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 첨성대
- 국내여행
- 2019. 2. 7.
1. 여행 일자 : 2019년 2월 2일 토요일
2. 여행지 : 명선도 일출 +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 첨성대 + 대릉원 + 동궁과 월지 야경
3. 소재지
명선도(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진하리) + 주상절리 파도소리길(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하서리) + 첨성대(경북 경주시 첨성로 169-5, 인왕동) + 대릉원(경북 경주시 계림로, 황남동) + 동궁과 월지 야경(경북 경주시 원화로 102, 인왕동)
4. 첨성대(瞻星臺) 소개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만들어진 첨성대가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에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주장, 사방 어디에서 보나 똑같은 모습 그 자체로 해시계의 역할과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본떠 만든 건축물 등 여러 주장들이 있다.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서 있는 첨성대는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과 네모난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쌓은 돌이 모두 362개로, 음력 1년의 날 수와 같고, 12개의 기단은 1년의 12달을 의미해서 신라인들에게 달력의 개념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한다.
첨성대가 세워진 후, 삼국사기에는 일식, 월식, 혜성의 출현, 기상이변 등을 관측한 기록들이 예전 보다 많고 매우 정확한 것이어서, 아름다운 외형과 과학적인 구조로 만들어진 첨성대가 뛰어난 건축기술과 과학기술이 접목된 우리 민족의 독창적인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5. 첨성대 다음지도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1) 다음지도
2) 교통편 : 첨성대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첨성대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6. 여행 사진
▲ 울산 진하해수욕장 명선도 일출과 경주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트레킹을 마치고 경주시의 동궁과 월지(안압지)에 도착했습니다. 동굴과 월지(안압지) 야경을 촬영하기 전에 첨성대와 대릉원을 먼저 둘러 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석빙고, 경주계림, 첨성대 등입니다.
▲ 동궁과 월지(안압지) 매표소를 지나 첫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 신라왕궁영상관 앞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월성지구와 석빙고 방향으로 가게됩니다.
▲ 석빙고로 가는 도중에 뒤돌아본 신라왕궁영상관인데요. 화면 중앙으로 보이는 건물이 신라왕궁영상관이고 그 앞쪽으로 걸어가면 바로 첨성대로 가게 됩니다.
▲ 동굴과 월지 방향 오른쪽으로 토함산이 희미하게 보이네요.
▲ 경주 월성(사적 제16호)
이 곳은 신라시대 궁궐이 있었던 곳이다.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 하여 신월성 또는 월성이라고 불렀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반월성이라고도 불려졌다.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아 이 곳으로 도성을 옮겼으며 그 이후로 신라 역대 왕들의 거처가 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석탈해가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를 사위로 삼았으며, 석탈해는 나중에 신라 4대 왕이 되었다.
남쪽으로는 남천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 시설이 되었고, 동쪽과 북쪽, 서쪽으로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넓은 도량인 해자(垓子)를 팠다. 누각과 관청, 왕궁을 비롯한 많은 부속 건물들이 있었으며, 성 안에는 조선시대 얼음창고인 석빙고가 남아 있다.
▲ 경주 월성 이야기
월성은 경주시내를 흐르는 남천 · 북천 · 서천 안쪽 구릉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반달 모양이라 하여 '반월성'이란 별명도 있습니다. 월성에서는 경주 분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동쪽에는 명활산과 토함산, 서쪽에는 선도산과 옥녀봉, 남쪽에는 남산, 북쪽에는 소금상산이 위치하여 요새와 같은 입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월성의 탁월한 입지를 알아본 신라 5대 왕인 파사왕(婆娑王)이 서기 101년에 처음 이곳에 왕궁을 짓고 '월성'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후, 935년까지 신라의 중심 궁성이었습니다. 이 월성을 중심으로 '동궁과 월지', '분황사와 황룡사', '첨성대', 선왕들의 무덤 등이 조성되면서, 신라 왕경의 위용을 더해갔습니다.
▲ 경주 월성 발굴조사지역 뒤로 산림청과 블랙야크 100대 명산인 남산이 보이네요.
