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여행]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개방되는 봉암사

    1. 여행 일자 : 2019년 5월 12일 일요일


    2. 여행지    : 희양산 산행 + 봉암사


    3. 소재지  


    희양산(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봉암사(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


    4. 문경 봉암사 소개


     

    가은읍 원북리 희양산 기슭에 자리한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5년 (서기 879년)에 지증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지증대사가 심충이란 사람의 권유로 현봉암사 자리를 결정하고 그 자리에 있던 큰 못을 매몰하려 하는데 큰 용이 서식하고 있는지라 지증 대사는 신통력으로 그 용을 구룡봉으로 좇고 매몰하여 그 자리에 봉암사를 세웠다고 한다. 백운대에 계암 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봉암사를 창건할 당시 날마다 그 바위위에서 닭 한마리가 새벽을 알렸다고 한다. 그후 지증국사의 문손들이 국사의 뒤를 이어 중수하였는데 웅장하고 예술의 극치를 다한 건물이 즐비했다고 한다. 중창 80년후에 극락전 한동만 남기고 전소되고 말았다.


    그후 고려초에 정진국사가 주석하게 되어 중창하여 옛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극락전은 목탑형으로 건조된 건물로서 경순왕이 피난때 원당으로 세운 유서깊은 전각이라고 한다. 중간사적은 기록을 전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여러번 증수를 거듭 하였다. 순종 원년에도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었으며 1956년 4월 7일에도 큰화재로 소실되었다. 봉암사는 신라 선문구산 중의 하나로 많은 고승대덕을 배출한 유서깊은 사찰인 덕분으로 한때 폐사 위기에 까지 이르렀으나 이제는 증창을 거듭해 옛모습을 되찾고 많은 수도승이 운집하여 수도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대가람 증수 불사가 수삼년째 계속되어 1992년 6월 4일에 대웅전이 완성되었다. 대웅전은 108평의 웅장한 건물이며 삼존불을 모시고 목각형 또한 뛰어난 솜씨의 수작으로 매우 장엄하다. 희양산 일대는 경관이 수려하여 고운 최치원선생의 유적이 여러곳에 전한다. 또한 희양산문이라하면 당나라에까지 그 실력과 수준이 인정된 선지식의 교단이라고 높이 평가 되었다고 한다.


    5. 문경 봉암사 다음지도 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1) 문경 봉암사 다음지도



     2) 교통편 : 문경 봉암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봉암사 길찾기 이용하세요.


    6. 여행 사진


    ▲ 부처님 오신날, 희양산 등산 하산길에 봉암사에 들렸습니다.



    ▲ 저수지에서 바라본 희양산



    ▲ 양귀비



    ▲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 - 보물 제172호


    이 비는 신라말 고려조의 승려 정진대사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고려 광종 16년에 건립된 탑비이다. 이 탑비는 높이 2.73m, 폭 1.64m, 두께 0.26m로 고려  초기의 조형미를 잘 나타내며, 귀부의 이수의 형식은 일반적인 방식을 취했으나 비좌가 두르러지게 큰 것이 특징이다. 필체는 구양순체 해서이며,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이몽유가 지었다. 대사는 지금의 충남 공주 출신으로 성은 왕씨이다. 신라 효공왕 4년 당나라에 들어가 25년간 유학하였고 경애왕 원년 7월에 돌아와 봉암사에 자리잡았다. 경애왕은 그를 상당히 예우하였으며, 고려 태조, 예종, 정종도 그의 학식을 존경하였고 광종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를 맞이하여 사나선원에 모시고 보살로 예우하였다. 그는 광종 4년 봉암사에 들어가 965년 8월에 향년 79세로 세상을 떠났고 왕은 사신을 보내어 법호를 내려 정진이라 하고 탑의 이름을 원오라 하였다. 



    ▲ 봉암사 경내에 들어왔습니다.


