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제1경, 금강산 건봉사

    1. 여행 일자 : 2021년 4월 18일 일요일

     

    2. 여행지    : 건봉산 + 건봉사 + 운봉산 + 서낭바위

    3. 소재지 : 건봉산(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 건봉사(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 운봉산(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 서낭바위(강원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 산 24-1)

     

    4. 건봉사(乾鳳寺) 소개

     

     

    건봉사(乾鳳寺)는 전국 4대사찰의 하나로  만해 한용운 선생의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지(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跡地)에 의하면, 신라 법흥왕 7년(서기 520년)에 아도화상이 원각사(圓覺寺)를 창건하였고, 그 후 고려 태조 20년(서기937) 도선국사가 중수한 뒤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7년(서기1358)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중수하고 건봉사(乾鳳寺)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라 경덕왕 17년(서기758) 발징화상이 중건하고 정신, 양순 등과 염불만인회를 열었다. 이것이 염불만일회의 효시가 되었으며, 현존하는 "등공기념탑"은 서기 787년 염불만일회에 참가했던 31인이 아미타불의 가피를 입어 극락왕생 하였다고 전하고 드 부도를 모신 것이다.

     

    세조 10년(서기1465) 세조임금이 건봉사를 원당(願堂)으로 삼은 뒤, 어실각(御室閣)을 짓고, 전답과 친필 동참문을 하사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서기 1878년 4월 3일 큰 불로 인해 3,183칸이 전소되었으나, 여러차례 복원작업을 통하여 서기 1911년에 9개 말사(末寺)를 거느린 31본산의 하나가 되었다. 

     

    건봉사는 임진왜란 때에 사명대사가 의승병을 기병한 호국도량이었으며, 당시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를 왜병(倭兵)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사명대사가 사행(使行)하였다가 다시 찾아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또한 구한말인 서기 1906년 "봉명학교"를 설립하여 개화사상과 신무화를 받아들인 관동지방 교육의 도장이 되었으나, 그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 되기도 하였고 공산치하엔 냉천인민학교로 개명하였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 중 휴전 직전까지 2년 여에 걸쳐 아군 5, 8, 9사단 및 미군 제10군단과 공산군 5개 사단이 16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건봉산 전투 전적지이며, 이때 건봉사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서기 1994년 부터 대웅전, 팔상전, 염불만일원, 종각, 사지 등이 각각 복원되었고, 지금도 사찰복원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전쟁전 건봉사는 총 642칸과 보림암 등 124칸의 18개 부속암이 있었다. 

     

     

    5. 건봉사 다음지도 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1) 건봉사 가람배치도 및 다음지도

     

     

    ①  불이문  ② 범종각 ③ 극락전 발굴지역  ④ 왕소나무 ⑤ 템플스테이대방 ⑥ 산신각 ⑦ 적멸보궁 / 독성각

    ⑧ 봉서루(누각) ⑨ 대웅전 ⑩ 명부전 ⑪ 염불원/ 종무소 ⑫ 육화당(요사체)  ⑬ 공양간 ⑭ 화장실 ⑮ 연화교

     

    * 위 사진은 건봉사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는데요. ③ 극락전 발굴지역이라고 표기된 지역은 현재 극락전 전각이 들어서 있습니다.  

     

     

     2) 교통편 : 건봉사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건봉사 길찾기를 참고하세요.

     

    6. 여행 사진

     

    ▲ 건봉산 하산 후에 건봉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왼쪽이 건봉사 방향입니다.

     

     

    ▲ 건봉사 경내에 들어왔는데요. 왼쪽으로 만해 한용운기념관 · 사명당의 승병기념관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해우소, 약초건강원이 있습니다.

