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행] 조선의 으뜸 궁궐 경복궁

    1. 여행 일자 : 2018년 11월 29일 목요일


    2. 여행지    : 경복궁(景福宮)


    3.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4. 서울 경복궁 소개


      

    조선 왕조 개국 3년인 1395년에 완공된 궁궐은 390여 칸으로 한양의 중심축에 자리했다. 개국공신 정도전은 태조로부터 첫 번째 궁궐의 이름을 지으라는 명을 받았고, 고심 끝에 '새 왕조가 큰 복을 누려 번영할 것'이라는 의미로 경복궁(景福宮)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보 제223호인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법전으로 각종 즉위식을 거행했던 왕실의 행사장이었다. 근정전의 옆에 위치한 경회루는 1만원권 구화폐 실릴 만큼 대표적인 건축물로 사랑받아 왔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에 훼손을 겪었다가 2010년에 완전히 복원된 광화문, 고종과 명성황후가 머물던 건청궁, 경복궁의 후원인 향원정 등이 자리하고 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 최고의 궁궐인 만큼 생각보다 넓다. 동선은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다만 좀 더 자세한 관람을 원한다면 우리궁궐지킴이 해설사들의 설명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좋다.


    5. 경복궁 관람코스 안내




    6. 서울 경복궁 다음지도 및 교통편(찾아가는 길)



    서울 경복궁의 교통편에 대한 정보는 서울 경복궁 다음지도 길찾기문화재청 경복궁 오시는 길을 이용하세요.


    7. 경복궁 관람시간 및 요금


     1) 관람시간


     1월 ~ 2월

     3월 ~ 5월

     6월 ~ 8월

     9월 ~ 10월

     11월 ~ 12월

     매주 화요일은 휴궁

     09:00 ~ 17:00

     09:00 ~ 18:00

     09:00 ~ 18:30

     09:00 ~ 18:00

     09:00 ~ 17:00

      

     2) 요금


      개인(내국인)

     단체(내국인, 10인 이상)

     만 6세 이하 어린이, 만 7세~24세 이하 청소년, 

    만 65세이상 이상 국민

     3,000원

     2,400원

     무료


    8. 여행 사진


    ▲ 수도권 전철 3호선 경복궁역 5번 출구(서울 종로구 세종로 1-57)에서 내려서 경복궁 관람을 시작합니다.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朝鮮 1392-1897) 왕실 및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1910) 황실과 관련된 유물을 보존, 전시하고,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상설전시뿐만 아니라, 왕실 문화를 한층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특별 기획전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수많은 교육과 문화행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 경복궁역 5번 출구 옆의 국립고궁박물관


    ▲ 국립고궁박물관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 산은 북악산(백악산)입니다. 청와대 뒷산이기도 하죠.


    ▲ 용성문(用成門)

    1.광화문과 궁궐담장

    경복궁 바깥을 두른 담장의 길이는 2,404m에 달하고, 평균 높이는 5m, 두께는 2m 정도이다. 담장의 사방에는 4대문을 만들고 1426년(세종 8)에 건춘문(建春門-동, 광화문(光化門-남), 영추문(迎秋門-서), 신무문(神武門-북)이라 이름 붙였다. 이는 각각 봄-여름-가을-겨울과 나무-불-쇠-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가운데 자리한 근정전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어 전통적인 오행설에 유래한 명칭이다.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은 3개의 홍예문이 나 있는 높은 석축 위에 중층의 문루가 높이 앉아 있는 장려한 건물이다. 전면 담장의 두 끝 모퉁이에는 망루인 동십자각과 서십자각을 세워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을 갖추었다. 서십자각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고, 동십자각은 도로 확장으로 인해 담장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궐 밖의 길 한가운데 홀로 서 있게 되었다.  


