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등명낙가사

    1. 여행 일자 : 2022년 1월 1일 토요일

     

    2. 여행지    :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인 등명낙가사

     

    3. 소재지 : 강원 강릉시 강동면 괘방산길 16

     

    4. 강릉 등명낙가사(燈明落伽寺) 소개

     

     

    강원도 태백산맥의 동쪽 정동에 위치한 등명낙가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자장율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처음은 등명사(燈明寺)라고 하였으며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에 병란을 막고자 수중보궁을 모셨다고 한다. 고려 초기 수많은 스님들이 참선수도 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시인 이곡(1392년)이 등명사에서 해돋이 광경을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고 고려시인 김극기(1180년대)는 "불법의 높은 길이 푸른 연봉에 둘러있고, 층대 위에 높은 사전(寺殿)은 겹겹이 공중에 솟아있다. 그윽한 숲은 그늘을 만들어 여름을 맞이하고 늦게 핀 꽃은 고운 빛을 머금어, 봄을 아름답게 하여 봉우리의 그림자에 걸렸고 절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골짜기에 불어내는 바람을 전한다." 라고 하였다. 

    등명사는 강릉부 동쪽 30리에 이 절히 위치하였다고 하며 풍수지리로 볼때, 강릉 도호부내에서 암실의 등화와 같으며 이곳에서 공부하는 수학도가 3경에 괘방산에 올라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급제가 빠르다고 전해진다. 다른 한 설은 문수보현보살이 부처님 사리를 모시고 동해로 내려와서 오대산에 모시고 보현보살은 보현사에 한송사는 문수보살, 이 곳 등명사는 오백나한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조선초기 개국공신들은 불교를 말살하고 유교정책을 펴고자 할 때 제일 먼저 정동에 일(日),월(月)의 정기를 등명사가 받은 것을 알고, 온갖 누명을 씌워 "임금의 눈에 안질이 생겨 점술가에 물었는데 동해 용왕이 노했다하여, 신하를 보내 배를 타고 이곳에 오니 수많은 쌀뜬물이 바다로 흘러 용왕이 노하셨다" 하여 등명사를 폐사시키니 그 후 500년 동안 정동에 등불이 꺼지고 옛 고구려 오층탑만이 등명사를 지키고 있었다. 그 후 1950년대 경덕 영해당 선사께서 10여채의 민가를 옮기고 옛 극락전을 짓고, 관세음보살이 상주하신 보타낙가산을 따 등명낙가사로 개명하고 해강 유근형 옹의 3년 6개월의 각고 끝에 청자오백나한을 조성해 모시고 500명의 회원이 남북평화통일을 염원하였다. 그 후 기도도량으로 중창원을 세우시다가 영산전을 시작하시던 중 1981년(음) 11월 11일 열반하시었다. 현주지 청우스님의 원력으로 16만평 임야를 매입해 조계종에 등록하고 영산전, 삼성각, 범종각, 극락전, 약사전, 안심당, 요사채, 일주문, 문수당, 조실당, 전등선원, 누각을 새로이 창건하셨다. 

     

    5. 강릉 등명낙가사 다음지도 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1) 등명낙가사 다음지도

     

     

     

     2) 교통편 :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등명낙가사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6. 여행 사진

     

    ▲ 새해를 맞이하여 강릉 괘방산 산행을 했는데요. 산행 중에 등명낙가사를 잠시 들렸습니다. 

     

    ▲ 등명낙가사 일주문인데요. 괘방산 등명낙가사란 현판을 달고 있네요.

     

     

    ▲ 이정표(← 큰법당, 영산전, 극락전, 삼성각, 오층사리탑, 종무소, 공양실 가는길)

     

    ▲ 등명감로약수

     

    호국 등명낙가사 경내에 위치한 본약수(산성, 명반, 녹반) 천은 현재 남북평화통일을 기원하기 위해서 영산전에 모셔진 오백라한님을 조성하여 봉안한 후부터 발견되어 샘솟고 있는 신비한 약수로써 국립보건원에 의뢰하여 분석한 바 마시거나 목욕했을 때  탁월한 효능이 있습니다. 

     

    ▲ 세심문(洗心門)

     

     

    ▲ 해우소(所)입니다. 해우소는 '근심을 푸는 곳'이라 뜻으로 사찰에서 변소를 달리 부르는 말입니다.

