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신비, 진천 농다리

    1. 여행 일자 : 2020년 8월 17일 월요일


    2. 여행지    :  진천 두타산 산행 + 한반도지형 전망대 + 농다리


    3. 소재지  


    두타산(충북 진천군 초평면, 충북 증평군 증평읍 · 도안면), 한반도지형 전망대(충북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 563-1), 농다리(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601-32)


    4. 진천 농다리 소개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에 흐르는 세금천에 놓인 농다리는 천 년을 이어온 신비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로서 전체 28칸의 교각으로 중간 중간 돌들을 쌓아 교각을 만들고 길고 넓적한 돌을 교각 사이에 얹어 다리를 만든 조상의 지혜가 느껴진다.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5. 진천 농다리 다음지도 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1) 진천 농다리 다음지도

     

     

    2) 교통편 : 다음지도 진천 농다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6. 여행 사진


    ▲ 블랙야크 명산 100 플러스에 선정된 진천 두타산 산행을 마치고 진천 농다리에 들렸습니다. 산악회버스가 도착한 장소는 농다리 대형버스주차장입니다.


    ▲ 소형 차량은 농다리 앞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대형버스는 진입금지네요. 농다리까지 걸어서 들어갑니다.


    ▲ 앞으로 보이는 건물은 농다리전시관인데요. 농다리전시관은 돌아 오는 길에 잠시 들렸습니다.


    ▲ 초평호 한반도지형 포토존


    ▲ 저 멀리 보이는 굴다리는 중부고속도로 굴다리인데,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농다리입니다.


    ▲ 중부고속도로 굴다리 앞의 정자와 소습천(消濕泉)


    소습천은 지방 유형문화재 제 28호인 농다리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비탈의 반석은 品(품)자 형을 이루고 있고 반석 사이에서 용출되는 샘물은 연중 마르는 법이 없다. 이 샘물은 풍습에 좋고 인질에도 양약으로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또한 이 동달샘은 어수천(御水泉)이라고 하는데 세종대왕께서 안질 치료차 조정에 가시는 도중 이곳을 지나 가실 때 이 샘물을 마시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말이 널리 알려지자 인근 지역 아낙네들은 치마로 병풍을 만들어 치고 목욕을 하기도 하였다.  


    ▲ 소습천의 유래 안내판


    ▲ 중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미호천의 진천 농다리에 도착했는데요. 오른쪽으로 관광안내소(문화관광해설사의집)가 있고  왼쪽으로 보이는 다리가 농다리인데, 아쉽게도 7월의 집중호우로 인해 농다리의 석재가 유실이 되어 현재는 진입이 금지된 상태입니다. 


    ▲ 진입금지로 농다리에 가까이 가볼 수도 없어, 멀리서 카메라로 찍은 농다리입니다.


    ▲ 7월의 집중호우로 물에 잠겼던 농다리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현재(2020. 8.17)는 농다리의 상판은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아직까진 개방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농다리 오른쪽으로 보이는 정자는 '천년정'입니다.


    ▲ 위험 농다리(진천 농교) 사용불가




    ▲ 농다리 앞에서 왼쪽(북쪽) 방향으로 걸어서 이동하면 인공폭포와 징검다리를 만나게 되는데요. 인공폭포 왼쪽으로는 '농암정'이란 정자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농다리와는 달리 징검다리는 물에 완전히 잠겨 있습니다.  





    ▲ 초평호 한반도지형 포토존


    ▲ 농다리를 멀리서 바라만 보고, 돌아오는 길에 농다리전시관을 둘러봅니다.


    ▲ 천년의 숨결, 진천 농다리전시실 입구인데요. 왼쪽으로 들어가서 관람 후 오른쪽 방향으로 나오면 됩니다. 


    ▲ 천 년의 숨결, 진천 농다리


    수 많은 설화와 전설, 그리고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천 년의 숨결을 이어 온 한국의 다리, 다리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어 사람과 사람, 이웃과 이웃이 삶을 엮어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다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며,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는 통로이다. 진천 농다리는 100여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자줏빛 지네 같은 모습으로 바람이 불면 스르르 물결을 일으키며 강을 떠날듯한 자태로 천 년의 이야기를 침묵한 채 사람들의 발길을 잇는다. 


    ▲ 농다리의 사계 - 봄, 여름, 가을, 겨울


    ▲ 다리이야기 - 인류의 문명과 다리, 지구촌의 다리들


    물길 따라 인류의 문명은 시작되었고, 물길을 가로지는 다리는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며 만남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소통의 통로가 되었다. 


    ▲ 한국의 옛다리 - 자연과 인간의 다리,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 자연과 인간의 다리

     - 인류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들은 농사나 고기잡이에 편리한 강 주위나 바닷가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공동체 생활을 하고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개천이나 발이 빠지는 늪이 있으면 통나무나 큰 돌을 띄엄띄엄 놓아 빠지지 않고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이것이 다리의 시초이다.


    □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

     - 다리에 관한 역사를 문헌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 진보된 기술로 본격적으로 짜임새 있게 다리가 만들어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이다.


