있어서는 죽음이 있을 뿐 두 가지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 충무사 안의 1/25로 축소 제작한 모형 거북선

     

    ▲ 되돌아 나가는 길

     

    ▲ 이정표(← 화장실, 한산정 →)

     

    ▲ 화장실

     

     

    ▲ 한산정(閑山亭, Hansanjeong Pavilion)

     

    한산정은 이충무공이 부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연마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과녁까지의 거리는 약 145m 정도로 활터와 과녁 사이에 바다가 있는 곳은 이곳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충무공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해전에 필요한 실전 적응 훈련을 하기 위하여 이곳에 활터를 만들었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이곳에서 활쏘기 내기를 하고, 내기에 진 편에서 떡과 막걸리를 내어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는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러한 기록에서 활쏘기 훈련에 흥미를 높이는 동시에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이고자 한 이충무공의 지혜를 볼 수 있다. 한산정에서 함께 활쏘기를 연하던 병사들은 대부분 경상, 전라, 충청 출신으로 선조 27년(1594)에 이충무공의 건의로 무과특별시험에서 선발된 사람들이었다. 

     

    ▲ 한산정에서 바라본 과녁

     

    ▲ 수루(戌樓, 술루)

     

    이 수루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왜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자주 찾았던 망루였다. 수루에서 남해안의 왜적의 동태를 파악한 후에, 이를 봉화, 연, 고동 소리 등을 이용하여 오른쪽의 고동산, 왼쪽의 미륵산, 뒤쪽의 망산 등 주변 지역으로 알렸다. 이순신은 수루에 올라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나랏일을 걱정하는 시를 읊기도 하였다. 1976년의 제승당 정화사업 때 한산만을 내려다볼 수 있는 현재의 위치에 수루를 새로 지었다. 이후 옛 문헌의 내용에 근거하여 2014년에 전체를  나무로 고쳐 지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제승당의 측면 모습

     

    ▲ 이순신 후손 삼도수군통제사 공덕비

     

    이순신 후손 삼도수군통제사*공덕비는 이순신의 후손으로 삼도수군통제사나 부사**의 벼슬을 지닌 이들 중 어진 정치로 칭송을 받은 6명의 비석이다. 한산도와 거제도의 주민들이 이들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던 공덕비를 이곳에 모아 놓았다. 오른쪽부터 이태상, 이한창, 이태권, 이승권, 이규석, 이규안***의 공덕비가 늘어서 있다. 대부분의 비석에 '撫恤島民 天秋不忘(무휼도민 천추불망)'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섬사람들을 따뜻하게 돌보아 준 공덕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 : 조선시대에 삼남 지방(전라·경상·충청)의 수군을 지휘, 통솔한 수군 총사령관에 해당한다. 임진왜란 초기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은 실질적으로는 경사우수영, 전라우수영, 충청수영까지 지휘,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균과의 갈들이 문제가 되자 조정에서는 선조 26년(1593) 7월에 종2품 삼도수군통제사를 신설하여 초대 통제사롤 이순신을 임명하였다. 이에 따라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와 전라좌수사를 겸임하게 되었다. 삼도수군통제사는 고종 32년(1895)까지 유지되었고,  303년 동안 208명의 통제사가 임명되었다.

    ** 부사(府使) : 조선시대의 지방 장관직으로 정3품에 해당한다.

    *** 이태상(5대손, 121대 통제사), 이한창(6대손, 138대 통제사), 이태권(8대손, 부사), 이승권(8대손, 172대 통제사), 이규석(10대손, 198대 통제사), 이규안(10대손, 203대 통제사)

     

     

    ▲ 제승당(制勝堂, Jeseungdang Hall)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이순신이 부하들과 작전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하던 곳이다. 이곳은 현재의 해군작전사령관실과 같은 기능을 담당했다. 이순신은 선조 26년(1593) 7월 15일부터 한양으로 압송되어 갔던 해인 선조 30년(1597) 2월 26일까지 3년 8개월 동안 이곳에서 주둔했다.  '승리를 만드는 집' 이라는 이름처럼 제승당은 이충무공이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군사업무를 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화약을 사용한 신무기인 총통의 제작과 보급에도 힘썼다. 이곳은 1,491일 동안의 일을 기록한 <난중일기(亂中日記)> 중 1,029일의 일기와 많은 시가 쓰인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원래 이순신이 기거했던 운주당(運籌堂)*의 터이다. 이순신은 운주당을 집으로 사용하는 한편 집무실로도 사용하였다. 당신의 운주당은 이순신이 통제사에서 파직된 후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폐허가 되었다. 이후 영조 15년(1739)에 통제사 조경이 다시 세우고 이름을 제승당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제승당은 1976년 제승당 정화사업 때 다시 지은 것이다. 

    *운주(運籌) : 지혜로 계책을 수립한다는 뜻

     

    ▲ 제승당 여객선터미널로 되돌아가는 길

     

     

    ▲ 오늘은 한산도 망산 산행 후에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를 찾아 제승당을 둘러보았는데요.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113호)인 제승당은 작년 7월부터 무료로 개방되었다고 하니, 부담없이 역사체험의 기회를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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