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 용마산, 남한산 연계산행 ② 남한산 편

1. 산행 일시 : 2020년 7월 4일 토요일, 10:16 - 17:10 


2. 산이름    : 검단산(657m), 용마산(595.5m), 남한산(522.1m)


3. 소재지    : 검단산(경기 하남시 창우동, 배알미동, 하산곡동 ), 용마산(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광주시 남종면), 남한산(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 상사창동, 광주시 남한산성면)


4. 산행 코스 : 검단산입구.한국애니메이션고교 버스정류장 → 유길준묘 → 전망대 → 검단산 → 고추봉(두리봉) → 용마산 → 은고개 → 남한산 → 봉암성 암문(제3암문) → 북암문(제4암문) → 북문(전승문) → 남한산성[종점] 버스정류장


5. 산행 거리 및 소요시간 : 17.29km(6시간 54분) = 검단산 ~ 은고개까지 10.65km(4시간 16분) + 은고개 ~ 남한산성[종점] 버스정류장까지 6.64km(2시간 38분)


검단산입구.한국애니메이션고교 버스정류장(10:16) → 2.73km → 전망대(11:33) → 0.95km → 검단산(11:57) → 2.18km → 고추봉(두리봉, 12:48) → 1.58km → 용마산(13:37) → 3.21km → 은고개(14:32) → 3.91km → 남한산(16:18) → 2.25km → 북문(17:02) → 0.48km → 남한산성[종점] 버스정류장(17:10)


6. 산행 인증 : 블랙야크 명산100 플러스(+) 검단산(5좌), 남한산(6좌) 인증


7. 검단산, 용마산, 남한산 소개



1) 검단산(657m)


검단시의 동쪽 한강변 창우동 · 하산곡동 · 상산곡동 · 배알미동과 광주시 남종면에 걸쳐 위치한 산이다(고도:657m).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검단산(黔丹山)은 주 동쪽 7리에 있는데, 진산(鎭山)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납산(納山)에서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내시별감(內侍別監)을 보내어 광주(廣州)의 성황(聖隍)과 검단산(儉丹山)의 신(神)에게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검단산의 이름은 백제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이곳에 은거한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광주부의 진산이었다. 세종대왕의 능을 이곳에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게 되어 닦아 놓은 능터가 남아 있다. 『여지도서』에 검단산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를 비롯해 조선 후기 지도에 에 검단산이 동쪽 한강변을 끼고 있다고 표현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광주 고읍 북쪽에 검단산이 뚜렷하게 묘사되어 있다. 『중정남한지』에“검단산은 동부면에 있으며 즉 고읍의 진산이다. 백제의 승려인 검단선사가 살던 곳이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광주군 군내면 상산곡동에 검단산이 수록되어 있다. 


2) 용마산(595.5m)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광주시 남종면에 위치한 높이 595.5m의 산이다.


3) 남한산(522.1m)


남한산은 여성적인 아담한 산이다. 지형의 사면이 해발 460m 정도의 산지로 둘러싸인 해발 300~350m 고도의 평탄한 분지 형태이며, 산지의 사면이 외부로부터 적의 침입을 막기에 유리한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삼국시대 이래 산성을 축성하여 군사요충지로 중요하게 인식되어 왔다.


8. 검단산, 용마산, 남한산 연계 산행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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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산행 사진


▲ 검단산, 용마산 산행기에 이어 남한산을 소개합니다. 앞의 버스정류장은 엄미계곡삼거리의 은고개입구 버스정류장(38208)입니다.   


▲ 엄미리계곡삼거리의 회안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 은고개입구 버스정류장(38201)을 지나, 남한산 등산로 입구로 올라갑니다.


▲ 남한산 등산로 왼쪽으로는 '교차로 신문사' 건물이 있고


▲ 교차로 신문사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왼쪽 숲으로 진입하면 됩니다.  전봇대 바로 왼쪽으로 이정표(← 벌봉 4.4km)가 있네요. 


▲ 남한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입니다. 


▲ 장작산


▲ 산악회 리본들


▲ 학교림 - 학교법인 대림학원


▲ 엄미리계곡 갈림길(← 엄미리계곡 0.4km, ↓ 엄미리(은고개) 0.9km, 벌봉 3.4km ↑)


▲ 송전탑


▲ 검단산, 고추봉, 용마산




▲ 벤치 쉼터



▲ 346고지 이정표(↓ 은고개 1.7km, 벌봉 2.0km ↑)


▲ 엄미리계곡 갈림길 2(← 엄미리계곡 0.7km, ↓ 엄미리(은고개) 3.0km, 벌봉 1.3km ↑)



▲ 이정표(↓ 엄미리(은고개) 3.3km, 벌봉 1.0km ↑)


▲ 한봉갈림길 이정표(← 한봉 1.1km, ↓ 엄미리(은고개) 3.9km, 벌봉 0.4km →)


▲ 뒤돌아본 한봉갈림길




▲ 남한산 정상으로 올라갑니다.


▲ 블랙야크 명산 100 플러스 인증장소인 남한산(522.1m) 정상석


▲ 남한산에서 바라본 천마산, 서리산, 축령산, 적갑산, 철문봉, 예봉산, 율리봉, 검단산, 곡달산, 통방산, 고추봉(두리봉), 중미산, 유명산, 용문산, 용마산


▲ 남한산에서 바라본 유명산, 용문산, 용마산, 해협산



▲ 성곽붕괴 위험 표지판인데요. 성곽따라 쭉 걸어 올라가면 벌봉쪽으로 가게 됩니다만, 왼쪽 우회길로 내려갑니다.   


