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활짝 핀 여수 영취산 흥국사의 봄

    1. 여행 일자 : 2022년 4월 2일 토요일

     

    2. 여행지    :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華嚴寺)의 말사인 여수 흥국사

     

    3. 소재지 : 전남 여수시 흥국사길 160(중흥동)

     

    4. 여수 영취산 흥국사(興國寺) 소개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되었다. 이 사찰은 고려시대인 1195년(명종 25)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뒤 조선시대인 1560년(명종 15)에 법수(法修)대사가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동안 의승군의 주둔지와 승병 훈련소로서 호남 지방 의병·승병 항쟁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법당과 요사가 소실되었다. 1624년(인조 2)에 계특대사(戒特大師)가 건물을 중창하였으며, 1690년 법당을 증축하고 팔상전을 새로 지었다. 1780년 선당(禪堂)을, 1812년 심검당(尋劍堂)을 각각 중건하였고 1925년 칠성각과 안양암을 새로 짓고 팔상탱화를 봉안하였다.가람의 배치는 대웅전(大雄殿)을 주축으로 되어 있다. 경사지 위에 사천왕문(四天王門)을 지나 봉황루(鳳凰樓), 법왕문(法王門), 대웅전, 팔상전(八相殿)이 순서대로 일축선상에 배치되었고 대웅전 전면 좌우에는 적묵당, 심검당이 있다. 경내에는 보물 제396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팔상전·불조전·응진당 등 10여 동의 목조건물이 있고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578), 흥국사 홍교(보물 563), 괘불(掛佛), 경전(經典), 경서판각본(經書板刻本) 등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흥국사에는 옛날부터 ‘나라가 흥(興)하면 절도 흥하고 이 절이 흥하면 나라도 흥할 것이다’ 라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원래 여천군에 속했으나 공단(工團)이 들어서면서 여천시가 되었고 1998년 여천시가 여수시와 통합되어 여수시 관할이 되었다.

     

    5. 여수 영취산 흥국사(興國寺) 다음지도 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1) 여수 영취산 흥국사(興國寺) 다음지도

     

     

     

     

     

     2) 교통편 :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여수 영취산 흥국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6. 여행 사진

     

    ▲ 여수 영취산 산행 하산길에 벚꽃이 활짝 핀 영취산 자락에 위치한 흥국사에 들렸습니다.

     

    ▲ 목교에서 뒤돌아본 영취산 흥국사 백팔돌탑공원

     

    여수반도의 영취산은 예로부터 영산(靈山)으로 일찍이 성황신(城隍神)이 모셔진 곳이다. 이 곳에는 흥국사를 비롯한 수많은 암자들이 있어서 소낙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도솔암까지 올라가는데 비를 맞지 않고 갔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들 암자가 의승군들의 숙영지가 되었고 전장에 나설 때면 흔들바위에서 소원을 빌고 돌탑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사라져 버린 북암터 등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영취산 기슭 1만여평의 면적에는 상사화(꽃무릇) 1천만 송이 자연 군락지가 온전히 형성되어 최근에 발견되었다. 

    이렇게 신성한 영취산 계곡에 (주)대신기공 김철희 대표가 임진왜란 전장에서 산화한 의승군들의 숭고한 넋을 위로하고 여수산단 조성으로 희생된 산업역군들의 영혼을 기리고 산업안전을 기원을 위해 108돌탑을 조성하게 된 것이다. 불자를 비롯한 관광객과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 목교를 지나 흥국사 경내로 들어왔는데요.  흥국사 원통전의 측면 모습입니다. 

     

    ▲ 흥국사 원통전(興國寺 圓通殿) - 도지정문화재 유형 제45호

     

    1633년에 세웠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공포 형식이나 세부 장식으로 보아 창건 당시의 것으로는 볼 수가 없고, 19세기 무렵의 건물로 보인다.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상을 모신 법당으로서 '관음전'이라고도 한다. 

    앞면 5칸 옆면 3칸의 건물로,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기조로 하고 있으며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앞쪽과 양쪽에만 있고 뒤쪽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사찰로는 특이하게도 평면이 정자각(조선 시대 왈릉에 재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집)과 같은 형태이다. 이런 형태를 한 사찰로는 순천 선암사 원통보전, 산청 대원사 원통보전 등이 있다. 

     

    ▲ 흥국사 원통전 주위로 화려한 벚꽃이 활짝 피었네요.

