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트인 조망이 압권인 청량산 축융봉, 장인봉 환종주

    1. 산행 일시 : 2019년 9월 8일 일요일, 10:30 - 16:28


    2. 산이름    : 봉화 청량산(870m)


    3. 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4. 산행 코스 :  탐방안내소(청량지문) → 축융봉 → 밀성대 → 산성입구 → 입석 → 응진전 → 청량사 → 김생굴 → 자소봉 → 탁필봉 → 연적봉 → 뒷실고개 → 자란봉 → 하늘다리 → 선학봉 → 장인봉 → 금강대 → 탐방안내소 → 청량교 → 청량산종합상가지구 주차장


    5. 산행 거리 및 소요시간 : 13.33km(5시간 58분)


    탐방안내소(10:30) → 2.92km → 축융봉(12:02) → 3.13km → 입석(13:00) → 1.61km → 청량사(13:44) → 1.48km → 자소봉(14:40) → 0.79km → 뒷실고개(15:02) → 0.76km → 장인봉(15:32) → 2.64km → 청량산종합상가지구 주차장(16:28)

     

    6. 봉화 청량산(淸凉山) 정보



    봉화읍에서 동남쪽으로 26km 떨어진 청량산(869.7m)에는 금탑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봉우리 12개와 8개의 동굴이 있다.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옛부터 소금강이라 전하여지는 명산으로써 태백산에서부터 시작되는 낙동강 줄기가 절벽을 감아돌아 절경을 빚어내고 있으며,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대와 선녀가 가무유희를 즐겼다는 선녀봉을 비롯하여 12봉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신라때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김생, 퇴계이황등 선현들이 수도를 하던 유불선교 발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을뿐만 아니라 고려 공민왕 10년에 제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왕이 이곳에 와 마지막요새로써 산성을 축조하였고, 난이 끝난후 왕이 이곳을 떠나자 주민들이 왕을 추모하기 위하여 공민왕당을 세우고 봄, 가을로 공을 드리자 대란이 있을때 마다 소리가 울려 재난을 피할수 있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곳 공민왕당을 오르는 등산로는 말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지나다녔다는 五馬道가 있다.


    7. 봉화 청량산 산행 지도 및 gpx 파일 다운로드





    2019-09-08-경북-봉화군-탐방안내소-축융봉-산성입구-입석-응진전-청량사-자소봉-하늘다리-장인봉-금강대-주차장.gpx


    8. 산행 사진


    ▲ 탐방안내소(청량지문,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에서 청량산 산행을 시작합니다. 왼쪽은 축융봉, 오른쪽은 금강대 방향입니다. 


    ▲ 탐방안내소와 청량지문입니다. 왼쪽의 축융봉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관문입구(축융봉 2.9km↑)


    ▲ 팔각정자


    ▲ 오른쪽의 축융봉(2.78km)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축융봉으로 직진합니다. 오른쪽은 8코스 예던길입니다.


    ▲ 전망대를 잠시 다녀옵니다.


    ▲ 전망대


    ▲ 전망대에서 바라본 건지산


    ▲ 전망대에서 바라본 청량산종합상가지구입니다. 화면 중앙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대형주차장이 오늘의 산행 날머리입니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35번 국도와 청량산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청량교


    ▲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대, 장인봉, 선학봉 


    ▲ 전망대를 잠시 둘러보고 축융봉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축융봉으로 오르는 계단



    ▲ 축융봉의 왼쪽(서쪽) 암봉에 먼저 올랐습니다.


    ▲ 축융봉 서쪽 봉우리에서 바라본 건지산, 용두산, 만리산


    ▲ 축융봉(해발 845.2m)


    ▲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는 어떤 봉우리일까요?


