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1. 여행 일자 :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2. 여행지    :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본사 해인사

 

3. 소재지 :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4. 합천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소개

 

 

해인사는 신라시대에 그 도도한 화엄종의 정신적인 기반을 확충하고 선양한다는 기치 아래, 이른 바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로 세워진 가람이다. 화엄종의 근본 경전인 화엄경은 4세기 무렵에 중앙아시아에서 성립된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그 본디 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이 경전에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해인사 이름은 바로 이 '해인삼매'에서 비롯되었다. 이리하여 화엄종은 개화기를 맞던 신라시대를 거쳐, 해인사를 중심으로, 희랑希朗대사를 위시하여 균여均如, 의천義天과 같은 빼어난 학승들을 배출하기에 이르른다.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성지이며 또한 세계문화유산 및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산재해 있다. 국내 최대 사찰로서 명산인 가야산 자락에 위치하여, 가야산을 뒤로하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있어 그 웅장한 모습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경의로울 뿐 아니라 송림과 산사가 어울어져 연출하는 설경을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경에 젖게 한다.

 

5. 합천 해인사 사찰 안내도 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1) 해인사 사찰 안내도

 

 

 

 2) 교통편 : 해인사 홈페이지 찾아오시는 길이나 다음지도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6. 여행 사진

 

▲ 가야산 소리길 트레킹 중에 가야산 해인사를 들렸습니다. 현재 위치는 버스매표소(← 치인주차장 0.6km, ↓ 대장경테마파크 6.1km, 상왕봉 5.1km · 해인사 1.1km →)인데요. 버스매표소에서 시작해 해인사 경내 그리고 치인주차장까지 자세히 소개합니다. 

 

▲ 버스매표소에서 해인사와 성보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길

 

▲ 가야산 휴게소(해인쇼핑센터)

 

▲ 이정표(← 상왕봉 5.2km · 해인사 0.9km, ↓ 치인주차장 0.6km)

 

▲ 해인사성보박물관

 

▲ 허덕교

 

▲ 허덕교 화장실

 

▲ 갈림길 이정표(↓ 대장경테마파크 6.7km · 치인주차장 1.1km, 상왕봉 4.6km · 해인사 0.4km ↑, 화장실 →)

 

▲ 해인사종합관광안내소

 

▲ 성철스님사리탑

 

▲ 길상탑(吉祥塔)

 

길상탑은 해인사 일주문 밖 동남쪽으로 약 50미터 되는 곳에 있다. 이 탑은 오랜 내란으로 해인사 주변에서 전몰한 승려와 백성을 위해 문수사리보살의 가피를 받고자 해인사의 훈혁 스님이 895년에 세운 위령탑이다. 전형적인 신라 계통의 3층탑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1966년 탑 속에서 최치원이 지은 탑지(塔誌), 157개의 소탑 등 유물들이 나왔다. 이 탑지는 당시의 사회 상황과 탑의 건립 내력을 아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 해인사 안내판

 

▲ 갈림길 이정표(↓ 대장경테마파크 7.1km · 치인주차장 1.5km, 상왕봉 4.2km · 화장실 0.1km ↑, 해인사 →)

 

▲ 해인사 일주문(一柱門)

 

큰 절에 들어설 때마다 처음 만나는 것이 일주문이다.


절의 어귀에 서있는 제일문으로서 절의 위용을 한눈에 느끼게 해 주는 일주문은, 곧 모든 중생이 성불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첫 관문을 상징하니 초발심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일주문은 기둥이 양쪽에 하나씩 세워져 문을 지탱하고 있는 건축구조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 해인사의 일주문은 홍하문이라고도 하며, 그 소박한 아름다움과 주위 경치와의 어우러짐이 일품인 까닭에 일주문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름이 나 있다.
신라시대에 절을 처음 세울 때부터 일주문은 지금의 자리에 있었겠지만, 조선시대 세조3년 봄에 중수하여 그 뒤로 지금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는 기록만이 전해 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건축 양식은 조선시대 초기의 양식인 듯하다.

 

▲ 해인사 봉황문(천왕문)

 

일주문으로 들어서서, 수문장처럼 버티어 서 있는 천년 노목의 가로수를 따라 그 정취에 취해 걷다 보면 두번째 문인 봉황문이 나타난다.