    ▲ 광화문(光化門)


    ▲ 흥례문(興禮門)


    ▲ 협생문(協生門)과 표 파는 곳


    ▲ 유화문과 근정문


    ▲ 유화문(維和門)

    2.근정전 일원


    근정전은 경복궁의 으뜸 전각인 법전(法殿, 正殿)으로, 그 이름은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궐 안에서 가장 장엄한 중심 건물로 왕권을 상징하며, 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朝會),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적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근정전은 2단의 월대(궁궐전각 밑에 놓인 섬돌) 위에 다시 낮은 기단을 만들고 2층 건물을 올렸는데, 안에서 보면 층 구분이 없는 통층이다. 회랑으로 둘러싸고 평평한 돌을 깐 근정전 앞마당이 바로 조정(朝庭)이다. 남쪽 회랑에 근정문(勤政門)을 두었고 그 바깥에 다시외행각을 둘러 또 하나의 마당을 조성했으며, 외행각 남쪽에는 흥례문(興禮門)을 내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으면서 근정문 바깥 영역을 철저히 파괴했으나, 2001년에 흥례문과 외행각, 영제교 등을 복원하여 제 모습을 되찾았다. 근정전은 국보 제223호, 근정문 치 행각은 보물 제 1812호로 지정되어 있다. 


    ▲ 근정문(勤政門)


    ▲ 근정문에서 바라본 근정전(勤政殿)



    ▲ 근정전(勤政殿) ▼




    ▲ 근정전의 왕이 앉았던 용상 ▼



    ▲ 근정전에서 바라본 근정문과 광화문


    동정문, 건춘문 등


    ▲ 동정문


    ▲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 경복궁관리소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 생활문화의 역사적 기반이 되는 한민족생활문화사관을 비롯하여, 한국인의 일상(日常), 한국인의 일생(一生) 등 3개의 상설전시실과 야외전시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연 4회 이상의 기획ㆍ특별전을 개최하여 한민족 생활문화의 폭넓은 이해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 국립민속박물관


    ▲ 화개 이발관


    ▲ 고바우 만화방


    ▲ 좋은 소리사


    ▲ 어린이 박물관

    9.향원정과 건청궁



    고종 내외가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정치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1873년 건청궁(乾淸宮)을 궁궐 안 북쪽에 별도로 조성했다. 침전인 곤녕합, 옥호루와 왕의 사랑채인 장안당 등으로 구성되었다. 곤녕합은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시해된 역사적 비극의 장소다. 후궁영역의 뒤 정원으로 만들어진 연못 안에는 원래 취로정(翠露亭)이 있었는데 건청궁을 창건하면서 그 자리에 향원정을 새로 지어 건청궁의 앞 정원이 되었다. 부정형의 연못에 둥근 섬을 만들고 육각정자를 세웠으며, 원래는 북쪽으로 다리를 놓아 건청궁과 연결했으나 현재는 남쪽으로 놓여있다.  


    ▲ 향원정


    일제 강점기 후 변형되어 원래 자리가 아닌 곳에 설치된 경복궁 향원지의 나무다리 취향교(醉香橋)를 원래 자리에 복원하고, 오랜 세월로 인해 낡고 기울어진 향원정(香遠亭)을 보수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어서 밖에서 유리문을 통해 찍은 사진입니다. 사업기간이 2019. 12. 30일까지로 제대로 관람을 하려면 아직도 1년은 더 기다려야 하겠네요. 


    ▲ 건청궁


    경복궁 중건사업이 끝난 이듬해인 1873년, 고종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鹿山)과 향원정(香遠亭) 사이에 건청궁을 건립케 하고 명성황후와 기거하였다. 건청궁의 건축양식은 궁궐의 침전양식과는 달리 양반가옥 살림집을 응용하여 사랑채(장안당), 안채(곤녕합), 부속건물(복수당), 행각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규모는 양반가옥 상한선인 99칸의 2.5배 되는 250칸이다. 건청궁이 건립된진 3년이 지난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생활공간을 옮겼으며, 1885년에 다시 건청궁으로 돌아와 1896년 아관파천 때 러시아공관으로 피신할 때까지 10여 년간 줄곧 이곳에서 지냈다. 한편 건청궁은 1887년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발전기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며,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곤녕합에서 일본인 자객에게 시해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들어와 경복궁의 건물들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건청궁은 1909년 철거되어 이 자리에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지어졌으며, 한동안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에 철거되었다. 문화재청은 건청궁을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여 2007년 10월부터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 초양문(初陽門)


     