    ▲ 축융봉에서 바라본 용두산, 만리산, 응봉산, 풍락산


    ▲ 축융봉에서 바라본 장인봉, 선학봉, 하늘다리, 자란봉, 문명산, 향로봉, 연화봉,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금탑봉, 경일봉, 탁립봉 방향, 청량사, 응진전


    ▲ 축융봉에서 바라본 일월산


    ▲ 축융봉에서 바라본 두리봉



    ▲ 뒤돌아본 오마도터널 갈림길


    ▲ 공민왕당 갈림길(↖ 밀성대 1.2km, ↓축융봉 0.2km, 공민왕당 1.1km ↗)에서 밀성대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 전망데크 앞(현위치 3)


    ▲ 전망데크에 있는 청량산성 안내도


    청량산성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새였다. 이곳은 천연 요새로서의 지형적 요건들을 두루 갖추어 삼국시대부터 신라와 고구려가 서로 영토를 빼앗기 위한 각축장이 되었고 서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휘감아 돌고 천인절벽의 험준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지세는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량산의 산성은 산 전체를 감싸고 있는데, 동문지가 있는 밀성대 아래에서 축융봉을 거쳐 구축된 일명 '공민왕산성(恭愍王山城)'과 다시 경일봉에서 선학봉을 지나 청량사가 있는 계곡 옆으로 포곡선을 그리며 형성된 일명 '청량산성(淸凉山城)'으로 구분되며, 축융봉과 경일봉을 잇는 일명 '오마대로(五馬大路)'로 불리는 '오마도산성(五馬道山城)'이 공민왕산성과 청량산성을 이어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오마도 산성은 산성의 기본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방어기능 외에도 청량산성과 공민산성을 이어주는 도로의 기능을 하고 있어 다른 지역의 산성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산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성이 축조된 시기는 산성유지에서 삼국시대로 보이는 일부 유물이 수습된 바 있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공민왕이 2차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해 왔을 때 개축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보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의 형태는 험준한 지세를 이용하여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구간별로 비교적 주변에서 구하기 용이한 돌이나 흙으로 성벽을 구축한 석성(石城)이나 토성(土城)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산성은 장군의 지휘소였던 장대와 건물터, 성문터 등의 유구가 남아 있고 동문지에서 밀성대를 거쳐 북치성까지의 구간은 석성으로, 북치성에서 자연지형구간을 지나 축융봉까지의 구간은 토성으로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현재 보이는 이곳은 2009년에 복원된 토성구간으로 길이는 약 334m에 이르며 축육봉 바위 근처에 북문지로 추정되는 터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 전망데크에서 바라본 청량산의 봉우리들


    ▲ 산성을 따라 내려갑니다.


    ▲ 청량산을 당겨보았습니다. 선학봉과 자란봉을 이어주는 하늘다리와 청량사와 응진전이 보이네요.




    ▲ 밀성대입구(← 밀성대 0.15km, 북문지 1.2km↓)에서 밀성대를 다녀옵니다.  


    ▲ 공민왕이 군율을 어긴 죄수를 처형했다는 전설이 어려 있는 밀성대(密城臺)의 밀성루(密城樓)


    산성 입구에서 축융봉 가는 등산 코스 700m 지점에 있는 밀성대는 공민왕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들어와 산성을 쌓고 군사를 훈련하며 대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을 때, 명령을 듣지 않는 군졸이나 백성들을 밀어서 처형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장소이다. 밀성대 주위에는 공민왕이 쌓았다는 산성의 흔적이 아직도 완연한데, 밀성대의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 밀성대에서 바라본 축융봉 뱡향


    ▲ 밀성대에서 바라본 만리산,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향로봉, 연화봉, 금탑봉


    ▲ 밀성대에서 바라본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경일봉


    ▲ 밀성대입구에서 왼쪽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을 막아 놓아서 정면의 방향으로 올라가서 멀리 돌게됩니다.


    ▲ 삼거리갈림길(← 공민왕당 0.6km, 밀성대 0.5km ↑, 산성입구 1.0km →)에서 산성입구방향으로 내려갑니다.


    ▲ 밀성대입구에서 출입을 금지한 곳으로 바로 내려오면 이곳 계단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 산성입구에 도착합니다.


    ▲ 뒤돌아본 산성입구


    ▲ 축융교를 지나


    ▲ 입석에 도착합니다.


    ▲ 입석(立石)


    ▲ 응진전과 청량사로 올라가는 입석 등산로입구입니다.