▲ 벌봉(蜂峰) 안내판입니다. 여기서 더이상 벌봉 쪽으로 진행하지 않고 내려갑니다. 벌봉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산행기를 참고하세요.


암문 밖에서 이 바위를 보면 벌처럼 생겼다하여 벌봉이라고 한다.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이 정기가 서려 있는 벌봉을 깨트려야 산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하여 이 바위를 깨트리고 산성을 굴복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벌봉은 해발 512.2m로 남한산성의 수어장애(497m)보다 높기 때문에 남한산성의 서쪽 내부와 동쪽 성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병자호란 당시 이지역을 청나라 군에 빼앗겨 적이 성 내부의 동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으며, 회포로 성안까지 포격할 수 있었다. 



▲ 벌봉앞 이정표(↓ 동장대 터 0.6km, 상사창동 2.0km ↑)인데요. 이정표가 가리키지 않는 서쪽 방향의 등산로를 통해 은고개갈림길로 내려갑니다. 


▲ 은고개갈림길 이정표(↙ 은고개 3.9km, 한봉 1.1km, ↓벌봉 0.4km, 망월사 0.7km ↑)


▲ 뒤돌아본 은고개갈림길입니다. 왼쪽은 벌봉, 오른쪽은 남한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 뒤돌아본 남한산 정상, 양자산, 장작산 감투봉, 노적산, 약사산, 무갑산, 약수산


▲ 한봉, 태화산, 두리봉, 망덕산, 검단산


▲ 성곽 위쪽은 동장대터이고 성곽 아래쪽으로 외성과 봉암성에 대한 안내판이 있습니다. 


남한산성의 외성(봉암성 · 한봉성)


외성은 숙종 12년(1686)에 축성하여 영조 20년(1744)대의 변천모습을 현재까지 간직한 구간으로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에서는 외성구간의 보존관리를 위하여 정비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체계적인 남한산성 정비를 통하여 민족자존의 역사 문화유적으로 거듭나고자 하오니 탐방객 여러분들의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봉암성(蜂巖城)


남한산성은 단순한 하나의 성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이다. 이 중에서 봉암성은 본성의 동쪽인 동장대 부근에서 북동쪽의 능선을 따라 벌봉 일대를 포괄하여 쌓은 외성이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내부의 동태를 훤히 조망할 수 있는 벌봉을 청군에 빼앗겨 곤란을 겪었는데, 이러한 약점을 보안하기 위해서 숙종 12년(1686)에 부윤 윤지선으로 하여금 성을 쌓게 하였고, 이 후에도 치성과 포대 등을 증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암성은 남한산성의 본성에 대하여 새로 쌓은 성이므로 '신성'이라고도 하며, 동쪽의 성이므로 '동성'이라고도 하였다. 성의 길이는 2,120m이다.


▲ 봉암성암문 이정표(← 위례둘레길(북문) 1.4km), ↓위례둘레길(벌봉) 0.7km)


▲ 남한산성 봉암성암문을 지나 북문방향으로 이동합니다. 이정표 옆에 봉암성 암문에 대한 안내판이 있습니다. 


제3암문(봉암성 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원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 주출입구로 다른 암문에 비해 매우 큰 편이나 이 암문은 문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홍예문이며, 규모 또한 폭이 2.36m, 높이가 2.65m에 달해 문루만 없을 뿐 성문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불암산, 수락산, 죽엽산, 천마산, 서리산, 축령산, 적갑산, 철문봉, 예봉산, 율리봉, 객산



▲ 제4암문(북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북문의 보조기능을 하도록 설치한 것으로 1km 정도 내려가면 하남시 상사창동에 도달하게 된다. 이 문은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홍예문이다. 


▲ 청량산(남한산성 수어장대)


▲ 헌절사갈림길(← 헌절사 0.5km, ↓ 동장대암문 0.6km, 전승문(북문) 0.7km ↑)


▲ 제1군포터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 건물이다. 중정남한지(1848) 기록에 의하면 남한산성 내에는 125개소의 군포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나 현재는 한군데도 남아있지 않다. 조사결과 이 군포지는 주변보다 약간 높은 평탄한 대지 위에 정면 3칸, 측면 1간의 주춧돌이 발굴되고, 다수의 와편과 조총탄환이 나왔다. 군포는 목조가구로 된 건물에 기와를 얹고 토석벽을 두른 건물로 보이며, 초소건물 기능에 맞게 정면은 트여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에서 온돌이나 난방용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 뒤돌아본 벌봉과 남한산


▲ 남한산성 북문


▲ 남한산성 북문


남한산성에는 동 · 서 · 남 · 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고고 하였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 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하고 말았다. 이를 '법화골 전투'라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정조 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성문을 개축하고 이름을 붙여 전승문(全勝門)이라 한 것은 그 때의 패전을 잊지 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산성 내에 동문과 남문, 수구문의 3개의 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북문은 인조2년(1624)에 신축된 성문이라고 생각된다. 


▲ 숭렬전갈림길(↓ 전승문(북문) 0.1km, 종로 0.3km ↑, 숭렬전 0.5km →)


▲ 남한산성로터리인데요. 산성역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바뀌었네요. 광주방향으로 가실 분들은 산성로터리 주차장쪽에서, 산성역 방향으로 가실분들은 산성로터리 남쪽에서 버스를 타시면 됩니다. 


▲ 산성로터리 남쪽으로 9번과 9-1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저는 휴일에만 운영하는 9-1번 버스를 타고 산성역에서 내렸습니다. 오늘은 블랙야크 명산 100 플러스로 선정된 검단산, 용마산, 남한산 연계 산행을 남한산성[종점] 버스정류장에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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