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여행] 어린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

1. 여행 일자 : 2019년 3월 9일 토요일


2. 여행지    : 쑥섬 애도 + 소록도


3. 소재지  


쑥섬 애도(전남 고흥군 봉래면 사양리), 소록도(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해안길 65)


4. 소록도 소개


 

한센병(나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유명하다. 사슴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산다고 이야기되는 곳! 고흥반도의 끝자락인 녹동항에서 1㎞가 채 안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불리운다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섬이지만 현재는 700여명의 환자들이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가꾸고 있다. 섬의 면적은 여의도의 1.5배인 15만평 정도에 불과하지만 깨끗한 자연환경과 해안절경, 역사적 기념물 등으로 인해 고흥군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고흥반도를 가로질러 녹동항 부둣가에 서면 600미터 전방에 작은 사슴처럼 아름다운 섬 소록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국도 27호선을 이용하여 소록대교를 거쳐 소록도 주차장까지 이동 가능하며 소록도 주차장에서 부터는 도보 관람만 가능하다.


5. 소록도 중앙공원 안내도 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1) 소록도 중앙공원 안내도




 2) 교통편 : 고흥 소록도병원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소록도주차장 길찾기 이용하세요.


6. 여행 사진


▲ 고흥 쑥섬 애도 여행을 마치고 버스로 약 55분 정도 걸려 소록도주차장(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129-8, 무료)에 도착합니다.


▲ 소록도주차장에 있는 소록도버스정류장입니다.


▲ 보행로를 이용해 중앙공원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 도양읍 소록도출장소와 소록우체국


▲ 보리피리 휴게소


▲ 뒤돌아본 소록도안내소와 소록도주차장의 모습


▲ 환자 자녀들과 한 달에 한 번 면회하던 수탄장


▲ 보행자데크로드(통행로)를 따라 국립소록도병원으로 걸어갑니다.



▲ 신사


1935년 5월 준공된 신사는 천조대신을 모셔놓은 곳이었다. 병사지대에도 같은 시기에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현 우촌복지관 뒤쪽에 분사를 건립하여 의무적으로 참배하게 하였다. 도한 부부동거를 허용하면서는 부부사이 입사하기 전에 신사참배를 강요하기도 하였다. [분사는 해방 당시 소실]


▲ 소록대교


도양읍에서 거금도를 잇는 공사로 제1구간 공사는 2008년 6월에 준공하였으나 제2구간 공사에 포함된 소록도 진입로가 완공되지 않아 개통을 미루다 소록도 진입로 공사를 우선 실시하여 2009년 3월 2일 소록대교를 개통하였다. 




▲ 오른쪽으로 보이는 다리가 소록대교입니다.


▲ 애한의 추모비(Monument of Ae-Han) - 2002. 8. 22


국립소록도병원은 1916년 일본 총독부 영에 의해 개원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원생들은 자치권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협상대표자 84명이 처참하게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 날이 바로 1945년 8월 22일이였습니다. 


참사 56년만인 지난 2001년 12월 8일에 화장, 매몰된 현장에 전원생 및 언론기관과 관심있는 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골발굴 작업을 실시하여 다수의 유골을 발굴하였습니다.


우리는 학상당했던 현장에 추모비를 세워 84명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음과 지구상에 있는 한센 가족에 대한 이해와 온전한 인권 회복을 소원하는 상징적인 기념비를 2002년 8월 22일에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소록도를 아끼시고 한센병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가지신 여러분께 다시는 이 세상에 이 같은 죄악이 저질러 지지 않기를 기도해 주시고 숙연한 마음으로 추모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국립소록도병원 본관


▲ 중앙공원으로 가기 전에, 야자매트길을 따라 한센병박물관(역사박물관)을 먼저 둘러봅니다.


▲ 국립소록도병원 한센병박물관입니다.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네요.




▲ 인류 역사는 질병 극복의 역사였고 한센병 또한 극복하였다.


