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1. 산행 일시 : 2018년 5월 12일 토요일, 11:25 - 14:57 


2. 산이름    : 경주 남산 금오봉(468m), 고위봉(494m)


3.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ㆍ남산동ㆍ내남면


4. 산행 코스 : 서남산주차장 → 삼릉탐방지원센터 → 삼릉 → 상선암 → 금오봉 → 남산진입도로 → 이영재 → 칠불암 → 백운재 → 고위봉 → 열반재 → 관음사 → 천우사 → 용장주차장


5. 산행 거리 및 소요시간 : 10.34Km(3시간 32분)


서남산주차장(11:25) → 1.82km → 상선암(12:05) → 1.13km → 금오봉(12:33) → 1.54km → 이영재(12:56) → 1.67km → 칠불암(13:29) → 0.91km → 백운재(13:49) → 0.57km → 고위봉(14:01) → 1.48km → 천우사(14:41) → 1.22km → 용장주차장(14:57)

 

6. 산행 인증 및 인기순위 : 블랙야크 명산100 [84좌] 인증 및 한국의 산하 인기명산 100 [88위]


7. 경주 남산 정보



경주 남산은 곧 신라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신라 건국에서부터 멸망에 이르는 동안의 수많은 유적과 신라를 지탱해 온 불교유적의 보고이다. 

신라의 건국설화에 나오는 나정(羅井)에서부터 종말기의 포석정이 남산 기슭에 자리잡았다. 그 사이의 시간 간격이 900년이다.


8. 경주 남산 산행 지도 및 gpx 파일 다운로드




2018-05-12-경북-경주시-서남산주차장-상선암-금오봉-이영재-칠불암-백운재-고위봉-열반재-관음사-용장주차장.g

9. 산행 사진


▲ 서남산주차장(경북 경주시 배동 725)에서 경주 남산 산행을 시작합니다.



▲ 삼름탐방지원센터


▲ 경주 배동 삼릉 [사적 제219호]


이 곳에는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곳에 모여 있어 삼릉이라 부른다. 


아달라왕(재위 154~184)은 재위 당시 백제가 침입하여 백성을 잡아가자 친히 군사를 출동하여 전쟁에 나아갔으며, 이에 백제가 화친을 요청하가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또한 왜에서는 사신을 보내오기도 하였다.


신덕왕(재위 912~917)은 현강왕의 사위로 효공왕이 자손 업싱 죽자 사람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중에는 견훤과 궁예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진력하였다. 능은 가운데에 위치하고 잇으며, 두 차례에 걸쳐 내부가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굴식돌방무덤으로서 돌방 벽면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었는데, 신라의 무덤으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된다.


경명왕(재위 917~924)은 신덕왕의 아들로 재위 기간 동안 신라의 국운이 기울러가고 있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 공격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 이정표에는 들머리인 서남산주차장을 삼릉주차장으로 표기해 놓았습니다.


▲ 삼릉곡 제1사지 탑재와 불상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곳에 모아 정비하였다. 앉은 불상은 약합을 들고 있어 약사여래상이며, 옷 주름 조각이나 특별한 양식이 없어 시대를 알 수 없다. 또 한 점의 불상 조각은 여래입상이다. 허리 위와 발 대좌는 잃어 버렸다. 옷의 주름 조각양식으로 보아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점의 탑재는 각기 다른 탑의 조각이다.


▲ 삼릉곡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높이 1.60m 너비 1.56m의 큰 불상이다. 옆 계곡에 묻혀 있다 1964년 발견되어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마멸이 없고 옷 주름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가슴에 매듭이 사실적으로 새겨져 있어, 전통 매듭이 신라시대부터 장식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무릎 수인이 파괴되어 어떠한 불상인지 알 수 없게 되었으나, 편안히 앉은 자세, 탄력 있는 가슴, 넓고 당당한 어깨 등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전성기의 위풍당당한 불상이다. 


▲ 선각육존불 방향으로 갑니다.


▲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이 불상은 남산에서는 드물게, 선각으로 된 여섯 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안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오른 어깨에만 법의를 걸치고 연꽃 대좌에 앉아 있다. 머리 둘레에 두광만 새기고 몸 둘레의 신광은 새기지 않았으며, 왼손은 무릎에 얹고 오른손을 들어올린 모습이다. 그 좌우에는 연꽃 대좌에 두광만 조각되고, 방울 3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한 보살 두 분이 서 있다. 보통 이 세분을 석가삼존이라 부른다.


앞쪽 바위면 가운데 본존이 서고 좌우의 보살은 꿇어앉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 본존은 연꽃 위에 서서 왼손은 아래에, 오른손은 위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고 두광만 조각되어 있다. 그 좌우의 보살상은 웃옷을 벗고 한쪽 무릎을 세운 모습을 하였다. 손에는 꽃 쟁반을 받쳐들고 있는데, 두광만 조각되었으며 목에는 구슬 2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를 하였다. 이를 아미타삼존이라고 한다. 


