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여행] 달나라 궁전을 닮은 광한루

    1. 여행 일자 : 2019년 3월 12일 화요일


    2. 여행지    : 월간 산 100대 명산 만행산 + 광한루원 


    3. 소재지  


    만행산(전북 남원시 보절면 · 산동면) + 광한루원(전북 남원시 요천로 1447)


    4. 남원 광한루원 소개


      

    광한루원은 우리나라 4대 누각의 하나인 광한루와 더불어 하늘의 옥황상제가 살던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건설한 인간이 신선이 되고픈 이상향으로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하여 얻어진 이름이다. 시인묵객들은 궁궐에는 경회루가 있고, 지방에는 광한루와 더불어 평양의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이라 불려지는데 그 중 으뜸은 광한루라 했다. 


    경회루는 궁궐의 건물로 황실에서 지은 곳이며 지방의 누각 중 평양의 부벽루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가볼 수 없는 곳이고, 진주 촉석루는 안타깝게도 6ㆍ25 때 불에 타 지금의 건물은 1960년 5월경 복원한 것으로 복원 역사가 짧으며, 밀양의 영남루 역시 1844년에 지어 복원 역사가 길지 않다. 그러나 광한루는 1419년에 지어 1597년 정유재란 때 불탔으나 1626년에 복원한 건물로 복원 역사 면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5. 남원 광한루원 다음지도 지도및 교통편


    1) 남한 광한루원 다음 지도


     

    2) 교통편 : 남원 광한루원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다음지도 광한루원 광장주차장 길찾기를 이용하세요.


    6. 여행 사진


    ▲ 월간 산 100대 명산인 만행산 산행을 마치고 광한루원 광장주차장(전북 남원시 천거동 187-1)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 광장주차장 북쪽 방향으로는 상가와 서문주차장이 있고 동쪽 방향으로는 광한루원 정문출입구가 있습니다. 


    ▲ 정문출입구입니다. 정문출입구 왼쪽에는 매표소가 있는데 어른 3,000원(단체 2,500원)이고 경로(만 65세 이상)와 미취학아동 등은 무료입니다.


    ▲ 정문에 쓰여진 청허부(淸虛府)


    청허부는 광한루원의 정문이다. 이 건물은 1971년 최봉채 남원군수가 경역을 확장하면서 신축한 건물로 건평 약 11.83평에 맞배지붕 솟을 삼문형식으로 지어졌는데 광한루원이 천체우주를 지상에 건설한 작은 우주로서 하늘의 옥황상제가 사는 달나라 옥경인 광한 청허부를 상징하므로 옥경을 들어가는 문이라는 의미로 청허부라 했다.


    ▲ 정문 안쪽의 관광안내소(Tourist Information)



    ▲ 성춘향과 이도령 포토존


    ▲ 완월정(玩月亭)


    옛날 옥황상제가 계신 옥경(玉京)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해마다 이 누각 수중무대에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속 축제인 춘향제가 열리고 있다.


    ▲ 영주각(瀛洲閣)


    용성지 의 누정편에 보면, '전라관찰사 정철이 요천에서 끌어온 물이 누앞을 좁다랗게 흐르고 있던 개울을 넓혀서 평호로 하고 은하수를 상징케 했으며 주위를 석축으로 하고 호중에 세 개의 섬을 만들어 하나에는 녹죽을 심고, 하나에는 백일홍을 심었으며, 다른 하나에는 연정을 세우고 호중에 여러 종류의 꽃을 가득 심었다'고 되어있다" .이 문헌에 따르면 영주각은 관찰사 정철이 주도한 광한루 확장 공사시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이때는 한주섬(漢州)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현재의 영주각은 정조 19년(1795)에 부사 이만길이 재건하고 영주각이란 편액을 손수 써서 걸었다고<증보 남원지>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1963년부터 경내가 확장, 정화되면서 1965년에 36회 춘향제를 준비하면서 지금과 같은 단청이 되었다.


    영주각은 단층 누각 형태로 기단부는 화강석 장대석을 정밀 가공하지 않고 설치했으나 부분적으로 자연미도 보인다. 1층 하부의 석주는 화강석으로 일정하지 않은 방형으로 가공해서 초석받침위에 세웠고 초석위로 장귀틀과 동귀틀을 끼워 우물마루를 설치하였고 초석 위에 흠을 파서 귀틀장선을 끼웠다.


    ▲ 옥류천(玉流泉)


    ▲ 봉래섬과 광한루


    ▲ 춘향사당(春香祠堂)


    열녀 춘향의 굳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사당의 대문을 단심문이라 하는데, 이는 「임 향한 일편단심」 이란 의미이다. 사당의 중앙에는 「열녀춘향사」 라는 현판이 있고 사당 안에는 춘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이 사당에서 축원을 빌면 백년가약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많은 참배객이 찾고 있다. 


    ▲ 춘향사당의 '열녀춘향사(烈女春香祠)' 현판


    ▲ 춘향사당의 춘향영정(春香影幀)


    최초 영정은 진주사람 강주수가 그려 기증하고 1939년 가을 이당 김은호가 그린 영정을 나란히 봉안하였으나 6 · 25 중에 훼손되어 1961년 기증받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이 봉안되고 있다.


    ▲ 광한루로 가는 길


    ▲ 광한루 북쪽의 비석군(碑石群)


    ▲ 광한루의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라는 편액


    ▲ 북문(北門)


    ▲ 잉어먹이 판매소


    ▲ 광한루원 잉어의 유래


    옛날에는 누각(樓閣) 앞에 좁다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전라관찰사 정철이 은하수를 상징하는 넓은 연못을 만들었다. 이곳 연못에는 광한루원을 사라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증으로 3,000여 마리의 토종 잉어와 비단 잉어가 살고 있다. 잉어는 수명이 70~80년 정도이며, 이곳에는 사람 얼굴 모습을 닮은 인명어가 10여 마리 살고 있어 이를 찾아보는 즐거움도 있다. 


