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삼랑성 전등사

    1. 여행 일자 : 2021년 4월 4일 일요일

     

    2. 여행지    : 서해랑길 100코스 + 김포함상공원 + 전등사 + 이규보 묘

    3. 소재지 : 서해랑길 100코스(경기도 김포시, 인천광역시 강화군) + 김포함상공원(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항1로 110-36) + 전등사(인천광역시 강화군 전등사로 37-41) + 이규보 묘(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까치골길 72-17 (길직리))

     

    4. 전등사(傳燈寺) 소개

     

     

    □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랑성내에 아늑히 자리잡고 있는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에 아도화상이 처음 창건하고 진종사(眞宗寺)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후 고려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귀한 옥등을 시주했다해서 전할전, 등불등자(傳燈寺)를 써서 전등사로 개명한 사찰입니다. 이절의 입구에 있는 대조루 밑을 지나들어가면 정면에 보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보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웅전 안에는 1544년 정수사에서 판각되어 옮겨진 법화경 목판104매가 보전되고 있다. 명부전 맞은편 왼쪽 언덕을 약100m 오르면 조선 왕실의 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터가 복원되어 있다. 강화에는 마니산에 사고를 설치하였다가 1660년 이곳 전등사 경내로 옮겨 1678년이래 실록 및 서적을 보관하였고 그후 정족산 사고가 복원되었다. 경내에 있는 보물제393호 범종은 중국종으로 중국 하남성의 숭명사에서 북송시대(1097), 고려 숙종2년에 주조된것으로 우리나라 종과는 달리 종머리에 음관이 없고 용머리 주위에는 아름다운 16개의 연잎이 둘려 있는것을 볼수 있으며 견대와 요대사이에는 8괘가 둘려있어 특이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때는 승군 50명이 전투에 참가 하기도한 호국 불교의 사찰로 당시 조선수비대장이던 양헌수 장군 승전비가 전등사 동문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 개방시간 : 09:00 ~ 18:00

     

    □ 입장료 : 어른 (개인 4,000원, 단체(30인 이상) 3,500원)

                   청소년, 군인(개인 3,000원, 단체 2,500원)

                   어린이 (개인 1,500원, 단체 1,000원)

     

    □ 주차료 : 대형 4,000원, 소형 2,000원

     

     

    5. 전등사 다음지도 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1) 전등사 다음지도

     

     

     

     2) 교통편 : 전등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전등사 길찾기를 참고하세요.

     

    6. 여행 사진

     

    ▲ 서해랑길 100코스 트레킹 중에 전등사를 들렸는데요. 전등사주차장 요금은 소형 2,000원 대형 4,000원을 받고 있습니다.

     

    ▲ 전등사 남문매표소 전에, 왼쪽 방향으로 화장실이 있습니다.

     

    ▲ 전등사 남문매표소와 전등사 배치도입니다.  입장료는 어른 4,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1,500원을 받고 있습니다. 

     

    ▲ 전등사 관광안내소

     

    ▲ 전등사 남문(종해루)

     

    ▲ 전등사 남문, 종해루(宗海樓)

     

    전등사의 출입구는 두 군데에 있다. 전등사 사거리 쪽에서 주차장으로 진입하자마자 나오는 출입구가 동문이고 동문에서 약 500미터쯤 남쪽으로 진행하면 남문 주차장이 있다. 본래 삼랑성(정족산성)에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동문과 남문만 이용된다. 이 가운데 문루(門樓)가 있는 곳은 남문이 유일하며 남문의 문루를 ‘종해루’라 부른다. 이 종해루를 지나 50미터쯤 올라 좌측을 보면 전등사 역대 조사들의 부도가 세워진 부도전이 보인다.

     

    ▲ 남문을 지나면 이정표에 서해랑길 100 코스 방향표지판이 왼쪽을 가리키고 있는데요.

     

    ▲ 서해랑길 100코스 방향입니다. 전등사를 둘러보고 서해랑길을 이어서 걷습니다. 

