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향기 머금은 운길산의 수종사

    1. 여행 일시 :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2. 여행지    : 대한불교조계종 수종사(水鐘寺)


    3.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1060번지


    4. 수종사 소개


    조선시대 문인인 정약용이 지은 「유수종사기」 에 수종사는 신라 때 지은 오래된 사찰이라 전하고있지만 근거 자료가 없어서 자세하지 않다.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산 위에서 솟아나는 이상한 구름 기운을 보고 가보았더니 우물 속에 동종이 있어서 그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이름 붙였다고도 하며, 1459년(세조 4)에 금강산을 다녀오던 길에 이수두에서 유숙하던 세조가 운길산에서 종소리를 듣고 깨어나 주변을 찾아보니 18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바위굴에서 물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어서 이름을 수종사라하고 중창하였다고 한다.


    수종사에는 1439년(세종 21)에 조성한 태종의 딸 정혜옹주(?~1424)의 부도와 1493년(성종 24)에 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씨(?~1479) 성종의 후궁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팔각오층석탑이 있다. 팔각오층석탑에서는 1628년(인조 6)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1584~1632)가 발원하여 조성한 불보상도 발견되었다. 1890년(고종 27)에는 주지로 있던 풍계혜일이 고종에게 8천 냥을 하사받아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이듬해에 다시 4천 냥과 비단을 하사받아 불상 4존을 개금하고 탱화 3축을 새로 봉안하였다. 




    5. 여행 사진


    ▲ 남양산 4산(예빈산, 예봉산, 적갑삽, 운길산) 종주 하산 길에 수종사를 잠시 들렸습니다. 수종사는 수종사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 오른편에 보면 수종사삼거리(구.운길샘터 ) 이정표가 보입니다.


    ▲ 수종사 올라가는 계단이 아주 가파릅니다.


    ▲ 계단을 오르면 오른편으로 다실인 삼헌정, 왼편으로는 선불장이 보입니다.


    ▲ 앞에 보이는 건물은 선불장이고 오른편의 건물은 대웅보전입니다.


    ▲ 수종사 약사여래불 조성도


    ▲ 선불장(選佛場)



    ▲▼ 수종사 앞마당에 서면 두물머리와 팔당호의 수려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 수종사부도와 팔각오층석탑


    수종사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제 157호) : 왕명에 의하여 세워진 수종사에 남아 있는 팔각원단형 부도이다. 팔각원당형 부도는 기단, 탑신, 지붕이 모두 8각형이고 단층인 부도로 지붕과 기왓골 등 세부는 목조건물의 양식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지붕돌 낙수면에 '태종태후정의옹주사리조탑시주ΟΟ유씨금성대군정통사년기미십월일입' 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세종 21년(1439) 왕실의 명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남양주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보물 제 1808호)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경기도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에 전해오는 조선시대 석탑이다. 수종사는 조선 세조 5년(1459)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석탑은 원래 사찰의 동쪽 능선에 있었으나 후대에 대웅전 옆으로 옮겨졌다. 1957년 해체 수리 중에 1층 탑신과 옥개석 등에서 19구의 불상과 1970년 이전 도중에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각각 발견되었는데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 성종 23년(1493)에 건립되었고 인조 6년(1628)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다.


    석탑의 형태는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으면서 규모가 작아지고 장식적으로 변모한 조선 초기 석탑의 형태로 지대석 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팔각형 기단석을 올렸다. 기단부는 아래로 향한 연꽃과 위로 향한 16엽의 연꽃모양을 각각 새겼고 5층으로 된 탑신 역시 팔각형으로 옥개석(지붕돌) 첨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기둥, 옥개받침 등이 특징적이다. 정상부에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을 2단으로 조성하였고 그 위에 연봉우리 모양의 보주를 올렸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현재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으로 건립 연대가 확실하고 비교적 작은 규모임에도 안정적인 비율과 지대석에서 상륜부까지의 섬세한 조각으로 인해 역사적, 학술적 가치는 물론 높은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 수종사 대웅보전(大雄寶殿)



    ▲ 수종사 경학원(經學院)


    ▲ 수종사 범종각과 은행나무


    ▲범종각(梵鐘閣)


    ▲ 세조를 감동시킨 종소리(은행나무)


    부스럼을 앓던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깨끗이 낫고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길이었다. 양수리까지오니 밤이 이슥해 쉬어 가는데 운길산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신하가 알아보니 천년 고찰 터 암굴 속에 십팔 나한상이 앉아 있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이라 했다. 세조는 이곳에 절을 복원해 수종사라 부르고 이 은행나무(500년)를 하사했다고 한다.


    ▲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 수종사 사적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이곳 운길산 수종사는 멀리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옛 가람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상서로운 기운을 좇아 이곳에 이르러 구리종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을 통해 고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1439(세종 21년)에 이르러 세종의 여섯 째 아들 금성대군이 정의옹주의 부도를 세우고 금제 9층탑수정사리함(사리 14과)을 청자 항아리에 담아 부도 안에 모셨다. 1458(세조 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 아닌 바위굴 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세조는 굴속에서 18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방백에 중창을 명하였다. 도량은 이러한 연유에 의해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 은행나무 두 그루를 삼고 다음해인 1459년 수종사탑을 건립하였다. 

    1493(성종24년) 후궁 명빈 김씨가 목제불감과 설법도가 그려진 금동불감에 금동불보살상 등 14좌를 봉안하고 후궁들의 발원문도 함께 넣어 탑안에 모셨다. 

    1628(인조 6년) 정의대왕대비가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시주하였다.

    1890년 주지 풍계혜일은 고종황제로부터 두차례 시주를 받아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이때 불상에 빛이 발하엿다. 

    1939년 일조 태욱화상이 중수하였으나 625전쟁 때 불에 탔다. 

    1974년 혜광화상이 대웅보전을 1981년 규원당 대웅화상이 약사전과 종각을 지었다.

    1999년 부터 금해당 동산은 응진전, 선불장, 삼정헌, 경학원, 미륵불, 일주문 등을 세워 사격을 완성하며 서거정이 천하제일의 명당이라 찬탄했던 절의 풍광을 다시 복원하였다. 

    수종사는 조선후기 초의 다산 추사를 비롯한 다선묵객들이 당색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함께 모여 담론을 했던 사회변혁의 꿈이 깃든 곳이다. 후인을 위해 수종사와 함께했던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적기를 적는다.

    불기 2551년 동산 짓고 선주석 쓰다.






    ▲ 응진전(應眞殿)과 산령각(山靈閣)


    ▲ 수종사의 다실인 삼정헌(三鼎軒)


    ▲ 불이문(不二門)


    ▲ 수종사 미륵불


    ▲ 남양주 운길사 수종사 일원 안내도


    ▲ 운길산 수종사 일주문


    ▲ 수종사에서 운길산역까지의 거리는 약 2.6km 정도이고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걸어서 약 40분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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