오른쪽 암벽 위에는 당시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다. 


▲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666호]


남산의 삼릉계곡 중부 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이다. 불상은 불두와 불신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이 불상의 얼굴은 파손이 심했기 때문에 2007~2008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 · 정비하여 뺨과 코, 입 등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불상의 모습은 당당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오른쪽 어깨는 노출된 편단우견식으로 걸쳤는데, 이 가사는 얇게 몸메 밀착하여 신체의 윤곽 등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정강이에 발목으로 옷 주름이 비스듬히 흐르고 있다.


광배는 간결하면서도 화염문과 당초문을 섬세하게 새겨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연화좌는 상대에 앙련을 3단으로 새겼는데 꽃잎 안에 다시 꽃잎을 새겼다. 팔각의 중대에는 면마다 안상을 두었으나 하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도 당당하고 안정감 있는 신체 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 수법, 몸에 밀착시켜 입은 얇은 가사, 발목으로  흐르는 옷주름 등으로 보아 석굴암 본존불상에서 완성된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므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삼릉곡 제6사지 석탑터


능선에 있는 불상은 2008년 복원되었으며,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 중 이 곳에서 1930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삼층석탑의 조각이 발견되어 원 위치로 확인되었다.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큰 바위 능선을 기단으로 이용하여 작지만 웅장한 삼층석탑으로 조성되었다. 


▲ 상선암



▲망산, 단석산, 벽도산, 선도산, 구미산, 옥녀봉, 송화산과 들머리인 서남산주차장


▲ 바둑바위에 있는 우편함입니다. 무료로 우편발송을 해주니 사진엽서로 그리운 마음을 담아 보내라고 적혀 있네요.


▲ 바둑바위


▲ 바둑바위에서 바라본 망산, 벽도산, 선도산, 구미산, 옥녀봉, 송화산과 들머리인 서남산 주차장



▲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유형문화재 158호]


거대한 바위벽에 6m 높이로 새긴 이 불상은 남산에서 2번째로 큰 불상이다.


얼굴의 앞면은 고부조로 원만하게 새겨진 반면, 머리 뒷부분은 바위를 투박하게 쪼아 내었다. 짧은 목에 삼도는 없고, 건장한 신체는 네모난 얼굴과 잘 어울린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설법인을 짓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올려 놓았다. 불상의 신체는 거칠고 억세게 선각하였고, 좌대는 부드러워지다가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 듯하다.


이러한 조각 수법은 불교가 바위신앙과 습합하여 바위 속에서 부처님이 나오시는 듯한 모습을 표현하였다. 입체감 없는 신체 표현, 거칠고 치졸한 옷주름 선 등으로 보아 9세기 불상양식을 반영하는 거대 불상이다.





▲ 블랙야크 명산100 인증 장소인 금오봉(468m)입니다.



▲ 남산진입도로에서 이정표의 통일전주차장 방향으로 갑니다.


▲ 삼화령[三花嶺]


삼화령은 '삼화수리'고도 하는 데 수리는 높은 곳을 의미하며 남산에서는 세곳 수리가 있는데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두 봉우리의 삼각형 위치에 해당하는 이 곳 봉우리를 합하여 삼화령이라고 불렀다. 


선덕여왕시절 생의스님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나를 따라 오라"하며 남산 남쪽 골짜기에 데리고 가서 풀을 묶어 놓으면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나를 파내어 고개 위에 안치 해 주시오/라고 했다. 다음날 그곳에 가 보았더니 꿈속처럼 풀을 묶어 놓은 곳이 있었다. 생의스님은 땅을 파 미륵불을 발견하고 삼화령 꼭대기에 모셔놓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공양하였다. 경덕왕 때 향가, 안민가와 찬기파랑가를 지은 충담스님이 해마다 삼월 삼일, 구월 구일에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를 공양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있는 데 바로 그 부처님으로 짐작된다.


지금 미륵불은 없어지고 지름 2m의 연화대좌만이 남아 있으며, 진입도로 아래쪽에 절터가 남아 있는데 그 곳이 생의사터로 추정된다. 자세한 내력은 절터 옆에 서있는 비석에 있으련만 이제 비석은 사라지고 비석 받침만이 역사의 궁금증을 더해 주고 있다. 


▲ 삼화령에서 바라본 고위봉


▲ 삼화령에서 바라본 백운재, 고위봉, 태봉, 열반재, 황발봉과 이무기능선



▲ 이영재



▲ 황발봉, 태봉

▲ 태봉, 벽도산, 망산, 금오봉



▲ 칠불암으로 내려가는 계단입니다.


