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행 일시 : 2016년 12월 3일 토요일
2. 여행지 : 남연군의 묘
3.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5-29
4. 남연군의 묘(南延君─墓) 소개
흥선대원군의 부친이신 남연군의 묘로, 이 남연군묘가 위치한 자리는 본래 가야산 일대에서 제일 큰 절인 가야사가 있던 곳이다.
풍수지리설의 좌청룡, 우백호가 웅장 하게 뻗어있어 "이대 천자지지" 즉 2대에 걸쳐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곳이라 하여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부친 남연군 이구의 묘를 경기도 연천의 남송정에서 이곳으로 이장한 것이다. 이때 대원군은 왕권에 야심을 품고 안동 김씨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생활을 하던터라 더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99개의 암자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큰 절이었던 가야사를 불사르게 하고 금탑을 허물게 하여 이 묘자리를 차지하였으며 뒷날의 도굴을 염려하여 철 수 만근을 붓고 강회로 비비고 봉분을 했다. 임시묘가 있던 곳은 ‘구광지’라하여 지금도 움푹 패여 있으며 묘 전방의 석조물 2조의 석양과 2기의 석주를 묘지의 좌우에 세우고 있으며 묘의 전방에는 “이대천자지지”라 명문된 석등이 있다.
1868년에 오페르트 도굴사건이 있었고, 전주 이씨가 멸망한 후 묘소는 황폐화 되었으나, 왕실묘라 하여 후세 사람들이 잘 보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5. 대중교통 정보
가야산.상가리 버스정류장에 510 (상가리,덕산,삽교), 524 (고덕,덕산), 524 (덕산), 525 (덕산), 539 (삽교,덕산), 540 (덕산고교), 581 (덕산) 버스가 있습니다.
자가용을 이용하시는 분은 가까운 근처에 상가리주차장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6. 여행 사진
▲▼ 남은들상여
대원군이 부친 남연군의 묘를 옮긴 후, 덕산면 광천리 마을에 하사했다고 전하는 궁중식 상여이다. 진품은 국립고궁박물관에 기탁보관중에 있으며, 이곳 상여 보호각에 전시된 복제품은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자 2012년 문화재청으로부터 국비를 지원받아 국립고궁박물관 진품 실측과 정밀 실측 보고서를 근거로 상여는 중요무형문화재 74호 전흥수 대목장이, 유소[매듭]는 무형문화재 32호 배순화 매듭장이 제작하여 보호각에 전시하고 있다.
▲ 남연군의 묘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계단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 남연군의 묘와 그 뒤로 보이는 가야산 옥양봉
▲ 남연군의 묘와 그 뒤로 보이는 가야산 정상 가야봉
▲ 계단으로 내려옵니다.
▲ 남연군이라고 쓰여진 작은 비석도 보입니다.
▲ 남연군의 묘(南延君의 墓)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李球)의 무덤이다. 높은 언덕에 반구형 봉분이 크게 자리잡고 있으며, 앞으로 석물과 비석이 서 있다. 원래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 있던 무덤을 1846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이하응은 풍수지리설을 믿고 남연군의 무덤자리를 찾기 위해 지사(地師) 정만인(鄭萬仁)에게 부탁하였는데, 그는 지금의 자리를 '2대에 걸쳐 왕이 나올 자리'라고 지목하였다. 이곳에 가야사(伽倻寺)라는 절이 있었고 원래 묘자리에는 탑이 있었는데, 대원군은 절을 없애고 남연군의 묘를 옮겼다. 묘를 옮긴지 7년 후 차남 명복(命福)을 낳았는데, 철종의 후사(後嗣)가 없어 가까운 종손인 명복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고종(高宗)이다.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남연군의 묘를 훼손하였는데, 관(棺)에는 미치지 못한 채 돌아갔다. 이 사건은 국내외에서 커다란 비난을 받았고, 대원군은 쇄국(鎖國)과 천주교 탄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 남연군묘 제각
▲ 가야사지 추정불전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차례 진행된 가야사지 발굴조사를 통하여 8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추정 불전지는 장방형의 평면구조를 가지며 조사된 건물 중 완전한 형태를 띠고 있다.
▲ 예산 가야사지
가야사지는 예산군과 서산시 경계에 있는 가야산 석문봉의 동쪽 아래 넓게 형성된 골짜기에 있는 절터이다. 이곳은 가야동이라고 불리는데 99개의 암자가 있었으며, 절터의 중심지라고 전해지는 곳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묘가 자리잡고 있다.
2012년과 2013년에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사찰의 현황이 일부 확인되었다. 남연군묘 동쪽에서 확인된 건물들은 중앙의 답도시설을 지준으로 모두 4동이 조사되어다. 건물의 배치는 'ㅁ'자 형태의 구조를 가지며 가야사의 전각군 중 일부로 추정되고 있다. 출토유물로는 가량갑사라는 절 이름이 쓰인 명문기와가 출토되었다. 조사지역에서 출토되는 명문기와는 창건시의 절 이름인 '가야갑사(伽倻岬寺)'를 의미하는 것으로, 절 이름이 쓰인 기와가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가야갑사', '가야사' 등으로 달리 불리웠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예산 가야사지 문화재발굴조사 현황
가야사지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위치하며, 고려시대부터 존속해 있다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버지인 남연군 이구의 묘를 이장하면서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청남도에서는 유적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하여 가야사지(충청남도 기념물 제150호), 남연군묘(충청남도 지정기념물 제 80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예산군에서는 가야사지의 보수 및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총 3차례의 문화재 발굴조사결과 중정을 중심으로 하는 8동의 건물지를 확인할 수 있었고, 석조불상 8점, 청동불두 1점, '가량갑(사)' 명 명문기와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사지에 대한 건물배치 및 사명(寺名)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3차 발굴조사를 통해 남연군묘의 제각시설이 확인되었다. 제각은 가야사지를 일부 파괴하고 조성되어 남연군묘 이장에 대한 기록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 남연군의 묘로 가는 갈림길입니다.