▲ 나균


한센병은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침입한 나균에 의해 감염된다. 1873년 노르웨이의 한센(G.A.Hansen, 1841~1912)에 의해 발견된 나균은 마이코박테리움에 속하는 항산성 간균이다. 그 모양이 결핵균과 비슷하지만 감염되어 발병되는 경우는 결핵에 비해 매우 적고, 단지 나균에 대한 면역 기능이 약한 경우에서만 한센병이 발생한다. 나균은 양 끝이 둥글고 곧거나 구부러진 막대기형이며 크기는 0.3㎛×1.8㎛로 말초신경을 선택적으로 침범하는 유일한 세균으로 알려져 있다. 증식 속도가 매우 느려 인공배지에서 배양되지 않고, 쥐 또는 아르마딜로를 통해 배양된다. 


▲ 탈출기


아무 죄가 없어도 불문 곡직하고 가두어 놓고 왜 말까지 못하게 하고 어째서 밥도 안 주느냐


▲ 조선나예방령


1935년 제정된 [조선나예방령]은 한센병 환자의 강제 수용, 소독 기타 한센병 예방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였다. 이에 따라 전국의 전국의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 수용이 시작되었다. 도지사는 한센병 환자의 직업을 규제하고 요양소 입소를 책임졌으며, 경찰서장에게는 한센병 의심자에 대한 검진, 공공장소 출입금지, 물건 소독 및 폐기 등의 권한이 부여되었다. 요양소 원장은 환자들에게 견책, 30일 이내의 근신, 7일 이내 주부식의 1/2감식, 30일 이내 감금을 시킬 수 있었고, 상황이 중대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총독의 인가를 얻어 60일까지 감금을 연장할 수 있었다. 


▲ 단종과 낙태


일본은 한센병 확산 방지와 한센병 환자들의 평생격리를 위해 우생학을 빌미로 수용시설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단종과 낙태를 실시하였다. 일제강점기 한센인에 대한 단종수술은 소록도 갱생원과 여수 애양원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실시되었다. 소록도의 경우 남녀별거제를 유지해오다 1936년부터 단종을 조건으로 부부동거를 허용하였다. 단종과 낙태는 치료와는 무관하고 관리를 위한 편의적인 조치였다. 한정된 자원으로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치료해야 했던 소록도갱생원의 입장에서 임신과 출산은 또다른 관리비용을 의미했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었다. 


▲ 감금실과 검시실 - 1935년 건립


▲ 1945년 8월 15일 그러나 그들에게는 해방이 오지 않았다.


▲ 소록도 어장



▲ 소록도병원 본관 방향으로 돌아와서 중앙공원으로 올라갑니다.


▲ 선물의 집


▲ 검시실(檢屍室, Autopsy Room) - 건립년도 : 1935년


검시실 또는 해부실로 불리는 이 건물은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입구의 넓은 방은 사망환자의 검시를 위한 해부실(解部室)로 사용되었고 안쪽은 주로 검시 전의 사망환자 시신을 모시는 영안실(靈安室)로 사용되었다. 


모든 사망환자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곳에서 사망원인에 대한 해부절차를 마친 뒤 간단한 장례식을 거쳐 섬 내 화장장에서 화장 후 납골당에 유골로 안치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보고 소록도의 환자들에게 "3번 죽인다"라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첫 번째는 한센병 발병, 두 번째는 죽은 후 시신 해부, 세 번째는 장례 후 화장이다.


2004년 2월 6일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6호로 등록되었다. 


▲ 검시실 내부 


▲ 감금실(監禁室, Confinement Room) - 건립년도: 1935년


감금실은 1935년 제정된 조선나예방령 제6조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8조의 규정에 따라 설치된 일제강점기 인권탄압의 상징물이다. 붉은 벽돌과 육중한 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南)과 북(北) 두 건물이 회랑(回廊)으로 연결된 H자 형태로 방은 철창이 설치되어 있고 각 실의 한쪽 마루바닥을 들어올리고 용변을 볼 수 있는,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 


한센병환자들은 조선나예방법에 따라 직업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을 박탈당하였으며, 소록도에 수용된 환자들은 원장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변론의 기회조차 없이 이곳에 감금, 감식, 금식, 체벌 등의 징벌을 받아야했고, 강제노동이나 온갖 가학에도 굴종케 하고, 요양소 운영에 대한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소로 활용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부당한 처우와 박해에 항거하던 환자들이 무수히 이곳에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었으며, 출감 시에는 예외 없이 정관절제를 당하였다고 한다.