     

    ▲ 커피, 차, 자연산 약초 등을 팔고 있는 약초건강원

     

    ▲ 사명당의 승병기념관 · 만해 한용운 기념관

     

     

    ▲ 사명대사기적비(복제품)

     

    이 비석은 ≪한국금석총람≫과 ≪조선사찰사료≫ 및 ≪건봉사본말사적》 에 비문(碑文)이 소개되어 있어 본래부터 건봉사에 건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비석을 완전히 파괴하고 매몰시킨 탓에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1990년 단국대학교 사학과 학술조사단에 의해 파손된 비신 파편 일부와 비좌(碑座) 및 이수(머릿돌)가 건봉사 사역 안에서 수습되었다. 이 비석은 1800년(조선 정조 24년)에 건립되었으며, 비신(碑身)은 너비 80cm, 두깨 33cm, 높이 약 190cm이고 전체의 높이는 294cm로 추정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비문(碑文) 탁본(拓本)과 조사에서 수습된 비신 파편 및 이수를 고증해 2017년 11월에 복제품을 제작해 건립했다. 복제된 비석의 비좌는 본래의 부재를 그대로 사용하였고, 조사에서 수습된 비신의 파편과 이수는 새로 제작한 기적비의 주변에 전시하였다.

    비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명대사의 이름은 유정(惟政)이고 성은 임씨(任氏), 본관은 밀주(密州)다.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제자로서 임진왜란 시 왜구(倭寇)가 조선(朝鮮)을 노략질하니 휴정은 묘향산(妙香山)에서, 유정은 건봉사에서 승도(僧徒)를 모집하여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명나라 제독(提督)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에서 왜병 2천여명을 대파하였다. 사명대사는 조정의 명을 받아 일본에 건너가 왜왕을 설득하여 강화를 성립시키고, 포로로 잡혀갔던 남 · 녀 3천여명과 함께 귀국하였다. 또한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서축(西竺)에 들어가 모셔운 부처님의 치아사리 10과가 왜적에게 약탈되었지만, 사명대사가 돌려 모셔와 건봉사에 보관하였다. 서산대사의 높은 절개와 사명대사의 위대한 업적은 실로 영원할 것이다. 조정에서는 유교를 존숭하여 일찍이 승려를 널리 제도시키고 사찰을 높인 적은 없었지만, 두 대사의 나라를 위한 충정을 기리고자 조정에 청하여 기적비를 세운다. 강원도관찰사, 남공철이 글을 쓰고, 행영월도호부사가 글씨와 전액을 썼다. 경신년 4월에 비를 세웠다." 

     

     

    ▲ 관광안내소(Tourist Information)

     

    ▲ 템플스테이 운영사찰, 건봉사

     

    ▲ 불이문(不二門) -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35호

     

    1920년에 건립된 건봉사 경내 출입문으로, 사찰의 건물 중 한국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건물이다. 1단의 낮은 기단 위에 원통형으로 다듬은 높이 1.61m의 4개 돌기둥 위에 둥근 나무기둥을 세워 지은 건물로, 다포 양식에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돌기둥에는 길이 90cm 크기의 도안화된 금장저가 유각되어 있는데, 이는 천왕문(天王門) 따로 건립하지 않고 불이문에 사찰 수호의 기능까지 보탠 것을 의미한다. 상단 중앙에 걸여 있는 불이문 현판은 해강(海剛) 김규진(金圭鎭)의 글씨로, 매우 단정하면서도 힘이 있다. 

     

    ▲ 불이문 오른쪽의 연화교를 건넙니다.

     

    ▲ 화장실

     

    ▲ 등공대 · 장군샘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원불이(願不二) 진또배기

     

    천 년 전, 만일 동안 염불 정진한 서른 한 명의 스님이 승천했다는 등공대(登空臺) 초입에 이 작품을 세운다. 조각난 철판을 이어 붙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간절한 염원을 모아서 합장한 손 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오래 전부터 하늘과 땅이 맞닿는 희망을 표현한 솟대(진또배기)를 세웠다. 남과 북을 상징하는 두 마리의 새는 평화를 한 곳을 바라본다.

    2017년 문화재청이 시행하는 '전통산사 문화재 활용사업'으로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에서 추진한 금강산 불이문화재활용사업'의 상징물로 남북 분단 72년이 되는 2017년 가을, 자연설치 미술작가 방영필이 만들다. 

     

    ▲ 등공대 입구

     

    등공대(騰空臺)

    등공대는 종무소 방문, 군부대 승인 후 참배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올라가실 수 없습니다. 단체 10명 이상 참배 가능합니다. 