    ▲ 곤녕합(명성황후 시해장소) ▼


    곤녕합은 명성황후가 1884년 부터 1895년까지 침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서 1895년(고종 32)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일본인 자객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되어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이다. 곤녕(坤寧)은 도덕경에 "하늘은 하나로 맑고(淸), 땅은 하나로 평안하다(寧)" 라고 한 것에서 건청곤령(乾淸坤寧)이란 사자성어가 나왔따. 임금은 맑은 하늘같아야 세상의 질서가 서고, 왕후는 지내기 편안한 땅처럼 만물을 길러야 한다는 뜻이다. 7년간 시의(侍醫)로서 왕비를 모신 미국인 엘러스 벙커(Annie Eellers Bunkers)여사는 곤녕합의 주인인 명성황후에 대해 성품이 부드럽고 친절하며 조선여성으로서의 미를 갖춘 미인이라고 회상하였다. 기억력이 비상하여 어려운 책도 두어 번 읽으면 다 기억했으며, 학식이 많고 판단력이 뛰어나 자신이 외교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에 도움을 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적었다. 1895년 청일전쟁이 끝난 뒤, 일본군은 한반도에 잔류하려고 했지만 고종이 완전 철수를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이에 일본 군부는 왕실을 압박하는 비상사태를 만들기 위해 10월 8일 새벽에 민간인 복장을 한 민완 장교들이 장사패를 끌고 건청궁에 난입하여 왕비를 시해하였다. 폭도들은 왕비의 시신을 건청궁 동쪽 언덕 녹산 자락에서 태우고 남은 뼈를 그 자리에 묻었다. 이후 왕실에서 이를 거두어 경운군(현 덕수궁)에 빈전을 마련하고 국장을 지냈다. 



    ▲ 녹금당(綠琴堂)


    ▲ 관문각지(觀文閣址)


    이곳은 고종 10년(1873)에 건립된 관문각 터이다. 건청궁 내 장안당 뒤쪽에 위치한 관문각은 당초에 관문당(觀文堂)으로 불렀으나, 고종 12년(1875)에 어진을 봉안하고 관문각으로 고쳤다. 고종 28년(1891)에 러시아 건축가 세레친 사바틴(A. S. Sabatine)과 친군영이 공사를 맡아 2층(일부 3층)의 서양식 건물로 개축되었다. 최초의 양관(洋館)으로 불리기도 한 이 건물은 국왕의 서재 겸 집무실인 집옥재와 대조를 이뤘다. 집옥재와 관문각 사이에는 서양식 기계추 시계탑도 세워졌다. 사바틴이 관문각에 기거하다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하여 고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관문각이 헐린 시기는 광무 5년(1901)이후로 보인다. 


    ▲ 왕의 처소인 장안당(長安堂)


    장고


    ▲ 장고


    장고는 궁중 연회나 제례에 쓰이는 자을 보관하던 곳이다. 복권도형에는 함화당과 집경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장고가 있는데 이곳은 서쪽 장고로서 태우너전과 경회루 사이에 위치한다. 큰 잔치가 있을 때는 임시주방인 숙청소가 장고 가까이에 설치되었으며 장교마마가 장독등을 관리하였다. 현재 장고의 모습은 발굴조사 결과에 따라 2005년 복원한 것으로 경사지를 활용한 계단식 장독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된 독은 2007년에 전국에서 수집한 것으로 우리날 독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8.함화당과 집경당


    후궁과 궁녀를 위한 공간


    교태전 북쪽인 아미산 너머에는 흥복전 일원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 일대는 후궁과 궁녀들을 위한 영역이다. 침전으로 쓰였던 수많은 전각과 복잡한 행각들은 거의 사라지고, 현재는 함화당과 집경당만이 남아 있다. 이나마도 일제가 동궁터에 지은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운영하면서 사무실로 쓰기 위해 헐지 않아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은 사라진 흥복전은 빈궁전(嬪宮展)으로서 중궁전인 교태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으되 격을 한 단계 낮추어 지었다. 그런데 신정왕후가 이곳 흥복전에서 승하한 것으로 보아 대비전의 용도로도 쓰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함화당과 집경당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고종이 건청궁에 머물 당시 여기서 외국 사신을 접견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 영지문(迎祉門)의 안쪽 건물이 함화당(咸和堂)입니다.


    ▲ 집경당(緝敬堂)


    ▲ 흥복전 권역은 현재 복원공사 중이네요.