     

     

    ▲ 불이문(不二門)

     

    ▲ 영산전과 대웅전

     

    ▲ 범종각

     

    ▲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법당으로 "대웅" 이란 법화경(法華經)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위대한 영웅" 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진리를 깨달아 아는 자" 의 의미와 "그 진리를 뭇 중생들을 위해 널리 펴신 분" 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이라는 뜻이다.

    낙가사 대웅전은 특별하게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협시한 삼세불(三世佛)을 봉안하였다. 제화갈라보살은 정광여래:연등불은 성불하기 이전의 과거불이며, 미륵보살은 당래에 성불하여 미륵불이 되실 미래불이므로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가며 중생을 교화하는 삼세(三世)의 부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삼세불을 중심으로 천불과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을 함께 모시니 모든 불자들엑 응병여약의 설법처가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신격화된 절대적 존재라기보다는 제법의 실상을 여실하게 깨달은 진리의 발견자이고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한 해탈을 얻은 사람이다. 그는 일체중생을 고통에서 건져 내고가 한량없는 지혜화 무한한 자비심을 나타내는 도덕적 완성자로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니, 바라보고 닮고자 하는 스승이 계신다는 것은 우리 인류의 홍복인 것이다. 

     

    지금부터 40여년전 1981년(음. 5. 5) 현재 주지 청우스님이 50평 법당을 낙성하여 오백나한을 모시고 영산전 현판을 올렸다. 이제 시절 인연이 도래하여 영산전 법당을 새로 지어나한님들을 내려 모신 다음, 삼세불과 천불을 봉안하여 "대웅전' 으로 개명(改名)하니 사찰의 면모가 일신하고 대가람의 위용을 만천하에 드러내어 영산회상이 이룩되었다. 유연 중생의 수행발심처이자 불자들의 마음의 안식처인 도량처에 유정무정의 설법이 가득하다. 

     

    불기 2563년(2019) 7월 7일(음 6월 5일, 대웅전 현판식 봉정한 날)

    괘방산 등명낙가사 주지 송헌 청우 합장

     

     

    ▲ 영산전(靈山殿)

     

    영산전이라 석가 여래께서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을 설하시고 계신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와 나한님을 모시기 위한 법당이다. 가운데 부처님 좌우로 문수보현을 모시고 십대제자와 18성중 모셨다.  16나한에 달마대사 포대화상을 모시니 18나한이 되셨다. 나한은 응공(마땅히 공경 받으실 분) 이라고도 하며 금생에서 모든 번뇌와 속박에서 벗어난 성불하신 부처님 제자이다. 경전에는 부처님과 동등한 신통력을 갖춘 분이라고하여 부처님 당시의 제자 모습이기에 근엄하지도 않으며 이웃같이 친숙한 얼굴을 하고 있다. 부처님 열반하신 후 기사굴에 500제자가 경전을 결집할 때 나한에 

     

    ▲ 삼성각(三聖閣)과 진영각(影閣)

     

    ▲ 삼성각

     

    ▲ 대웅전 내부

     

    ▲ 대웅전에 내려다본 장면

     

    ▲ 뒤돌아본 대웅전

     

    ▲ 극락보전(極樂寶殿)입니다. 오른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약사전, 오층석탑 등이 있는데 둘러보진 않았습니다. 

     

    극락정토의 주불인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고, 자비로 중생을 제도하는 관세음보살과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비추어 끝없는 힘을 얻게 하는 대세지보살이 협시로 모셔져있고, 뒤쪽에는 극락회상도와 극락구품탱화 등이 모셔져 있다. 

     

    ▲ 등명락가사 종무소(신도회, 가섭회)

     

    ▲ 관일루(觀日樓)

     

    ▲ 오늘은 괘방산 자락에 있는 등명낙가사를 소개해드렸는데요. 실은 등명낙가사는 오늘 산행 일정에는 없었는데, 안인삼거리에서 괘방산 등산로를 새벽부터 통제함에 따라 괘방산으로 바로 올라가지 못하고, 동해안 도로를 따라 이곳 등명낙가사까지 걸어서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시절인연으로 낙가사를 방문한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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