     

    건봉사 종무소 033-682-8100

     

    ▲ 장군샘으로 가는 길

     

    ▲ 장군샘

     

     

     

     

    ▲ 왼쪽은 건봉사 공양간입니다. 대웅전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봉서루(누각)

     

    ▲ 만일염불원(萬日念佛院, 종무소) - 석가세존 진신 치아사리 친견장

     

    ▲ 대웅전(大雄殿)과 명부전

     

     

     

    ▲ 금강산건봉사(金剛山乾鳳寺) 현판이 걸린 봉서루와 십바라밀석주(十波羅蜜石柱)

     

    능파교를 건너면 대석단(大錫檀)이 보이고, 대석단의 중앙통로 좌우로 높이 158cm의 사각형 석주(石柱) 2기가 서 있다. 이 석주에는 십바라밀의 도형이 음각되어 있어, 이를 십바라밀석주라고 부른다. 이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비록 조성연대는 1920년이라 하지만, 시각적인 교육효과를 지닌 중요한 문화재이다. 십바라밀은 대승불교의 기본 수행법인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6바라밀에다 이 여섯가지를 보조하는 방편, 원, 력, 지의 4바라밀을 첨가하여 구성한 것이다. 십바라밀도는 이들 열까지 수행의 방법을 상징화하며 나타낸 것으로, 그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새겨져 있다. 

     

    ▲ 봉서루와 능파교

     

    ▲ 고성 건봉사 능파교(凌波橋) - 보물 제1336호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홍교(虹橋 :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서, 규모도 비교적 크고 잘 보전되어 있다.  

    능파교를 처음 축조한 시기는 숙종 30년(1704) 부터 숙종 33년(1707) 사이로, 이것은 숙종 34년(1708)에 건립된 경내 불이문 옆에 있는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의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능파교는 영조 21년(1745) 에 대홍수로 붕괴되어 영조 25년(1749) 에 중수하였고, 고종 17년(1880) 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석계(石階 : 돌계단) 와 산영루(山映樓) 수축(修築)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가 5.4m이다, 다리의 중앙 부분에 큰아치(Arch)를 틀고 그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축조하여 다리를 구성하였는데, 홍예는 하부지름이 7.8m이고 높이는 기석의 하단에서 4.5m이므로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다.

     

    능파교는 축조연대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비석이 함께 있어 홍예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우리나라 석교(石橋 : 돌다리) 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다리이다. 2003년 능파교 홍예틀과 접하는 호안석 중 변형된 부분을 해체하여 원형을 찾아 보수하던 중 능파교가 훼손되어 문화재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2005년 10월에 복원되었다. 

     

     

    ▲ 오른쪽 계단을 올라 적멸보궁, 산신각을 둘러본 후 왕소나무를 보러 갑니다.

     

    ▲ 건봉사 템플스테이

     

    ▲ 적멸보궁 가는 길

     

    ▲ 적멸보궁(寂滅寶宮)

     

    ▲ 독성각(獨聖閣)

     

     

    ▲ 오른쪽 산신각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산신각(山神閣)

     

     

    ▲ 왕소나무로 올라가는 길

     

     

    ▲ 왕소나무

     

    ▲ 왕소나무에서 내려다 본 건봉사

     

     

    ▲ 극락전 측면

     

    ▲ 극락전에서 바라본 능파교

     

    ▲ 극락전(極樂殿)

     

    ▲ 범종각(梵鐘閣)

     

    ▲ 계곡에서 바라본 능파교와 봉서루

     

    ▲ 능파교

     

    ▲ 불이문(不二門)

     

    ▲ 사명당의 승병기념관 · 만해 한용운 기념관

     

    ▲ 뒤돌아본 건봉사

     

    ▲ 건봉산 등산로입구

     

    ▲ 주차장 오른쪽으로 부도전이 있습니다. 

     

    ▲ 부도전으로 가는 길

     

    ▲ 부도전(浮屠殿)

     

    50여기의 부도 중 특히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만일회 당시 생사리탑인데 이는 1851년(철종 5년)에 개설한 만일회에 참여 하였던 스님 10여명이 1854~1856년까지 3년 동안 살아 있는 몸에서 치주, 안주등의 사리 26과를 내어 놓은 이적을 나타냈는데, 이를 함께 모아 부도에 모신 곳이다. 

     

    ▲ 건봉산 산행 및 건봉사 일정을 이곳 주차장에서 모두 마치고, 운봉산으로 떠났는데요. 오늘은 전국 4대 사찰 중의 하나였던, 고성 1경인 금강산 건봉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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