     

    ▲ 뒤돌아본 전등사 남문, 종해루

     

    ▲ 전등사 은행나무 보호수인데요. 노승나무와 동자승나무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 수종 : 은행나무, 수령 : 약 700년, 수고 : 24m, 나무둘레 : 6.5m

    노승나무와 동자승나무 이야기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비불숭유의 정책으로 전국의 사찰은 조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박해를 받게 되었다. 승려는 성곽을 쌓거나 다리를 놓는 일에 사역을 나가야 하였고, 사찰에서는 제각기 특산물을 공물로 받쳐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해에 관아에서 전등사 입구에서 서 있는 은행나무에서 수확량의 두 배를 공물로 바치라고 한다고 동자승이 노승에게 전하였다.

     

    전등사의 노승은 걱정이 태산같았다. 풍년이 들어야 열 가마니인데 스무 가마니를 공물로 내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고민 끝에 노승은 도술이 뛰어난 백련사의 추송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동자승을 추송스님에게 보냈다. 동자승과 함께 온 추송스님은 은행열매가 다 열리게 하는 3일 기도에 착수하였다. 마지막 날 늦은 오후 은행나무 앞에서 3일 기도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추송스님이 축원을 읽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축원의 내용은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앞으로 천년만년 열매를 맺지 않게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뜻밖의 축원에 모인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축원이 끝나자마자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천둥 번개와 함께 돌풍이 몰아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관군들과 모여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모두 땅바닥에 엎드렸다가 고개를 들었을 땐 기도하던 추송스님과 노승 동자승까지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보살이 전등사를 구하기 위해 세 명의 스님으로 변해 왔다고 하였다. 이 후 은행나무는 더 이상 열매을 맺지 않았으며, 긴 세월의 풍상과 역사의 상처를 안은 채 오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 오른쪽 길은 두갈래인데요. 위쪽은 선불장/공양간 방향이고 아래쪽 길은 동문으로 나가는 길입니다. 

     

    ▲ 죽림다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녹음 짙은 전등사 경내에 있는 전통차 전문점입니다. 아담한 연못과 어울러진 외부, 품위 있고 아늑한 분위기의 찻집 내부는 색다른 느낌주어 가족, 연인, 단체가 함께 담소를 나누기 좋은 장소 입니다. 솔바람이란 이름의 솔잎차와 모과차 등 다양한 전통차와 간단한 다과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 무설전

     

    ▲ 무설전 내부

     

    ▲ 무설전에서 바라본 종루, 대조루

     

    ▲ 적묵당(寂默堂, 종무소)

     

    적묵당은 스님들이 참선하던 선원이었다. 지금은 스님들의 숙소와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 적묵당(종무소) 왼쪽의 템플스테이 사무국

     

    ▲ 종각과 극락암(極樂蓭)

     

    극락암(極樂蓭)

    명부전과 종각 사이의 계단을 오르면 아담한 전각이 세워져 있다. 비교적 근래에 세워진 극락암 건물은 전등사 조실이었던 서운 큰스님과 상묵 큰스님이 열반할 때까지 머무신 곳이다. 

     

    ▲ 명부전과 약사전입니다. 명부전과 약사전 사이 뒤로 보이는 전각은 삼성각입니다. 

     

    명부전(冥府殿)

    약사전 옆의 서남쪽에 세워진 명부전도 정확한 창건 연대는 밝혀지지 않는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시왕·귀왕 등 모두 29존상이 모셔져 있다. 대개 명부전은 지장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죽은 이를 재판하는 시왕이 있는 곳은 명부전, 지장보살을 모셨을 경우에는 지장전이라고 부른다. 이 전각은 죽은 사람들이 49일이 지나 재판을 받을 때까지 그들의 넋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이 극락을 가기 전까지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노라는 원을 세운 보살이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녹색의 머리를 깎고 주장자를 짚은 채 지옥 문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처럼 명부전에는 부처님 원력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제사의 공덕으로 극락을 가라는 정성어린 마음이 담겨 있다.

     

    약사전(藥師殿)

     

    보물 제179호로 지정된 약사전은 대웅보전 서쪽에 위치하는 건물로 대웅보전과 거의 같은 양식의 건물이다.

    조선 중기 다포계열의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설치하였으며, 정면 각 기둥 위에는 공포를 배열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기둥과 기둥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공포)를 설치하였다.