해방 이후 이곳은 격리실 또는 보호실로 불리었으며, 1973년 이후 방 사이의 벽을 헐어 방을 확장하고 난방 시설을 설치하여 신체부자유자의 가정사로 한동안 사용되기도 하였다. 


2004년 2월 6일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67호로 등록되었다. 



▲ 감금실 내부



▲ 소록도 중앙공원 안내판입니다.


이 공원은 1934년부터 환자 위안장으로 가꾸어 오던 산책지를 대유원지로 만들어 1936년 12월 1일 준공 되었다.  그 후 대유원지를 확장하여 대공원으로 만들자는 계획에 의해 1939년 12월 1일 공사에 착수하여 완도, 득량 등지로부터 운반된 기암괴석과 일본, 대만 등지에서 들여온 나무들을 조화롭게 배치하고, 공원 모퉁이에는 연못을 만들어 각종 물고기를 넣어 기르도록 하는 등 약 20,000㎡(약 6,000평)의 이 공원은 환자들의 피와 땀으로 4개월의 공사 끝에 1940년 4월 1일 완성되었다. 그리고 1962년, 중앙공원 옆에 폐허로 남아있는 벽돌가마터와 가마터 주변 약 4,000㎡(약 1,200평) 부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오엽송과 다미안 공적비



▲ 구라탑(求癩塔) - 한센병은 낫는다 ▼



▲ 세마공적비




▲ 소록도 벽돌공장 이야기 - 한센인의 땀과 눈물이 서려있는 가슴아픈 그 곳


▲ 예수상


▲ 스오원장 동상 - 건립년도 : 1940년


스오 마사스에 원장은 1933년 9월 1일부터 1942년 6월 20일까지 8년 9개월 동안 4대 원장으로 재직한 일본인으로 온갖 강압적인 수단으로 환자들을 동원하여 소록도 내의 공사를 추진하였다. 


또한, 환자들로부터 기금을 강제 징수하여 1940년 8월 20일 자신의 동상을 세웠는데 이날을 기념하여 매월 20일은 <보은감사일>로 제정하고 환자들로 하여금 참배하게 하였다.


스오 원장은 환자들에게 강제 노역, 가혹행위 등으로 환자들의 불만을 사던 중 1942년 6월 20일 감사일 행사에서 환자 이춘상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춘상은 당시 일제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으며, 원장 동상은 1943년 태평양 전쟁 물자로 징발 철거되었다. 스오원장 동상의 자체 높이는 3.3m 였으며, 단을 포함한 전체 높이는 9.6m이다. 



▲ 소록도자료관


▲ 고흥 쑥섬 애도에 이어 소록도의 국립소록도병원과 한센병박물관, 중앙공원을 돌아보았습니다. 



댓글(8)

  • 2019.03.29 07:49 신고

    젊었을때 녹동항에 갓었는데 여기 가는걸 참 말리더군요.
    그래서 못 가 봤습니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덕분에 소록도 이모저모 잘 봅니다.^^

  • 2019.03.29 07:57 신고

    소록도에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 가고 있네요.
    덕분에 포스팅으로
    하나하나 잘 살펴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여유로운 금요일 보내세요^^

  • 2019.03.29 10:02 신고

    소록도...아직 한 번도 못 가 봤는데....

    가보고 싶네요^^

  • 2019.03.29 10:32 신고

    국립소록도병원 원생들이 해방을 맞아
    자치권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협상대표자 84명이 학살을 당한 일이 있었군요..
    가슴아픈 일입니다. ㅜㅜ
    저도 기회가 되면 소록도에 가보고 싶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2019.03.29 14:28 신고

    날씨가 너무 포근한 날씨네요~
    좋은 하루 보내시고 포스팅 잘 보고 가네요~

  • 2019.03.29 19:50 신고

    데크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잠시나마 걱정거릴 잊어버리고 그냥 자연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 2019.03.30 04:45 신고

    어린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에 다녀오셨었군요? 나중에라도 고흥 여행을 가게되면 참고해야겠습니다 ^^

  • 2019.03.30 04:59 신고

    날씨가 요즘 정말 포근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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