    □ 고려시대

     - 고려시대에는 궁성을 포함한 도성을 중심으로 나라가 발전했는데, 자연스럽게 도성은 한 나라의 수도로서 길을 닦고, 대부분 안정된 돌과 목재를 이용한 다리들을 축조하였다.


    □ 조선시대

    - 조선시대에는 다양한 재료와 용도의 다리가 발전했는데, 원시적인 형태의 보다리와 구름다리, 징검다리 외에도 성곽과 사찰, 민간에서도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돌다리가 발전하였다. 또한 하폭이 넓은 강에 나룻배를 이어 만든 배다리까지 다양한 형식의 다리가 나타났다. 


    ▲ 다리이야기 - 다리의 세계


    고대 로마 사람들은 다리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상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많은 다리들은 성직자인 신부들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동양의 불교에서는 다리를 건설하여 중생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 현세에서의 세 가지 공덕 중의 하나라고 믿었기 때문에 사찰 앞에는 아치 모양의 다리를 만들어서 속세로부터 무지개를 타고 불토(佛土)로 들어간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냈다. 또한, 오랫동안 다리는 문학과 예술의 주요 테마가 됐으며 세계의 여러 신화에서도 이야기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면서 그 자체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해 왔다.


    ▲ 농다리 역사  - 문헌 속의 농다리, 농다리에 담긴 동양철학, 농다리에 전해지는 다양한 전설


    □ 문헌 속의 농다리 (상산지, 조선환여승람)

     - 천 년 전 인물, 고려 초 임장군의 후예가 대부분인 마을 사람들에게 '농다리'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돌다리이다. 사람들은 눈을 감고도 돌 모양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할 수 있을 만큼 다리와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 왔다.


    □ 농다리에 담긴 동양철학

     - '농다리'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상당한 수준의 건축공법을 비롯해 심오한 동양철학이 깃들어져 있어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 농다리에 전해지는 다양한 전설

     - 첫 번째 전설, 농다리 [구전(口傳] : 임 장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였는데, 몹시 추운 겨울 어느 날 세금천 건너편에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모습을 기이하게 여기어 여인에게 물으니, 여인이 답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친정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장군은 여인의 지극한 효심과 그 모습을 딱히 여겨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하며, 용마의 바끈이 끊어져 떨어진 돌을 그대로 두었는데, 이것이 용바위(쌍바위)라 전해지고 있다. 이 전설은 본 전시관의 짧은 드라마 형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 두 번째 전설, 임연 오누리 힘내기 설화

     - 세 번째, 울기도 하는 농다리

     - 네 번째 전설, 재앙을 예고하는 농다리


    ▲ 한국의 옛 다리 -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 농다리


    1976년 12월 20일 지방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된 '농다리'는 진천의 명소이다. 고려시대에 축조된 이 돌다리는 그 모습이 마치 지네가 물을 건너가는 것 같은데, 제법 장대한 규모에도 압도되지만 장마 때면 다리 위로 물이 넘어가는 '수월교'라는 점에서 그 슬기로움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해마다 한 차례씩 물이 넘어가는 바람에 다리에 놓인 물들이 덜컹거린다. 그래서 '농다리'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이것이 자연스럽게 움직이 않으면 다리가 물살에 쓸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연의 논리에 순응하면서 자연을 극복하고 개조했던 옛사람의 마음을 배운다. 


    현재 농다리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상판 유실과 교각 파손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지만 유례없는 석축 방식을 가진 농다리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군민들이 애쓰고 있다. 선조들의 지혜로 천년 세월을 넉넉히 이겨낸 농다리, 이 모습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 줄 수 있도록 농다리 보존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가야 할 것이다.  


    ▲ 농다리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1단계 - 기초석 쌓기 : 천년의 풍상에도 끄덕 없이 누워 있는 자랑스러운 조상의 유물 '농다리'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을까? 그 첫 단계는 다리가 튼튼하게 서 있을 수 있도록 튼튼한 기초석 쌓기이다.

    2단계 - 교각 만들기 : 기초석을 쌓은 후에 두 번째 단계로 기초석 위에 자연석을 들여쌓아 '교각'을 만들었다.

    3단계 - 장대석 얹기 : 튼튼한 기초, 교각을 쌓은 후에 세 번 째 단계는 교각과 교각을 잇고, 사람의 발이 닿을 수 있는 장대석을 얹어야 한다. 



    ▲ 농다리의 구성도


    농다리는 들여쌓기와 엇물려 쌓기 방식, 유선형의 독특한 구조로 물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떠내려가지 않는 견고함을 갖고 있다. 


    ▲ 농다리에 숨겨진 과학적 원리


    천년의 신비 '농다리'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독특한 구조를 자랑한다.


    ▲ 농다리전시관의 작품들


    ▲ 오늘은 블랙야크 명산 100 플러스에 선정된 진천 두타산 산행 후에, 진천의 명소 농다리와 농다리전시관을 둘러 보았는데요. 아쉽게도 7월의 집중호우로 농다리를 직접 걸어보진 못했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초평호 초롱길과 농다리를 연계해서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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