    5.흠경각과 함원전

    농본사회를 운영하는 왕의 역할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건물들이다. 농업 위주의 전통 사회에서 시간과 천체의 운행에 맞추어 정치를 하기 위해 천체기구들을 왕실에 가까이 두었다. 세종은 옥루기륜, 앙부일구 등의 시계와 간의를 만들어 흠경각 일원에 설치하였다. 경회루 남쪽에 있었던 보루각, 궁성 서북쪽의 간의대 등도 흠경각과 관련된다. 이와 달리 함원전은 불교 행사가 자주 열렸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채롭다. 현재의 건물들은 1995년에 복원되었다.  


    ▲ 대재문(大哉門)


    ▲ 함원전(含元殿)


    ▲ 흠경각(欽敬閣)


    ▲ 재성문(財成門)

    4.강녕전과 교태전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침전 영역을 이룬다. 사랑채에 해당하는 강녕전은 왕이 독서와 휴식, 신하들과 면담을 하던 곳이고, 안채에 해당하는 교태전은 왕비가 거처하면서 궁 안 생활을 총지휘하던 곳이다. 1918년에 강년전과 교태전을 뜯어 창덕궁으로 옮겨 사라진 것을 1995년 복원하였다. 교태전 뒤편에 계단식 화단을 쌓아 아미산을 조성하고, 4기의 장식적인 굴뚝과 관상용 수석들을 배열해 정원을 만들었다. 아미산 정원은 뒷산인 북악의 정기를 침전까지 이어주며, 왕비의 후원답게 은밀하면서도 기품 있게 꾸며졌다. 


    ▲ 교태전(交泰殿)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도 강녕전과 같은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다만 전면에 월대가 없는 것이 다르다. 강녕전과 교태전은 공간구성 뿐만 아니라 집의 구조도 같은데 지붕꼭대기에 용마루를 설치하지 않고 내부에는 종도리를 두개 나란히 두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침전이 이와 같이 용마루를 두지 않는 것에 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근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 연길당(延吉堂)


    ▲ 연생전(延生展)


    ▲ 경성전과 강녕전


    ▲ 응지전(應祉堂)이고 뒤쪽으로 흠경각이 보입니다.


    ▲ 응지당 왼쪽의 우물

    6.자경전 일원


    흥선대원군이 선물한 대비전


    현종(24대)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는 고종(26대)의 즉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이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신정왕후의 거처를 궐 안에서 가장 화려하고 세심하게 만들어 은혜에 보답했다. '자경'이란 이름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에 자경당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 의미는 왕이 어머니나 할머니 등 왕실의 안어른께 경사가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두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88년에 재건하여 경복궁 침전의 전각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다. 자경전은 보물 제8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경전 일원은 자경전을 중심으로 서북쪽에 복안당을, 동쪽에 청연루와 협경당을 연결한 복합 건물군이다. 복안당에는 온들을 들여 겨울용 침전으로, 쳥연루에는 누마루를 설치해 여름용 거실로 삼았다. 서쪽 담에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문양들과 갖가지 꽃나무들을 새겨 넣어 최고의 감상용 꽃담을 만들었다. 또한 뒤편 담장에는 대비의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굴뚝을 설치했다. 


    자경전(慈慶殿)


    ▲ 자경전(慈慶殿), 청연루(淸讌樓), 협경당(協慶堂)


    14. 소주방(燒鑄房)

    경복궁 소주방은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와 궁중의 잔치음식을 준비하던 궁중 부엌으로 내소주방, 외소주방, 생물방 등 3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내소주방은 임금의 수라를 만들던 곳이며, 외소주방은 궁중의 잔치, 고사 음식을 차리던 곳이다. 그리고 생물방은 임금의 간식인 다식, 죽, 과일, 떡 등을 차리던 곳이다, 소주방은 조선 태조4년(1395) 경복궁 창건 때 건립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소실됐다가 고종4년(1867) 경복궁을 중건 할 때 건립되었다. 그러나 1915년 일제가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는 과정에서 경복궁의 여러 전각들과 함께 헐려 없어졌다. 현재의 소주방은 2011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2015년에 복원 완료하였다. 