    ▲ 낙석위험 지점으로 안전상 접근금지


    ▲ 삼거리갈림길(↖ 청량사 1.0km, 응진전 0.6km ↗) 에서 오른쪽의 응진전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응진전의 무위당


    ▲ 응진전(應眞殿)


    금탑봉 중간절벽 동풍석 아래에 위치한 청량사의 부속 건물 중 하나였을 것으로 보인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삼포계 맞배 기와집으로 내부에는 석가삼존불과 16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특히 16나한과 더불어 법당 내부에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대장공주의 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공민왕의 청량산 몽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앞뒤가 모두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위쪽 절벽 위에는 동풍석이, 요사체 옆의 절벽 사이에는 감로수가 흘러나온다. 또한 법당 앞에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주세은 자신의 자를 따서 경유대라 이름하였다. 


    ▲ 금탑봉 아래 응진전


    ▲ 풍혈대를 잠시 올라갔다 내려옵니다.


    ▲ 풍혈대(風穴臺)


    풍혈(風穴)은 바람이 통하는 굴을 말한다. 이곳은 층암 절벽이 남북으로 통하여 오뉴월 염천에도 항상 서늘한 바람이 분다.  신라 말 대문장가로 알려진 최치원(崔致遠, 857~?)이 이 부근에 머물 때 이곳에서 독서와 바둑을 즐겼던 것으로 전한다. 풍혈대 바로 밑에는 통일신라시대 김샘(金生, 711~?)에 버금가는 명필 요극일(姚克一)이 글씨 공부를 했다는 극일암(克一庵) 터가 남아 있다. 



    ▲ 총명수


    금탑봉(金塔峰) 중층(中層) 에는 신라 말 대문장가로 알려진 최치원(崔致源, 857~?)에 관한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관련한 유적으로는 치원암 · 총명수 · 풍혈대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총명수는 최치원이 마신 뒤 더욱 총명해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길 절벽이 상하로 우뚝 솟은 곳에서 물이 일정하게 솟아나는데, 가뭄이나 장마에 상관없이 그 물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 이 물을 마시면 지혜와 총명이 충만해진다고 하여 예로부터 과거 준비를 하던 선비들은 물론, 경향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 효험을 보왔다고 한다. 총명수 바로 옆은 최치원의 이름은 딴 치원암(致遠庵)이 있던 곳이다. 


    ▲ 어풍대(御風臺)


    금탑봉 중층에 위치하고 있는 어풍대는 내청량과 외청량을 연결하는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청량지(淸凉誌)」 의 기록에 따르면, 열어구가 바람을 타고 보름동안 놀다가 돌아갔다고 하여 어풍대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금탑봉 중층에는 어풍대와 함께 치원대, 요초대, 경유대 등이 나열되어 있으며 이들 대에서는 기암절벽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청량산의 연꽃같은 봉우리와 연꽃 꽃술에 자리한 듯한 청량사의 모습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 어풍대에서 바라본 연화봉,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과 청량사


    ▲ 왼쪽의 청량사로 내려갑니다.


    ▲ 산꾼의 집과 청량정사


    ▲ 청량사로 들어섭니다.


    ▲ 청량사 5층 석탑에서 바라본 금탑봉과 축융봉


    ▲ 청량사 유리보전



    ▲ 청량정사 바로 전에 자소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입니다. 산악회의 리본들이 걸려 있네요.


    ▲ 김생굴을 다녀옵니다. 김생굴은 아래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합니다. 


    ▲ 김생폭포(金生瀑布)


    김생 굴 앞에 있으며 장마철에 여러 계곡의 물이 합류하여 폭포를 이루어 오산당(吾山堂)에서 바라보면 천길 높은 곳에 흰 물줄기가 쏱아지는 것이 장관이다. 송재 이우가 쓴 시의 한 구절인 '옥홍황음간중천'이라는 표현에서 김생폭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 김생굴(金生窟)


    경일 · 금탑 양 봉우리 사이에 있으며 굴 속의 면적이 넓어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천연 암굴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김생이 여기에서 10여년간 글씨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 이름이 붙여졌다. 붓을 씻었다는 우물의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김생과 봉녀(縫女)가 글씨와 길쌈 기술을 겨루었다는 전설이 어린 곳이기도 하다. 


    ▲ 김생굴을 들렸다 자소봉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자소봉으로 올라갑니다. 