이 봉황문은 천왕문이라고도 불린다.

큰 절은 으레 천왕문이나 사천왕문 또는 금강문 따위로도 불리는 문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이 안에는 돌이나 나무 등으로 조각되거나 탱화에 그려진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사천왕은 본디 욕계 육천 가운데 사왕천에 머물면서 천상으로 들어오는 여러 착한 사람을 보호하는 선신으로 수미산의 동서남북에 위치하여 악한 것을 멸하고 불법을 옹호하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산문 입구에 봉안하여 수문역과 도량 수호역을 맡게 하였다. 이러한 신중들은 대부분 힌두교의 영향이며, 불교가 대중화하는 가운데 인도의 민간 신앙과 함께 접합될 때 생긴 사상이다.

 

▲ 해탈문

 

일주문과 봉황문을 지나면 해인사의 제 3문인 해탈문이 있다.

중문에 속하는 문으로써 일반 사찰의 불이문에 해당한다.

 

해탈문을 지나면 완전한 불법의 세계는 주·객, 세간과 출세간, 선과 악, 옳고 그름, 나고 죽음 등 대립하는 상대적인 것들을 초탈한 불이법문의 세계로써 삼존불을 모신 건물 앞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일주문에서 해탈문에 들어설 때 까지 33계단을 거치는데, 도리천 곧 33천의 궁을 상징한다.

 

▲ 우화당(雨花堂)

 

해인사 첫번째 출입문인 봉황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보이는 것이 요사채인 우화당이다.

 

▲ 국사단(局司壇)

 

국사단은 국사대신(局司大神)을 모신 단으로서 국사대신은 도량이 위치한 산국[山局]을 관장하는[司] 산신과 토지가람신을 가리킨다. 가야산신인 정견모주는 하늘의 신 이바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었다. 큰 아들 이진아시왕은 대가야국을, 작은 아들 수로왕은 금관가야국을 각각 건국하였다. 국사대신은 인간세상을 손바닥 보듯이 하면서, 신비스런 현풍(玄風)을 떨쳐 해인사에 재앙을 없애고 복을 내린다. 가람을 수호하는 신을 모셨기 때문에 도량 입구에 배치되어 있다. 

 

▲ 구광루(九光樓)

 

구광루는 해인사의 모든 건물 가운데에서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구광루라는 이름은 화엄경의 내용에서 따온 것인데, 화엄경에는 부처님께서 아홉 곳에서 설법하시면서 그 때마다 설법하시기 전에 백호에서 광명을 놓으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는 노전스님을 비롯한 큰스님들만이 법당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누각은 법당에 들어갈 수 없는 일반 대중들이 모여 예불하고 설법을 듣는 곳으로서 지은 것이다.

 

▲ 뒤돌아본 해탈문

 

▲ 왼쪽으로부터 사운당(四雲堂, 종무소), 종각(鐘閣)인데요. 범종각 뒤쪽 전각은 청화당(淸和堂)입니다.

 

▲ 보경당(普敬堂)

이 건물은 근래에 불교회관으로 지어졌다.

여러 큰 불사에 집회장과 법당으로 쓰이도록 설계되었는데, 해인사의 다른 건물들에 견주어 지나치게 크게 지어진 감이 없지 않으나, 지하층도 크게 내어 여러모로 쓸모있게 지어진 집이므로 불사 때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 해인사 대적광전(大寂光殿)

 

한사원의 큰 법당에는 부처상이나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큰 법당의 이름은 그 안에 모신 주불에 따라 결정된다.
그 주불이 바로 그 사원의 정신적인 지주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 사상으로 하여 창건되었으므로, 거의 모든 절이 흔히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이다.

'비로자나'는 산스크리트어인 바이로차나 Vairocana에서 온 말로서, 영원한 법 곧 진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은 부처님의 진리의 몸이 화엄경을 언제나 두루 설하는 대적광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창건주인 순응스님과 이정스님이 802년에 지은 건물 자리에다 1818년에 다시 지은 것이며, 법당 안에는 일곱 불상이 모셔져 있다. 법당에 들어서 보면, 왼쪽부터 철조관음보살, 목조 문수보살, 목조 비로자나불이 있고, 그리고 맨 가운데에 본존 비로자나불이 있고 다시 그 옆으로 목조 지장보살, 목조 보현보살, 철조 법기보살이 차례로 안치되어 있다. 