    ▲ 희양사에서 늦은 비빔밥 점심공양을 했던 선열당(禪悅堂)


    ▲ 해회당(海會堂)


    ▲ 선열당



    ▲ 극락전(왼)과 동방장(東方丈, 우)


    ▲ 보림당(寶林堂)


    ▲ 봉암사 대웅보전


    ▲ 산신각(山神閣)


    ▲ 대웅보전과 극락전


    ▲ 대웅보전 내부


    ▲ 대웅보전 앞에서 바라본 남훈루(南薰樓)


    ▲ 금색전과 비각


    ▲ 묘유문(竗有門)


    ▲ 묘유문 안쪽의 희양산문 태고선원(曦陽山門 太古禪院)


    ▲ 조사전(祖師殿)


    ▲ 비각(碑閣) 안에는 봉암사 지증대사탑비(국보 제315호)와 지증대사탑(보물 제137호)이 있습니다. 


    지증대사탑비는 신라말 구산선문의 하나인 봉암사를 처음 건립한 지증대사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신라 경애왕 원년에 건립되었고, 지증대사탑은 지증대사의 사리가 모셔져 있다. 


    ▲ 금색전(金色殿)



    ▲ 대웅보전(大雄寶殿)


    ▲ 금색전 앞의 봉암사 삼층석탑 - 보물 제169호


    통일 신라시대의 석탑은 이중 기단 위에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와 상부로 구성되어 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의 비례와 균형이 조화되어 보기드문 아름다움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상륜부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한국 석탑 중에서 매우 귀중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탑의 높이는 6.31m이고 그중 상륜부의 높이는 2.38m이며 지대석의 너비는 3.24m이다. 이탑의 조성시기는 9세기로 추정된다.. 정상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3층 석탑의 균형 잡힌 모습의 우아한 아름다움은 희양봉의 장중하고 힘찬 기상이 휘몰아쳐 내려오다가 삼층석탑에 이르면 마치 영웅의 기개도 단아한 우아함 앞에서는 그 수줍음을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용트림으로 뻗어오던 기개는 일순 탑 앞에서 주춤하며 부드럽게 순화되어 부드러움과 굳셈의 절묘한 조화로 찹배객의 발길을 묶는다.


    ▲ 고림원(古林院)


    ▲ 봉암사 뒤편의 마애보살좌상 가는 길


    ▲ 왼쪽이 마애보살좌상 가는 길입니다.



    ▲ 마애보살좌상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1호


    봉암사 마애보살좌상은 17세기에 조각된 것으로 전해지며 관련 기록에서는 환적 의천 선사의 원불(願佛)이라 한다.


    높이는 4.5m, 폭 4.4m로 국내 마애불 중 비교적 큰 편이다. 머리 주위는 약간 깊게 파서 광배를 겸하는 듯하게 조각하였고, 불상을 모시는 방인 감실처럼 만들었다.  머리는 입체적으로 조각하였으나 몸체는 선으로 가늘게 새겨 조각 수법이 다르다. 머리에 쓰고 있는 보석 왕관의 중앙에는 꽃무늬가 있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 연꽃 가지를 들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에 얹어 연꽃 가지를 받치고 있다. 결가부좌한 자세이며, 무릎이 넓고 높아 안정감이 있다.  




    ▲ 문경 8경 중의 하나인 백운대(白雲臺)


    봉암사내 양산천 계곡에 위치하여 일명 옥석대라고 함. 울창한 숲, 맑은 계곡, 은은한 목탁소리와 청아한 풍경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잠시 속세의 고뇌도 잊고 신선이라도 된 듯 끝없는 평온함에 젖어드는 곳이며 금강산 만폭동에 버금 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화강암 바위면에 양각된 마애보살좌상은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5년(AD 879), 지증대사가 창건한 절로서 신라 구산선문의 하나로서 유명하며, 보물 제169호인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9개의 문화재와 암벽이 웅장한 희양산(998m)과 봉암사 계곡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 돌탑



    ▲ 봉암사 일주문


    ▲ 최치원유적(야유암)역사공원의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재현비입니다.


    고운 최치원 유적(야유암) 역사공원은 선생의 친필로 잘 알려진 ‘야유암’과 ‘취적대’, ‘명월청풍고산유수’ 등의 석각이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희양산과 봉암사, 선유동 등 고운 선생과 관련되는 유적이 산재하는 곳이다. 역사공원에는 지증대사탑비의 재현, 최치원 선생의 친필 석각과 문학작품, 고운선생의 유허지를 쫓아 이곳을 방문했던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시문학을 선별하여 돌에 새겨 놓았다.


    ▲ 최치원유적(야유암) 역사공원 입구에 관광버스와 셔틀버스가 회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봉암사를 방문하신 분들은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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