    ▲ 자소봉입구(현위치번호 6)에서 자소봉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 자소봉은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어 올라갈 수는 없고


    유리보전(琉璃寶殿)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이다. 원래 보살봉(普薩峯)으로 불리었는데 주세붕(周世鵬)이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다. 9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내산(內山) 가운데 가장 높으며 청량산에서 세 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자소봉은 9층의 층암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 11개의 암자가 각 층마다 나열되어 있었다고 전해지며 청량산 불교 유적지의 중심지였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암자의 유지(遺地)가 남아 있다. 


    ▲ 자소봉 아래에 자소봉(해발 840m, 보살봉) 표지석이 있습니다.


    ▲ 자소봉에서 바라본 만리산, 응봉산, 풍락산, 문명산


    ▲ 자소봉에서 바라본 탁립봉(卓立峰)과 일월산


    경일봉의 위 바깥 뒤쪽에 있으며 자소봉에서 볼 때 동쪽 끝에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다. 옛날에 이름이 없었을 때 주신재가 탁립봉이라 명명하였다. 


    ▲ 자소봉에서 바라본 두리봉, 축융봉, 밀성대, 경일봉, 금탑봉


    ▲ 자소봉에서 계단을 내려와서 탁필봉 방향으로 갑니다.



    ▲ 탁필봉


    ▲ 탁필봉(해발 820m) 표지석



    ▲ 연적봉(해발 846.2m)


    ▲ 연적봉에서 바라본 일월산, 탁립봉, 자소봉, 탁필봉입니다. 자소봉과 탁필봉은 겹쳐보여서 자세히 보아야 분간이 됩니다. 


    ▲ 연적봉에서 바라본 두리봉, 축융봉, 연화봉


    ▲ 연적봉에서 바라본 연화봉, 향로봉, 건지산, 자란봉, 하늘다리, 용두산, 선학봉, 장인봉


    ▲ 장인봉 오른쪽으로는 만리산이 보이네요.


    ▲ 뒷실고개(← 청량사 0.8km, ↓자소봉 0.7km, 하늘다리 0.5km↑)에서 하늘다리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자란봉은 자란봉임을 알리는 표지석은 없네요.


    ▲ 자란봉과 선학봉을 연결하는 하늘다리에 도착합니다.


    ▲ 청량산 하늘다리(Sky Bridge)


    청량산 하늘다리(Sky Bridge) 는 해발 800m 지점의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연장 90m 통과폭 1.2m 지상고 70m의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현수교량으로서 2008년 5월 봉화군에서 유교문화권 관광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설치하였습니다. 주요 자재는 최첨단 신소재인 PC 강연 케이블과 복합유리섬유 바닥재를 사용하여 탐방객들의 안전을 도모하였으며, 통과하중이 340kg/㎡으로 최대 10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 · 시공 되었습니다. 

    *현재는 산악보도교 중 국내 최장 · 최고의 규모(높이 100m, 길이 200m, 폭 1.5m)인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가 2018년 1월 11일 개통되었습니다. 


    ▲ 하늘다리와 선학봉


    ▲ 하늘다리를 건너갑니다.


    ▲ 하늘다리에서 바라본 두리봉과 축융봉





    ▲ 위쪽의 봉우리가 선학봉에서 가장 높은 곳일 듯합니다. 직접 올라가보지는 않았습니다.



    ▲ 선학봉입구 - 현위치번호 10(← 청량폭포 1.5km, ↓하늘다리 0.5km, 장인봉 0.3km ↑)에서 장인봉으로 올라갑니다. 


    ▲ 청량산 정상 장인봉에 도착합니다.


    ▲ 청량산 장인봉(해발 870m)으로 블랙야크 명산 100 인증장소입니다. 장인봉 정상은 조망이 전혀 없네요.


    ▲ 장인봉 서쪽 방향에 있는 장인봉전망대입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건지산과 용두산 


    ▲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두산, 만리산, 응복산, 풍락산


    ▲ 전망대에서 바라본 두리봉과 축융봉입니다. 장인봉전망대에서 왼쪽 난간을 따라 내려가면 금강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계단조심, 정말 계단 조심해야합니다. 