    내부 천장은 중앙 부분에 우물천장을 두고 주위에는 빗천장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돌아가면서 화려한 연화당초문을 그려 놓았다. 대웅보전과 함께 지붕을 수리했다는 기록 말고는 다른 기록이 없어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건물의 겉모습이나 내부 장식도 대웅보전과 비슷하다. 고려 말기나 조선 초기에 석조로 조성한 약사여래상을 모시고 있다. 이 약사여래불은 최근 금박으로 개금되어 있다.

     

    ▲ 대조루와 종루

     

    ▲ 향로전, 대웅보전, 강설당

     

    ▲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제178호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규모는 작지만 단정한 결구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서 조선중기 건축물로서는 으뜸으로 손꼽힌다. 특히, 건물 내부 불단위에 꾸며진 닫집의 화려하고 정치한 아름다움은 건축공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보마다 용틀임으로 장식되면서 용두가 네 귀퉁이에서 돌출해 나오며 천장 주변으로는 연, 모란, 당초가 화려하게 양각되고 중앙 우물 반자 안에는 보상화문이 가득 채워져 있다.

    더욱 희귀한 것은 물고기를 천장에 양각해 놓아 마치 용궁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닫집 왼쪽 천장에는 양쪽에 용두장식을 하고 몸체에 용틀임을 한 작은 용가(龍架)의 배 부분에 아홉 개의 방울을 달아 놓고 끈을 달아 불단까지 늘여놓아 이를 잡아 흔들면 아홉 개의 방울이 동시에 울어 구룡토음의 장관을 이루게 했던 적도 있었다.

    내부에 있는 유물로는 석가여래 삼존과 1880년에 그린 후불탱화, 1544년 정수사에서 개판한<법화경>목판 104매가 보관되어 있다.

    현재의 건물은 1621년(광해군 13)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 형식의 목조 건물이다. 정면 3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같은 길이로 나누어 빗살문을 단 형식이다. 좌우 옆면은 벽이나 앞 1칸에만 외짝으로 문이 있다. 기둥은 대체로 굵은 편이며 모퉁이 기둥은 높이를 약간 높여서 처마 끝이 들리도록 했다.

    대웅보전의 외관상 특징은 우선 비슷한 시기의 다른 건물에 비해 약간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곡선이 심한 지붕과 화려한 장식(나부상, 동물 조각, 연꽃 조각 등)이 그런 특징을 잘 보여 준다.

     

    ▲ 대조루(對潮樓)

     

    전등사의 남동쪽으로는 멀찌감치 강화해협이 내려다보인다. 강화해협은 일명 ‘염하’라고도 부르는데 이 염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전등사 대조루이다.

    전등사의 남문이나 동문으로 올라와 두 길이 합치는 지점에 이르면 2층 건물이 보이고 1층 이마에는 ‘전등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이 바로 전등사의 불이문 구실을 하는 대조루이다.

    지금의 대조루는 1932년에 중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건물 자체가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며 전등사의 여러 건물 중에서도 아주 소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조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볼 때의 시선은 25도쯤 위쪽으로 향하게 된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불을 가장 존경하는 시선으로 보게 하는 각도로, 이런 부분까지 섬세하게 고려해 지어진 건물이 대조루이다.

    대조루에는 1726년 영조 임금이 직접 전등사를 방문해서 썼다는 ‘취향당’이라는 편액을 비롯해 추사가 쓴 ‘다로경권’ 등 많은 편액이 보관되어 있다.

    본래 대조루는 기도를 하거나 법회를 열던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불교 서적과 기념품 등을 파는 곳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천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 큰나무(단풍나무)

     

    □ 수종 : 단풍나무, 수령  약 280년, 수고 18m, 나무둘레 : 5.2m

    □ 전등사 대조루는 1749년(영조25) 누지스님 초윤이 재건하였다. 그 때 대조루 동편에 심은 나무로 추정되는 이 단풍나무는 수령이 약 280년 된 청단풍으로 한 밑동에서 여러 가지가 나와 수세가 왕서하다.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단풍나무는 전등사를 찾은 이들에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보배 같은 나무이다. 

     

    ▲ 설불장/공양간

     

     

     

    ▲ 뒤돌아본 선불장/공양간

     

     

    ▲ 전등사에서 서해랑길 100코스 정족산으로 올라가면서 뒤돌아본 전등사 남문인 종해루의 광경입니다. 삼랑성은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산성인데요. 오늘은 삼랑성 아래 자리잡고 있는 전등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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