    ▲ 광한루 앞의 자라돌(오석, 鼇石)


    ▲ 삼신산 중 가운데 봉래산(봉래섬)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을 섬으로 만들어 조성하였다. 왼쪽섬이 영주산(瀛洲山), 가운데는 봉래산(蓬來山), 오른쪽 오작교 옆에 있는 섬이 방장산(方丈山)이다. 섬과 섬 사이에는 아담한 구름다리가 있고, 영주산에는 영주각이, 방장산에는 방장정이 소담하게 지어져 있다. 우리나라의 한라산은 영주산, 금강산은 봉래산, 지리산은 방장산에 해당한다. 


    ▲ 봉래섬에서 방장정을 이어주는 아담한 구름다리


    ▲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광한루(廣寒樓) - 보물 제 281호 


    이 건물은 조선 시대 이름 난 황희 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 세종 26년(1444) 정인지가 건물이 전설 속의 달나라 궁전인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를 닮았다 하여 광한루(光寒樓)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후 선조 15년(1582)에는 정철이 건물 앞에 다리를 만들고 그 위를 가로질러 오작교라는 반월형 교각의 다리를 놓았다. 지금의 건물은 정유재란(1597)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은 것이다. 건물 북쪽 중앙의 층계는 점점 기우는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고종 때 만들었다. 


    ▲ 방장정(方丈亭)


    방장정은 건축양식보다는 소박한 멋을 살린 아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방장은 전라감사 송강 정철이 삼신도를 조성함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방장정이 세워진 시기는 1963년부터 시작된 광한루원 확장 정화계획에 따라 당시 남원군수 이화익의 창안으로 도편수 이한봉이 건축하였다. 그 모습을 보면 기단부는 형성되어 있지 않고 원형의 가공초석위에 복석형태의 화강석을 얹고 위에 기둥과 귀틀을 세워 장마루를 깔았다. 또한 누난간은 설치되지 않고 다소 높은 듯한 기둥위에 계두, 양서, 수서 등을 걸치고 주심도리를 높게 설치하였으나 칸사이가 좁은 관계로 화반은 설치 하지 않은 듯하다. 천장은 육각형의 소란대를 걸쳐 우물반자를 설치하였고 연목과 부연을 둔 겹처마를 형성하고 있으며 단청은 기둥머리부터 금모로 단청을 하였다.


    ▲ 방장정에서 바라본 오작교


    ▲ 방장정에서 바라본 광한루


    ▲ 오작교(烏鵲橋)


    하늘에 사는 옥황상제의 딸 베짜는 직녀와 미천한 소몰이 견우가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하여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이들의 게으름으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격리되어 1년에 한번 칠월칠석날 다리도 없는 은하수에서 만나도록 하였다.


    둘의 만남이 너무 애닳아 이날에는 지상의 까치와 까마귀가 모두 은하수로 올라가 다리를 만들어 둘을 만나게 했는데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를 밟고 만나는 견우와 직녀의 눈물이 비를 만들었다. 칠월칠석날이 되면 비가 오고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며 까치의 머리가 흰 것은 오작교가 된 까치의 머리를 견우와 직녀가 밟아 벗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같은 하늘나라 견우과 직녀의 사랑은 신분의 벽을 뛰어 넘은 이도령, 성춘향의 사랑과 흡사하다. 이러한 전설을 지상에 펼쳐놓은 것이 광한루원의 호수와 오작교다. 그래서 오작교는 까마귀 오(烏), 까치(鵲), 다리(橋)자를 쓴다.


    ▲ 오작교에서 바라본 광한루


    ▲ 광한루와 나룻배


    ▲ 서문(西門)


    ▲ 여기에 웬 토끼?


    본래 광한루원의 광한(廣寒)은 달나라(月宮)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달나라인 이 곳에 토끼와 계수나무가 있는 것은 당연하겠죠. 토끼와 함께 방아도 찧고 건강도 챙기고 추억도 만드시길 바랍니다.


    ▲ 완월정


    ▲ 월매집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길에 올랐을 때 그네를 뛰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해, 춘향이 살고 있는 월매집 부용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집으로 춘향 어머니의 이름을 따라 '월매집'이라고 하였다.




    ▲ 사랑의 동전 던지기


    복항아리 안에 동전이 들어가면 영원한 사랑의 언약을 맹세하는 사랑가 음악이 나온다네요.


    ▲ 춘향과 이도령이 백년가약을 맺은 장소 부용당


    ▲ 월매방


    이도령이 한양으로 떠나기 전 날 밤에 춘향이의 치마에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며 글을 쓰고 있는 장면


    ▲ 방자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향단에게 장난치고 있는 모습


    ▲  그네뛰기



    ▲ 춘향관(春香館)


    고전 소설 춘향을 디지털 병풍 속 이미지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춘향제 역사를 담은 포스터와 사진, 춘향전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뮤지컬, 오페라, 창극 등, 춘향 관련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춘향관의 펼쳐보는 춘향전의 장면들



    ▲ 춘향관의 체험실/영상실 ▼



    ▲ 광장주차장으로 돌아오면서 바라본 광한루 맞은편의 춘양테마파크 가는 길


    ▲ 광한루원 광장주차장에서 월간산 100대 명산인 만행산 산행과 광한루원 관광을 모두 마칩니다. 광한루원은 약 1시간 정도 꼼꼼히 관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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