     

    ▲ 만월당과 원통전 그리고 벚꽃

     

    ▲ 보광전(普光殿)

     

    ▲ 해동선관(海東仙觀)

     

    ▲ 팔상전 입구

     

    ▲ 팔상전(八相殿)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8호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을 모시는 전각이다. 흥극사 팔상전은 숙종 16년에 지었으며, 대웅전의 규모를 넓혀 지을 때에 남은 부재를 활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정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대웅전에 버금가는 건물이다. 전각 안 불단 위에는 주존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는 삼존상을 모셨고, 화려한 닫집을 설치하였다. 

    전각 안에는 원래 1917년 영봉 스님이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으나 1970년대에 도둑맞았다. 지금은 영조 17년 승려 화가 의겸 등이 석가모니의 영취산 설법 장면을 그린 그림만 남아 있다. 

     

    ▲ 팔상전에서 바라본 응진당(眞堂, 응진전)인데요. 응진당은 부처님의 직계제자인 나한(아라한)을 모신 전각입니다.

     

    ▲ 흥국사 대웅전(大雄殿) - 보물 제396호

     

    대웅전은 석가 삼존불을 모시는 곳으로 여수 흥국사 대웅전은 인조 2년(1624)에 계특 대사가 흥국사를 다시 세울 때 지어졌다. 숙종 16년(1690)에 내부를 확장하고, 2017년에 수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용, 연꽃, 봉황 등이 그려진 단청이 건물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으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양옆에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이 불단에 모셔져 있다. 

     

    삼존상 뒤로 석가모니의 설법 장면을 묘사한 탱화(보물 제578호)가 걸려 있으며, 뒷벽에는 관음보살을 그린 벽화(보물 제1862호)가 있다. 건물 외부의 기단에는 거북과 꽃게를 새겼고, 중앙의 계단 양쪽 소맷돌과 마당의 괘불대에는 용을 새겼다. 

     

    여수 흥국사 대웅전은 조선 중 · 후기의 대표적인 대웅전 건물의 하나로서, 전체적으로 웅장하지만 조각, 단청 등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 대웅전과 무사전 사이로 보이는 전각은 불조전(佛祖殿)입니다.

     

    ▲ 무사전(無私殿)

     

    ▲ 심검당(尋劍堂)

     

    ▲ 법왕문(法王門)

     

     

    ▲ 적묵당(寂默堂)

     

     

    ▲ 청운당(靑雲堂)

     

    ▲ 공양간

     

     

     

    ▲ 적묵당과 대웅전

     

    ▲ 범종각 측면

     

    ▲ 법왕문(法王門)

     

    ▲ '사물루(四物樓)'라는 현판을 단 범종각

     

     

    ▲ 의승수군유물전시관(義僧水軍遺物展示館)

     

    ▲ 수장고(收藏庫)

     

    ▲ 봉황루(鳳凰樓)

     

    ▲ 선불장(選佛場)

     

    ▲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모시기 위한 문, 천왕문

     

    ▲ 영취교

     

    ▲ 뒤돌아본 천왕문(天王門)

     

    ▲ 영취교(靈鷲橋)

     

    ▲ 흥국사 중수사적비(興國寺 重修事跡碑) - 도지정문화재 유형 제312호

     

    1703년(숙종29년) 흥국사의 창건과 중수 등에 대해 기록한 사적비로서 비문은 당대의 명문장인 최창대가 지었으며, 비문을 쓴 이진휴 역시 당대 명필이었다. 

    비문에는 창건자 지눌과 무의자 담당과의 관계, 송광사가가 세워진 직후 흥국사가 창건되었다는 사실, 1560년(명종 15년) 법수화상에 의해 사찰 건물 1천여간이 증축되었다는 것, 1624년(인조2년) 계특의 대대적인 사찰 중건의 사실, 통일의 법당 개축사실 등 흥국사의 사적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수비 뒷면에는 정동호가 지은 발문을 문세욱이 썼는데, 흥국사의 창사와 중건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보조국사가 흥국사를 창건한 이래 조선에 들어와 임재왜란을 겪으며 온갖 고충을 극복하며, 약 470년 동안 중건한 승려들을 높이 평가한 내용이다. 바로 이어서 중건 과정에서 협조한 김덕항을 비롯한 약 140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중건과정에 도움을 준 지방관과 중앙정계의 인물, 관련 승려, 여성을 포함한 신도, 석공들의 명단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중수비의 건립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 극락교

     

    ▲ 일주문인데요. 일주문 바로 왼쪽으로 매표소가 있습니다. 

     

    ▲ 남북평화통일기원 표지석

     

    ▲ 흥국사 일주문과 매표소입니다. 흥국사는 문화재구역으로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는데요. 개인의 경우 어른 2,000원, 청소년 · 군경 1,500원, 어린이 1,000원입니다. 흥국사에 여행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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