    ▲ 생물방 입구



    ▲ 생물방(生物房) ▼


    생물방은 복회당(福會堂), 생과방(生果房), 생것방이라고도 부르며 생물(生物)은 '서물(庶物, 여러가지 음식)을 만든다' 와 '생명이 있는 식물과 동물'의 의미가 있다. 생물방에서는 임금의 후식과 별식인 생과(生果), 숙실과(熟實果), 조과(造菓), 차, 화채, 죽 등을 만들었으며 또한 내소주방과 외소주방에서 사용할 다과 등도 만들었다. 



    ▲ 내소주방(內燒廚房)


    안소주방이라고도 불리며 왕과 왕비에게 이른 아침에 올리는 아침 수라와 낮것상이라고 부르는 점심, 저녁 수라 등의 궁궐의 일상식을 만드는 곳이다. 소주방에서는 최고의 궁중 요리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특산물과 진귀한 재료로 조리한 음식을 만들어 수라상을 올렸다. 내소주방에서 만드는 수라는 붉게 칠한 큰 둥근상(대원반)과 작은 둥근상(소원반) 그리고 네모진 책상반으로 세 개의 상(床)이 차려진다. 책상반은 고기와 채소 등 전골재료를 올려 놓는 전골상이다.


    ▲ 소주방 우물


    경복궁 소주방 우물은 동궁권역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으며 2005년에 발굴조사를 거쳐 2015년 소주방 권역 건물과 함께 복원한 것이다. 우물의 규모는 상면 전제 지름은 4m, 내부 지름은 1.2m, 전체 높이는 4m이다. 이 우물은 내소주방과 외소주방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소주방에서 필요한 생활용수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경복궁 안에는 소주방 우물을 포함해 총 7개의 우물을 볼 수 있다.  


    ▲ 외소주방

    7.동궁 일원(東宮)


    왕세자는 떠오르는 해와 같아서 세자궁을 동쪽에 세워 동궁이라 부른다. 자선당은 세자가 거처하던 곳이며, 비현각은 공부를 하며 정무도 보던 외전에 해당한다. 남쪽의 춘방 터에는 세자 교육을 담당하던 시강원이, 계방 터에는 경호와 의전을 담당하던 관청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은 크게 훼손되어 자선당은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지진으로 불타 버렸고, 기단석만 반환되었다. 현재의 건물들은 1999년에 복원된 것이다. 


    ▲ 비현각(丕顯閣)


    ▲ 자선당


    자선당(資善堂)은 왕세자와 세자빈의 거처로서, 자선(資善)은 '어진 성품을 기른다' 는  뜻이다. 고종 25년(1888년) 중건된 자선당은 1914년 일본인에 으해서 동경으로 옮겨져서 사설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건물이 소실되어 기단과 주춧돌만 남게 되엇다. 이것을 1993년 김정동(金晶東) 교수가 발견하여 1995년 경복궁으로 다시 옮겨 왔다. 그러나 자선당을 복원할 때 구조안전 상의 문제로 기단과 주춧돌로 재활용하지 못하고 지금은 건청궁 동쪽에 전시하고 있다. 


    3.사정전 일원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다. 1867년 중창된 사정전(思政殿)은 공식 업무공간으로 마루만 깔려 있지만, 좌우의 만춘전과 천추전은 비공식 업무시설로서 온돌방을 두어 왕과 신하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였다. 사정전 앞의 행각에 천지현황 등 천자문 순서로 이름을 붙인 창고가 있어 왕실의 요긴한 물품들을 저장했다. 


    ▲ 사정전의 좌측 건물인 천추전(天秋殿)


    ▲ 천추전과 사정전


    ▲ 천추전 왼쪽 뒤로 북악산이 보이네요.


    ▲ 앙부일구(仰釜日晷)


    앙부일구는 세종 16년(1434)에 처음 만들어진 천문의기로서 해시계의 일종이다. 시계관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되었다. 청동으로된 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이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를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13개의 선 가운데 한 가운데가 춘·추분선이고, 맨 위의 선이 동지선, 맨 아래 선이 하지선이다. 세종 당시에 제작된 것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앙부일구는 대부분 조선후기에 제작되었다. 여기 전시된 앙부일구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을 본떠 제작되었다. 