    ▲ 금강대 방향으로 내려가는 계단인데, 경사도 급하고 난간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내려가기 힘듭니다. 


    ▲ 전망쉼터갈림길(← 안내소 2.0km, 전망쉼터 ↑, 장인봉 0.6km →)인데, 시간이 여의치않아 바로 탐방안내소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 문명산


    ▲ 뒤돌아본 청량산 정상인 장인봉



    ▲ 할배할매송


    옛날 청량산에 약초를 캐며, 비록 자식은 없으나 금슬 좋은 어떤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병들어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약초를 캐러 간 할머니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된 할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한참을 찾아 헤메었지만 결국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금강대 절벽에 매달려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할아버지는 힘에 부쳐 막 떨어지려하는 할머니 손을 겨우 잡았으나, 결국 노부부는 함께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늘도 이를 안타깝게 여겼는지 노부부가 떨어진 자리에는 그들의 모습을 닮은 애틋한 소나무 한쌍이 자라게 되었다고 한다. 



    ▲ 여여송(如如松)


    이 소나무는 낙동강에 인접한 금강대 위 절벽에 곧게 뻗었있는데, 거센 풍파에 굴하지 않으며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독야청청한 이 소나무의 모습은 불교의 경전 중 하나인 「금강경(金鋼經)」에 나오는 '변함없이 뿌리가 깊으면서 흔들림이 없다[여여부동(如如不動)]'의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한다. 홀로 금강대 위에 버티고 서있는 여여송의 자태는 금강대(金剛臺) 이름과도 잘 어울린다. 




    ▲ 금강굴(金鋼窟)


    금강대 뒤편 장인봉 서쪽 낙동강 위에 있다.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고 비바람을 면할 수 있다. 그윽하고 고요하여 독서하며 수양할 수 있는 장소로 적격이다. 퇴계의 급문제자였던 성재(省齋) 금난수(琴蘭秀)가 1566년 한 달간 이 굴에서 공부한 바 있으며, 정안(靜安)이라는 승려가 수도하며 머물렀다. 금강암(金剛庵) 이라는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도 구들장과 기와 조각이 남아 있다. 


    1579년 청량산을 유람했던 갈봉(葛峰) 김득연(金得硏)의 기록에서 당시 금강굴과 금강암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험로를 거듭 지나 마침내 금강굴에 도착하니, 굴에 조그만 암자가 있고 암자 밑은 절벽이었다. 시렁처럼 얹힌 바위가 곧 기와지붕을 대신하였고 층계 구름이 고요히 일었다. 여기는 바로 정안(靜安)이라는 승려의 거쳐였지만 돌아올 시간까지 있을 수 없어 내려왔다. 바위 끝에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먼 곳을 바라보니 벼랑이 갈라진 곳에 한 줄기 물이 철철 흘러 아래로 빙 둘러 내려가서 더욱 이 암자의 빼어난 경관을 도와 주었다." (김득연,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 


    ▲ 청량산종합상가지구 방향입니다.


    ▲ 삼부자송(三父子松)


    청량산 장인봉(丈人峯) 아래에 있는 금강암(金剛庵)에 어떤 부부가 세상의 풍파를 피해 들어와 화전을 일구며 살고 있었다. 부부는 금강암 아래에 있는 엽광동(葉廣洞, 입너미)의 산비탈을 옥토로 바꾸면서 몇 해 부지런히 농사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혼인한지 수년이 지나도록 자식을 얻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엽광동으로 가는 길목에 세 갈래로 뻗은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부부는 밭일을 하러 오가며 자식을 바라는 열망을 이 소나무에게 지극 정성으로 빌면서 몇 해를 보냈다. 그러던 중 그들의 정성이 통했는지 마침내 쌍둥이 아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부부는 이 소나무의 이름을 '삼부자송'으로 명명하고 정월 보름과 칠월 백중을 맞아 정성스레 당산제를 올리며 가족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 앞의 청량교를 지나 왼쪽이 대형주차장 방향입니다. 


    ▲ 청량산종합상가지구입니다. 주차장 입구에 청량산도립공원 버스정류장이 있습니다. 


    ▲ 청량산종합상가지구 주차장(경북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 1728)에서 청량산 산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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