▲ 칠불암


▲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군 [국보 제312호]


이 불상들은 경주 남산 봉화골의 정상 가까이 위치한 마애 삼존불과 사방불(四方佛)로서 '칠불암 마애석불(七佛庵 磨厓佛像群)'이라 불린다. 


삼존불의 가운데 있는 본존불은 앉아 있는 앉아 있는 모습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양감있는 얼굴과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를 통해 자비로운 부처님의ㅡ 힘을 드러내고 있다.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는 옷은 몸에 그대로 밀착되어 굴곡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모습이다. 


사방불도 모두 연꽃이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각기 방향에 따라 손 모양을 다르게 하고 있다. 보살상이 본존을 향하고 있는 것이나 가슴이 길고 다리가 짧게 조각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백운재


▲ 남산 고위봉(494m)입니다. 고위봉에서 용장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방법은 이무기능선을 타거나 관음사 방향으로 내려가면 되는데요. 오늘은 비도 오고 해서 안전한 관음사 방향으로 내려갑니다.


▲ 정면 방향이 이무기 능선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 고위봉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금오봉, 태봉, 이영재와 이무기능선


▲ 열반재


▲ 열반골[涅槃谷]의 전설 [부처님 세계로 통하는 열반골]


옛날 신라에 한 각간(대신)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마음씨도 곱고 아름다운 외동딸이 있었다. 선녀같이 아름다운 처녀에게 뭇 남성들이 때로는 권력으로 때로는 금력으로 성가시게 굴었다. 마침내 처녀는 시끄럽고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부처님 세계인 열반에 살기로 결심하고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섰다. 사랑도, 존경도, 화려한 옷도, 맜있는 음식도 속세의 인연을 다 끊어버리고 오직 맑고 청정한 부처님 세계로 들어선 곳이 바로 이곳 열반골이다. 이 계곡으로 들어서면 온작 짐승들 모양의 기암괴석 들을 만날 수 있다. 


계곡 입구에서 200m쯤 들어서면 평평한 바위가 나타난다. 갱의암(更衣岩)이다. 이곳에서 처녀는 화려한 금빛으로 수놓은 속세의 옷을 다 벗어 버리고 잿빛 먹물 옷으로 갈아입고 골짜기로 들어섰다. 그러나 꽃같이 피어 난 살향기를 감출 수는 없었다. 무서운 맹수들이 길을 막고 으르렁 거렸다. 처음 만난 짐승은 사나운 고양이, 이 바위가 묘암(描岩)이다. 그 위로 코를 씰룩거리며 나타나는 개(犬), 개바위이다. 또 간사스런 여우바위를 지나면 심술궂은 산돼지바위, 산등을 넘어오는 작은곰바위, 뱀바위, 점잖은 모습으로 유혹하는 귀신바위들이 계속 나타난다. 무섭고 험난한 길을 헤치고 좀 더 깊이 들어가면 거대한 큰곰바위가 나타난다. 큰곰바위 앞 관음사라는 작은 암자는 요즘 지은 것이다. 관음사 뒷산으로는 맹호바위, 들소바위, 이무기바위, 독수리바위, 거북바위, 그리고 바위 밑에 용이 기거한다는 용바위가 있다.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계곡을 벗어나면 드디어 물소리도 고요하고 산도 평평해 진다. 정상 쪽을 향해 올려다보면 10m가량 되는 큰 바위 위에 한 개의 이상한 돌이 얹혀 있는데 누가 대변을 본 것 같아 보여 이 바위를 똥바위(분암,糞岩)라고 한다. 장마 때면 바위큼으로 흘러내리는 물이 있어 뇨암(尿岩)이라고도 한다. 


처녀는 짐승들의 온갖 위협을 물리쳤고 마음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마치 구름 없는 파란 하늘에 온 것 같았다. 바로 그 때 서쪽 산등성이에서 지팡이를 짚고 오는 할머니를 만났다. 지팡이바위 또는 할머니바위라고 불리는 이 바위는 깨우친 사람을 극락으로 안내하는 지장보살 이시다. 할머니는 "이제 아가씨는 진리를 깨우쳐 맑고 깨끗한 마음을 얻었으니 열반으로 안내 하오리다. 이 바위를 타십시오" 지장보살할머니는 구름바위에 태우고 흔들흔들 산등성이를 넘어 천룡사 부처님 세계에 안내하여 처녀는 영원히 열반에 사는 몸이 되었다고 전해져 온다.


 [참고 문헌 : 겨레의 땅 부처님의 땅]


▲ 관음사


▲ 관음사와 큰곰바위


▲ 천우사


▲ 화장실


▲ 공원지킴터



▲ 용장휴게소


▲ 용장주차장에서 바라본 금오봉, 태봉, 고위봉입니다. 용장주차장(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428-6)에서 경주 남산 산행을 마칩니다.

댓글(6)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