    ▲ 사정전의 동측 건물인 만춘전(萬春殿)


    ▲ 사정문(思政門)


    13. 수정전과 궐내각사


    수정전은 고종 4년(1867)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의 궐내각사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세종 때에는 한글창제의 산실인 집현전이 이곳에 있었다. 궐내각사는 수정전 앞에 밀집되어 있었는데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하면서 일본에 으해 대부분 철거되었다.


    ▲ 수정전(修政殿, 보물 제1760호)


    ▲ 장영실 선생이 자격루를 세웠던 곳


    조선 세종(1418-1450) 때의 과학자 장영실 선생이 자격루(자동시보장치가 붙은 궁중표준 물시계)를 발명하여 설치했던 보루각의 옛터이다.


    장영실 선생은 세계 최초의 측우기를 비롯하여 간위(천체관측기) 등을 만들어 조선시대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킨 위대한 과학자이다.


    ▲ 산수유(Cornus officinalis)


    선비들이 심기 시작했다고 하여 선비꽃이라고 불린다. 3~4월에 노란색 꽃이 핀다. - 층층나뭇과-



    영추문

    ▲ 경복궁 서문인 영추문(迎秋門)


    제가 다녀왔던 2018년 11월 29일에는 영추문 매표소 설치 공사가 한참 중이었는데, 2018년 12월 6일에 43년만에 전면 개방하여 영추문 개방 행사가 열렸다고 합니다.


    12.경회루


    왕실의 큰 연회를 베풀거나 외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으로 1867년 재건되었다. 높은 2층 누마루에 올라 서쪽으로 인왕산, 동쪽으로 궁궐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주위의 넓은 연못에서는 뱃놀이를 했다고 한다. 바닥면적 933㎡(282평)로 현존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2층 마루는 3겹으로 구성되었는데, 중심 3칸은 천지인(天地人)을, 그 바깥 12칸은 1년 12달을, 가장 바깥의 24기둥은 24절기를 의미하는 등 동양적 우주관을 건축으로 상징했다. 중건 당시에 경회루 연못에 2마리 청동 용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실제로 1997년 준설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 경회루와 북악산(백악산)


    ▲ 경회루와 인왕산

    10. 집옥재 일원


    1876년 경복궁에 큰 불이 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에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와 주로 건청궁에 기거했다. 이미 창덕궁에 지어졌던 집옥재(集玉齋), 협길당(協吉堂) 등을 1891년에 건청궁 서편으로 옮겨 와 자신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했다. 집옥재는 양 옆벽을 벽돌로 쌓고 내부를 중2층으로 만들었으며, 팔우정(八隅亭)은 팔각형의 2층 정자이다. 이 건물들은 중국풍의 요소들이 많이 섞여 궐내에서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하며,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된다. 


    ▲ 집옥재 일원


    ▲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


    ▲ 집옥재에서 신무문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인 광림문(廣臨門)


    ▲ 나가는 곳이고 뒤쪽의 문은 신무문(神武門)입니다. 신무문 너머에는 청와대가 있습니다.


    11.태원전 일원

    왕위 정통성 확보를 위한 고종의 노력


    왕자 출신이 아니었던 고종은  부친 흥선대원군과 함께 왕권 승계의 정통성 시비에 대응해야 했다. 그 일환으로 태원전(泰元典)을 지어 역대 임금의 초상인 어진(御眞)을 모심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다. 1868년(고종 5)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태원전에는 태조의 어진을 모셨다. 이후에는 명성 황후의 시신을 모시는 빈전(嬪殿)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문경정은 위패를 모신 혼전으로 건립했다. 주변에 공묵재, 영사재 등 의례용 건물로 들어서 신성한 일곽을 이루었으나, 일제강점기때 철거되었다. 이곳은 청와대가 가깝다는 이유에서지 5 · 16쿠테타 이후 청와대 경호부대가 들어섰으며, 1979년 이른바 '경복궁 모의'를 가졌던 곳이기도 하다. 2006년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 일중문(日中門)


    ▲ 보강문(保康門)과 홍경문(弘景門)


    ▲ 태원전과 영사재(永思齋)



    ▲ 태원전 ▼



    ▲ 숙문당(肅聞堂)


    ▲ 뒤돌아본 태원전 일원


    ▲ 경회루와 수정전


    ▲ 광화문의 담장을 지나


    ▲ 경복궁역 3-1번 출구에서 약 3시간이 걸린 경복궁 관람 일정을 모두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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