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 강화나들길 9코스 화개산

1. 트레킹 일시 : 2019년 3월 6일 수요일, 08:55 ~ 12:31


2. 산이름    :  강화나들길 9코스(다을새길) 화개산(259.6m)


3. 소재지    : 인천 강화군 교동면


4. 트레킹 코스 : 주차장 → 한증막 → 연산군 유배지 → 화개산 → 화개사 → 교동향교 → 월선포선착장 → 동진포 → 교동읍성 → 대룡시장 → 교동면사무소 → 주차장


5. 트레킹 거리 및 소요시간 : 13.89Km(3시간 36분)


주차장(08:55) → 1.96km → 화개산(09:31) → 5.08km → 월선포선착장(10:50) → 5.81km → 대룡시장(12:06) → 1.04km → 주차장(12:31)

 

6. 산행 인증 : 블랙야크 섬 & 산 50(화개산 5좌 인증)


7. 화개산 상세정보



강화군의 교동면 고구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현 남쪽 3리에 있다. 이색의 시에 ‘바다속 화개산은 푸른 하늘에 닿았는데 산위 옛사당은 언제 지었는지 모르겠네. 제사한 후 잔 마시고 이따금 북쪽을 바라보니, 부소산 빛이 더욱 푸르구나' 하였다. 응암 월곶 바다 가운데 있다.” 고 기록되어 있다. 화개산성은 포곡식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산 정상 부분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훼손되어 있는 상태이다. 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50m 떨어진 연봉 정상에는 봉수지가 위치하고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부터 사용 되었던 봉수라 전해지며 지금도 봉수대의 하부 석축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8. 교동도 강화나들길 9코스(다을새길) 화개산 트레킹 지도 및 gpx 파일 다운로드




2019-03-06-인천-강화-주차장-연산군유배지-화개산-교동향교-월선포선착장-교동읍성-대룡시장-주차장.gpx


9. 트레킹 사진


▲ 주차장에서 강화나들길 9코스(다을새길) 화개산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이곳의 주차장 이름은 따로 없는 듯합니다. 다음 지도에서는 이 주차장의 위치가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리 11-18로 나오네요.


▲ 주차장에서 동남방향으로 올라오면 강화나들길 9코스 이정표가 나옵니다. 




▲ 한증막(汗蒸幕) -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 산 233번지


조선후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황토와 돌을 이용하여 축조되었다. 선조들의 병환과 피로를 다스리는 민간요법으로 이용되어 온 시설로서 여럿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당시의 민간목욕시설로도 이용되던 이 한증막은 마른 소나무가지 등으로 안에 불을 지펴 온도가 높아지게 되면 재를 꺼내고 잎이 무성한 생솔가지를 바닥에 깔고 그 안에 들어가 땀을 낸 후 옆 시냇물에서 냉수로 몸을 식혀 한증을 반복하는 방법으로 목욕을 물론 병을 치료하는 시설로서 197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교동에는 이곳뿐만 아니라 수정산을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터나 남아 있다. 이는 현대 찜질방의 근원이라 할 수 있으며 옛 선조들의 치병(治病)과 목욕(沐浴) 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학술적 가치가 있는 매우 높은 시설이다. 


▲ 천화문(天華門)


▲ 연산군 유배지를 잠시 다녀옵니다.


▲ 연산군유배지에는 위리안치와 교동도유배문화관이 있습니다.


▲ 연산군유배지 표지석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 뒤돌아본 연산군유배지


▲ 화개약수


▲ 화개약수터 지나 오른쪽 길은 바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정면의 방향은 강화나들길 9코스로 돌아서 정상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정면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 화개산성 안내판


총길이 2,168km에 이르는 포곡식 산성으로 내, 외성을 갖춘 산성이다. 포곡식 산성이란 산기슭에서 부터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고 있는 구조를 말하며 화개산성의 남쪽은 산 정상부의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여 남북으로 길게 축조되어 있다. 축조시기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으며, 1555년 최세윤이 증축하고, 1591년 이어양이 외성을 철거하여 읍성을 축조하는데 사용하였으며, 1737년에 개축하여 군창을 두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 성혈(星穴)바위


성혈(바위구멍그림)이 새겨진 바위는 청동기시대 이후의 유적으로, 하늘에 별자리, 풍요와 다산(多産), 장수, 태양 또는 자연숭배, 마을 제단 등, 민간신앙의 일종으로 바위구멍을 통한 주술적 행위의 흔적이다. 주로 고인돌에서 볼 수 있으나 자연암석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 바위는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높은 지점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자연숭배 신앙의 흔적으로 보고 있다. 


▲ 정자와 산불감시초소 등이 있는 화개산 정상에 도착합니다.


▲ 화개산(해발 259.6m) 정상 표지목입니다. 블랙야크 섬&산 100 인증장소이기도 합니다. 


▲ 날씨가 흐려서 화개산 정상의 조망이 하나도 없네요.


▲ 화개산 봉수대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 강화 화개산 청동기 암각화 ▼


암각화가 새겨진 이 바위는 변성화강암의 일종으로 11개의 지그재그형 선각과 12개의 바위구멍으로 구성되는 비구상형이며, 기원행위의 결과로 남겨진 청동기시대 후기의 암각화로 추정되고 있다. 


암각화는 지금까지 한반도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분포하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북단인 이곳 화개산에서 발견되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신앙과 생활 , 사상 등 총제적인 선사문화를 표현하고 있으며 주로 풍요로운 생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이 많다.



▲ 화개산 봉수대 - 강화군 향토유적 제29호


화개산 봉수대는 화개산과 잇대어 있는 연봉 정상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낮은 석단만이 남아 있는데, 가로 4.6m, 세로 7.2m이고 잔존높이는 1.2m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남쪽으로 본도의 덕산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동쪽으로 하음 봉천산 봉수로 응한다고 되어있다.