본존 비로자나불은 1769년에 조성되었는데, 그 왼편에 있는 또 하나의 목조 비로자나불상은 가운데의 본존불을 모시기 전까지의 본존불이다. 이 목조 비로자나불상은 그 좌우의 보현보살상, 문수보살상과 더불어 삼존불로서, 고려시대에 가지가 셋인 큰 은행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삼존불은 처음에는 경상북도에 있는 금당사에 모셨다가,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가야산의 용기사를 거쳐, 1897년 해인사 대적광전에 모시게 되었다. 그밖의 불상들은 조성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다.

 

▲ 궁현당(窮玄堂)

 

현재의 건물은 1988년에 완전 복원된 건물로서 해인사 승가대학(강원)의 교사(校舍)로 사용되고 있다. '깊고 오묘한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의 궁현당은 달리 '부처를 가려 뽑는 곳'이라는 뜻의 선불장(選佛場)이라 불리기도 한다

 

▲ 관음전(觀音殿)

 

구광루 오른쪽에 관음전(觀音殿)이 있다. 현재 강원(승가대학)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 100여명의 스님들이 경전을 연마하고 있다. 건물의 현판은 궁현당과 같이 두 개인데 그 하나는 심검당(尋劍堂)이다 . 심검이라는 말은 모든 번뇌를 베어 버릴 수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다는 뜻으로 수행의 목적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말이다. 이 건물도 해인사 강원(승가대학)으로 사용하고 있다.

 

▲ 응진전(應眞殿)

 

나한전이라고도 불리는 응진전은 1488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지금의 건물은 1817년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역대 선사의 영정만을 봉안했는데, 1918년에 판전 서재에 봉안되었던 십육 나한을 옮겨와 모셨다. 응진전 가운데에는 석가여래상이 토조로 조성되어 있다.

 

▲ 명부전(冥府殿)

 

명부전은 지장전이라고도 한다. 지옥 중생을 모두 제도하기 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이 목조로 조성되어 주불로 모셔져 있고 그 좌우에 각각 도명보살과 저승에서 죽은 이들을 재판한다고 하는, 일명 시왕이라고 하는 십대왕이 있다. 명부전은 저승에 간 이들의 넋을 제도하는 곳으로, 사십구재를 비롯한 갖가지 제의들이 이곳에서 행해진다. 지금 건물은 1873년 곧 고종 십년에 지어졌다.

 

▲ 어수정(御水井)

 

어수정이란 왕이 주로 사용한 우물을 가리키는 말로 전국 각지에 다수 존재하고 있다. 어수정의 예로는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의 단종 어수정, 연천군 미산면의 숭의전 어수정, 합천 해인사의 어수정 등이 있다. 

해인사는 순응과 이정의 기도로 애장왕의 왕후가 병이 낫자 그에 대한 보답으로 802년(애장왕 3년) 신라 왕실의 후원을 받아 지금의 가야산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신라 애장왕이 해인사를 창건할 당시 먼저 비봉산에 봉서사(현 원당암)를 짓고 그 곳에 머물면서 공사를 감독하고 정사를 함께 돌보았다고 한다. 이때의 기록을 살펴보면 산 너머에는 삼정승이 살던 삼정마을과 말을 기르던 '마장동', 극락전 동쪽에는 '어수정', 절 앞에는 '옥가평' 등의 이름이 전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어수정은 대적광전의 동편에 위치하였다고 한다. 

 

▲ 장경판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 장경판전

 

대적광전 위에는 장경판전이 자리하고 있다. 장경판전은 대장경을 모신 건물로, 이 형국은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부처님께서 법보인 대장경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을 나타내므로 더욱 뜻깊다.

