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길 3코스 : 광희문 ~ 남산 ~ 숭례문
- 일반트레킹
- 2017. 2. 13.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3번 출구(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7가)에서 한양도성길 스탬프투어를 시작합니다.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3번 출구에서 바라본 광희문
▲▼ 광희문(光;熙門)
한양도성의 동남쪽 문으로, 시구문 또는 수구문이라고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 일부 무너지고 1960년에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본래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이곳에 고쳐 지었다.
▲광희문화마을 달빛로드 탐방 안내도
▲ 한양도성 묵멱산(남산)지역 ↑700m
▲ 흥인지문 지역 39
▲ 남산 지역 44
▲ 남산 지역 48
▲ 남산공원(좌)과 국립극장(우)
▲ 남산공원
▲ 국립극장
▲ 남산공원 안내도
▲▼ 성벽을 따라 올라갑니다.
▲▼ 남산타워
▲ 남산에서 바라본 청계산, 관악산
▲ 남산에서 바라본 청계산, 관악산, 삼성산
▲ 서울의 10대 한류명소 <별에서 온 그대> 촬영지
▲ 남산공원의 팔각정
▲▼ 목면산(남산) 봉수대 터
목멱산 봉수대 터는 서울에 있다고 하여 경봉수라고도 불렸었는데 전국의 봉수가 집결되었던 곳이다. 봉수제도는 신호체계에 따라 연기나 불을 피워서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까지 전달하여 알리며,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는 일종의 통신수단이다. 멀리 바라보기 좋은 높은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설치하여 불을 피워서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봉수는 남산에서 집결하였고, 남산 봉수대는 제1봉수대부터 제5봉수대까지 다섯 곳의 봉수대가 있었다. 제1봉수대는 함경도-강원도-양주 아차산, 제2봉수대는 경상도-충청도-광주 천림산, 제3봉수대는 평안도 강계-황해도-한성 무악 동봉, 제4봉수대는 평안도 의주-황해도 해안-한성 무악 서봉, 제5봉수대는 전라도-충청도-양천 개화산에 이르는 봉수를 받았다. 이곳은 1933년에 김정호의 <청구도> 등의 관련 자료를 참고해서 남산의 다섯 개 봉수대 중 하나를 복원한 것이다.
▲ 남산봉수대 전통문화 공연
▲▼ 잠두봉포토아일랜드(북측지점)
▲ 잠두봉포토아일랜드(북측지점)에서 바라본 백범광장, 안산, 인왕산
▲ 잠두봉포토아일랜드(북측지점)에서 바라본 인왕산, 북악산(백악산), 북한산, 도봉산
▲ 잠두봉포토아일랜드(북측지점)에서 바라본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 수선전도와 서울한양도성 전도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 순조 24년(1824)에 김정호가 제작하였다고 하는 서울 지도. 가로는 67.5cm이고 세로는 82.5cm이다.
▲ 안중근 상
▲ 호현당
▲ 백범김구선생 상
▲▼ 성재 이시영선생 상
▲▼ 숭례문(국보 제 1호)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한양도성의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다. 그 후 세종 30년(1448), 성종 10년(1479), 고종 연간에 큰 수리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는 매일 밤 인정(10시 무렵)에 문을 닫았다가 다음 날 아침 파루(4시 무렵)에 문을 열었는데, 이때 문루에 종을 달아 그 시간을 알렸다. 장마나 가뭄이 심할 때는 임금이 몸소 기청제와 기우제를 지내는 등 숭례문에서는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거행되곤 하였다.
석축 위에 세워진 중층 누각은 장식이 간결하고 내부구조가 견실하여 조선 초기의 건축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에는 좌우 성곽이 철거되었으며, 한국전쟁 때 피해를 입어 1961년부터 1963년 사이에 해체보수를 하였다. 2008년 2월 10일 방화 사건으로 크게 훼손되어 2013년 4월까지 복구하였으며, 이때 좌우 성곽도 함께 복원하였다.
▲ 숭례문 초소 우측의 스탬프 찍는 곳
▲ 숭례문과 숭례문 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