▲ 삼거리갈림길(← 화개사 0.75km, ↓정상 0.65km, 연산군유배지 0.55km↑)에서 화개사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 문무정(文武井)


문무정은 본래 동쪽에 문정(文井), 서쪽에 무정(武井)이 있어 두 개의 샘이었는데, 지금은 하나로 합해져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문정의 물이 많으면 문관이 많이 배출되고, 무정의 물이 많으면 무관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어느날 이 샘물의 물빛이 바다 건너 송가도(지금의 삼사면)까지 비추어 그 곳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하게 되자 노승의 말에 따라 소금으로 메운 후 진정 되었다고 한다. 송가도에서 이 노승의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었다고 하는데, 현재 사당은 남아 있지 않다. 그리고 문무정이 메워진 후 교동에서는 문관과 무관의 배출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전해온다. 


▲ 대한불교조계종 화개사


▲ 성전약수(成殿藥水)


교동향교 대성전 서측에 위치한 이 약수는 예로부터 현대 남북의 경향인들이 위장병치료에 효험이 큰 용출우물로 전래되어오고 있으며 근본 원전이 대성전 밑에서 발원하여 그 이름을 성전약수라 불리어 전해오고 있다. 


▲ 교동항교(喬桐鄕校)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8호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유학자 안향(安珦)이 원나라에 갔다가 공자(孔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이곳에 모셨다고 전한다. 조선 영조 17년(1741)에 지부 조호신이 화개산 북쪽 기슭에 있던 것을 남쪽 기슭으로 옮겼다. 향교 안에는 공자의 신주와 우리나라의 위폐를 모시는 대성전과 좌우에 선현들을 제사지내는 동 · 서무를 두었고, 유생들이 배움을 익히고 닦는 명륜당과 동 · 서재, 제수용품등을 보관하는 제기고, 내 · 외삼문이 있다. 


▲ 안양사지(安養寺址)


안양사는 화개사와 함께;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될 정도로 그 연혁이 있으나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사역 전체의 규모는 동서 21m, 남북 19m로 사찰지는 동쪽을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지의 남쪽에 1m정도의 토탄 축대와 당시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샘터와 수풀사이의 낮은 석축이 남아 있다.


▲ 숲길을 내려와 도로 왼쪽 길로 올라갑니다.


▲ 이 전봇대에서 강화나들길은 왼쪽입니다. 


▲ 마을길을 지나


▲ 월선포에 도착합니다.


▲ 교동도 월선포선착장 대합실이란 간판이 보이네요. 


▲ 월선포선착장의 강화나들길 안내도



▲ 월선포 포토존








▲ 동진포(東津浦) ▼


인조7년(1629년) 교동에 영(營)이 설치되어 읍성이 축조된 후 사용되었던 포구로 서울, 인천, 해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중국으로 가는 하정사신이 교동으로 와서 해로의 일기를 살핀 후 서해로 나갔으며, 사신들의 임시 숙소인 동진원이라는 객사가 있었다. 또한, 교동팔경중 하나로 동진송객이라 하여 이곳에서 손님을 맞고 배웅하는 광경이 볼만했다고 교동군 읍지의 기록이 전해진다. 



▲ 연산군적거지(燕山君謫居址) - 향토유적 제28호


연산군은 조선 제10대 왕으로 성종의 맏아들이다. 즉위 초에는 다소의 업적을 이룩했으나 어머니 폐비윤씨가 사사(賜死)된 후 세자시절을 불후하게 보낸 탓으로 이상성격이 형성, 점차 향락과 횡포를 일삼아 많은 실정(失政)을 저질렀다. 두 번씩이나 사화를 일으키는 등 성품의 광폭함이 드러나자 마침내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중종반정(中宗反正)이 일어나 왕직을 박탈당하고 교동으로 유배되었다가 병사했다. 



▲ 교동읍성(喬桐邑城)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23호


조선 인조 7년(1629), 교동에 경기수영을 설치할 때 돌로 쌓은 읍성이다. 둘레 430m, 높이 6m 규모로 세 개의 문을 내고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북문은 공북루라 하였다. 영조 29년(1753) 여장을 고쳐 쌓았고, 고종 21년(1884)에는 남문을 다시 고쳤다. 동문과 북문이 언제 없어졌는지 알 수 없으며, 남문은 1921년 폭풍우로 무너져 홍예문만 남아 있었으나 2017년 남문 문루가 복원되었다.




▲ 앞의 교동남로를 건너 대룡안길 방향으로 갑니다.


▲ 인천강화경찰서 교동파출소


▲ 어서오시겨 대룡시장


대룡시장은 6.25 때 연백군에서 교동도로 잠시 피난 온 주민들이 한강 하구가 분단선이 되어 고향에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향에 있는 연백시장을 본 따 만든 골목 시장이다. 대룡시장은 50여년간 교동도 경제발전의 중심지였으며 지금은 실향민 어르신들이 대부분 돌아가시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시장 규모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2014년 7월 교동대교의 개통과 함께 1980년대 영화 세트장 같은 대룡시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 MBC 아침드라라 "좋은사람" 촬영한 장소인 제일다방


▲ 뚱이 호떡


▲ 교동은혜농장


▲ 교동도 강화나들길 9코스 교동도 다을새길 안내판


다을새는 교동의 옛지명으로 대운도(戴雲島:구름에 뜬 섬) 또는 달을신(達乙新:하늘에 닿을 새)이라 하였으며 다을새는 달을신의 소리음이다


▲ 한국농어촌공사


▲ 교동면사무소




▲ 주차장에서 강화나들길 9코스 다을새길(블랙야크 섬&산 100 화개산 인증) 트레킹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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