국보 52호로 지정된 이 장경각을 처음 세운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대장경이 해인사로 옮겨진 때가 1397년임을 미루어 볼 때 지금의 건물은 조선초 무렵인 1488년 쯤에 세워졌으리라고 여겨지는데, 여러 차례에 걸친 부분적인 중수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다. 장경판전은 모두 네 동으로 되어 있다. 북쪽의 건물을 법보전이라하고 남쪽의 건물을 수다라전이라고 하는데, 이 두 건물을 잇는 작은 두동의 건물에는 사간판대장경이 모셔져 있다. 이 장경각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조 초기의 건축물 가운데에서 건축 양식이 가장 빼어나서 건축사적인 면에서도 퍽 중요하게 여겨진다. 무엇보다도 이 건물은 대장경을 보관하는 데에 절대적인 요건인 습도와 통풍이 자연적으로 조절되도록 지어졌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장경각의 터는 본디 그 토질 자체도 좋거니와, 그 땅에다 숯과 횟가루와 찰흙을 넣음으로써, 여름철의 장마기와 같이 습기가 많을 때에는 습기를 빨아들이고, 또 건조기에는 습기를 내보내곤 하여서 습도가 자연적으로 조절되게 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기능을 더 원활하게 하려고, 판전의 창문도 격자창 모양으로 하였으며, 수다라전의 창은 아랫창이 윗창보다 세배로 크게 하였고 법보전의 창은 그 반대 꼴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아주 과학적인 통풍 방법으로서, 오히려 건축 방식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따라가기 어려운 우리 선조들의 슬기를 잘 보여 준다.

 

▲ 해인사의 대적광전과 장경판전 등을 둘러보고 내려가는 중입니다.

 

 

▲ 독성각(獨聖閣)

 

한때 독성 용왕 삼신상을 모시고 삼성각으로 불리기도 했으나 현재는 독성 한분마을 모셔서 독성각으로 불린다.

 

▲ 학사대(學士臺)인데 아쉽게도 전나무 사진은 못찍었네요.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57~?)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詩書)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하였다고 한다. 당시 거꾸로 꽃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쳐져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 독성각을 지나 대비로전(左)과 경학전(右) 사이로 내려갑니다.

 

▲ 대비로전과 대적광전

 

대비로전(大毘盧殿)

2007년 11월 24일 정면 3칸, 측면 3칸 그리고 다포형식을 가진 대비로전을 낙성하고 대적광전과 법보전의 ‘동형쌍불(同形雙佛)’인 두 비로자나 부처님을 나란히 안치하였다. 쌍둥이 비로자나불은 2005년 7월 개금하는 과정에서 불상 내부에 문서가 발견돼 883년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국내 최고(最古)의 불상임을 확인하였다.

 

▲ 관음전(觀音殿)

 

▲ 종각(鐘閣)

 

▲ 노약자 보행로, 계단없는 길로 내려갑니다.

 

▲ 우화당

 

▲ 합천 해인사의 아름다운 가을 단풍길

 

▲ 올라갈 때는 일주문으로 바로 올라갔었는데요. 내려갈 때는 아름다운 단풍 구경을 하면서 일주문 오른쪽으로 내려왔습니다. 

 

 

▲ 일주문 전의 포토존인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대장경 판전 표지석  

 

▲ 무장애탐방로(현위치~길상암)로 내려갑니다.

 

▲ 해인사 종합관광안내소

 

▲ 해인사 성보박물관 주차장

 

▲ 버스매표소로 내려가는 길

 

▲ 치인주차장

 

▲ 오늘은 가야산 소리길을 대장경테마파크에서 시작해서 해인사를 경유해 치인주차장에서 마무리를 했는데요. 그중에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인 법보종찰, 합천 해인사를 소개해드렸습니다.

 

 

댓글(5)

  • 2021.12.08 10:22 신고

    해인사 너무 유명하죠~~ 가보고싶어요 ㅎ

  • 2021.12.09 05:57 신고

    해인사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워요.

  • 2021.12.09 07:04 신고

    해인사는 몇 번 가 보아 아주 익숙하네요 ㅎ
    가을의 모습도 좋습니다

  • 2021.12.09 12:48 신고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2021.12.09 17:09 신고

    해인사 소리길을 따라 천년고찰 합천 해인사를
    들렸군요..
    팔만대장경이 소장된 이곳 합천 해인사는
    볼때 마다 또다른 신비감과 정겨움을 느낄수
    있는곳 같습니다..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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