▲ 경주 월성 안의 석빙고(石氷庫, 보물 제66호)
이 석빙고는 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얼음창고이이다. 석실은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졌는데 약 1,000여 개의 돌이 쓰였고 천장 외부는 봉토의 형상을 하고 있다.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천장에는 공기구멍이 셋이 있고, 바닥은 물이 빠질 수 있도록 홈을 파서 비스듬하게 만들었다. 출입구는 남쪽에 있고 계단을 통하여 출입하게 되어 있다.
석빙고 출입문 이맛돌에 "숭정 기원후 재신유 추팔월 이기 개축"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영조 17년(1741)에 옮겨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옆에 있는 영조 14년(1738)에 세운 석비에는 경주 부윤 조명겸이 나무로 된 얼음 창고를 돌로 고쳐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현재 석빙고 서쪽으로 약 100m 되는 곳에 옛터가 있다.
▲ 경주 월성을 지나 삼거리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첨성대로 바로 가게 되는데요. 첨성대로 가기 전에 왼쪽의 경주 계림과 내물왕릉을 먼저 둘러봅니다.
▲ 경주 계림(慶州 雞林, 사적 제19호) 안내판
이 숲은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 때 호공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나뭇가지에 금궤가 빛을 내며 결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하여 성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하고, 본래 시림구림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으로 부르게 되었다. 경내의 비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 회화나무
계림은 첨성대와 월성 또는 신월성 사이에 있는 숲으로 왕버들 · 느티나무 · 팽나무 등의 고목(古木)이 울창하게 서 있는, 신라 건국 당시 부터 있던 곳이다. 현재 계림에는 약 100여 주의 고목(古木)이 우거져 있으며 1803년(순조 3)에 세운 비가 있다. 이 나무는 계림정문에 위치하고 있으며 둘레 직경 2m정도로 추정되고 수령은 약 1,300년 정도로 추정한다. 과거 줄기 및 수간에 우레탄 수술로 인한 고사가 발생하여 현재 치료방법은 친환경 공동충전 방법으로 치료하였다. 수간부는 약 10%정도 생존해 있으며 하부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원형을 이전형태로 제작하여 옛 수형을 유추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한자로는 괴화(槐花)나무로 표기하는데 발음은 중국발음과 유사한 회화로 부르게 되었다. 홰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槐'(괴)자는 귀신과 나무를 합쳐서 만든 만든 글자이다. 회화나무가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은 것은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궁궐의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다. 그리고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당에도 회화나무를 많이 심었으므로 학자나무라 전해진다.
▲ 경주 내물왕릉(奈勿王陵, 사적 제188호)
이 능은 신라 제17대 내물왕(재위 356~402)을 모신 곳으로 대릉원의 남쪽에 있으며, 월성(月城)에서도 가까운 곳이다. 능은 밑둘레 약 68m, 높이 약 5.5m, 지름 약 22m 정도로 흙을 둥글게 쌓은 원형봉토분이다. 봉분 아래쪽에는 호석으로 추정되는 자연석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다.
내물왕은 김씨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으며, 이후 김씨 성에 의하여 독점적 왕위계승이 이루어진다. 왕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여러 차례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는 등 외교와 국방에 힘썼으며, 고대 국가의 체제를 확립하였다. 삼국유사에는 내물왕릉을 "점성대(占星臺, 첨성대) 서남(西南)에 있다." 고 기록하였다.
▲ 비단벌레 전기자동차
▲ 계림길을 지나
▲ 첨성대에 도착합니다.
▲ 경주 첨성대(국보 제31호)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만들어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다. 화강석을 가공하여 조성한 기단(基檀) 위에 27단의 석단(石段)을 원통형의 곡선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장대석(長大石)을 우물정자형(井)으로 축조하여 정상부에서 천문을 살피도록 시설되어 있다. 정남쪽의 석단에는 아래로부터 제13단과 제15단 사이에 네모난 출입구가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고, 이 출입구 아랫부분 양쪽에는 사다리를 걸쳐 오르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 곳을 통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규모는 밑면의 지름이 5.17m, 높이가 약 9m이며 지대석 한변의 길이는 5.35m이다. 신라시대의 석조물로 직선과 곡선이 잘 어우러진 안정감 있는 건축물이다.
▲ 비단벌레차 매표소
▲ 경주 월성, 첨성대, 비단벌레차 매표소를 지나 대릉원에 도착했는데요. 다음 포스팅에서는 대릉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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